어느 이주 노동자의 귀국

죽어도 가기 싫다던 리따가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등록 2004.08.18 20:02수정 2004.08.1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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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갔습니다. 죽어도 가지 않겠다던 그가 결국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간다, 간다"하면서도 뭐가 그리 아쉬운지 출국을 미루고 미루던 인도네시아인 리따가 고용허가제 시행 이틀 전인 지난 일요일 귀국했습니다.

a 리따와 아기 그레이스

리따와 아기 그레이스 ⓒ 고기복

아마도 불법 체류에 따른 벌금을 물지 않기 위해 고용허가제 시행에 앞서 출국을 선택한 것 같았습니다. 리따는 출국하기 전 새벽 세 시경에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비행기 시간을 맞추려고 창원에서 여유 있게 출발한 덕택에 출발 예정시간보다 훨씬 일찍 공항에 도착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죽어도 가기 싫다던 사람이 갈려고 작정하니, 발이 쉽게 떨어진 모양이지?"하고 물었습니다. 리따는 경상도 말씨가 배어 말꼬리가 올라가면서 늘어지는 소리로 "다시 올 거예요"라고 답했습니다.

리따는 한국에 온 후 어떻게 제 연락처를 알았는지 창원에 있으면서도 줄곧 저랑 연락을 하며 지냈습니다. 리따는 2년 반 전에 한국 남자와 자카르타에서 결혼해 이 땅에 왔습니다.

남편은 인도네시아에 파견근무를 나왔던 사람이었는데, 친구의 소개로 만나, 만난 지 얼마만에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했고, 결혼하자마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술주정을 하면서 구타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피범벅이 되고 초죽음이 되도록 맞기를 몇 번하다가 경찰서에 신고도 했지만, 남편의 술주정과 폭력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리따는 이혼했습니다.

그러다가 인도네시아 사람을 만나 동거를 시작했고, 현재 그와의 사이에 여섯 달 난 딸아이를 두고 있습니다. 리따는 양육상의 문제로 귀국할지 말지를 두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저는 그런 리따에게 애를 데리고 귀국할 것을 권했지만, 리따는 인도네시아에 이 모양 이 꼴로 돌아가기가 죽기보다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습니다.


그러다가도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면 전화를 걸어 귀국할 뜻을 비추기를 수차례 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출국 일정이 잡히면 번복하곤 했죠. 그런 그가 출국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리따는 애틋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원망이 박힌 것인지 모르지만, 한국에 정이 많이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애를 데리고 갔다가, 안정되면 반드시 다시 들어온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리따가 불법체류로 전락한 상태라 당장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저는 리따에게 차라리 그냥 인도네시아에서 아이를 기르라고 했지만, 굳이 한국에 다시 들어오겠다고 하더군요. 이래 저래 한국에서의 인상도 그리 좋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 원망과 시비 없이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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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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