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사건 핵심책임자들 '영전' 논란

[정치 톺아보기 68] "모럴 해저드에 빠진 외교부" 빈축

등록 2004.08.29 16:31수정 2004.08.29 17:49
0
원고료로 응원
외교통상부는 지난 9일 총영사급 10명에 대한 인사를 단행하며 김욱 재외국민영사국장을 시카코 총영사로 인사발령 냈다. 그리고 27일에는 역시 대사 및 총영사급 10명에 대한 인사를 추가로 단행하면서 신봉길 공보관을 중국 경제공사에 임명했다.

두 사람 모두 지난 78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외시 12기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김욱 전 재외국민영사국장과 신봉길 전 공보관은 김선일씨 피랍 및 피살사건의 정부 책임소재를 따질 때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관련부서의 책임자들이다.

특히 외교부는 9일 인사에서 이미 신봉길 대변인(공보관)을 주중 경제공사로 내정해 놓고서도 국회의 국정조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두 사람을 한꺼번에 발령낼 경우 여론이 악화될 것을 고려해 신 공보관에 대한 인사발표는 27일 인사에 '끼워 넣은' 것으로 알려져 국회를 기망(欺罔)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외교부 공보관과 재외국민영사국장은 감사원 및 국회 국정조사의 핵심증인

a

김욱 전 영사국장 ⓒ 연합뉴스

우선 김욱 전 재외국민영사국장은 말 그대로 재외국민의 보호육성과 실태조사 및 지원을 전담하는 부서의 책임자이다. 신봉길 전 공보관은 문제의 김선일씨 피랍 비디오테이프를 전달받은 AP통신 측으로부터 피랍 사실 문의를 받은 직원들에 대한 지휘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국회의 김선일씨 피살 사건 국정조사의 핵심증인으로 채택되었으며, 또 그 이전에 시작된 감사원의 '고 김선일씨 피살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에서도 임홍재 주이라크 대사와 함께 핵심 조사대상자였다.

지난 6월 김선일씨 피랍 및 피살 사건이 터졌을 때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과 함께 분노했고, 이는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감사원에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는 것과 함께 외교안보 시스템 전반의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쪽으로 해법의 가닥을 잡았다. 특히 대통령의 요청은 당연히 사실상의 직무감찰 특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때만 해도 외교부의 '줄초상'이 예상되었다.

노 대통령은 이어 6월28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진상을 명확하게 규명하고 책임을 엄격하게 묻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특히 AP통신 전화 문제와 관련, "AP통신에서 통화사실을 발표했을 때 관련된 사항을 즉각 조사해서 공개하지 않은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이는 우리 정부의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면서 "이 과정에 문제는 없었는지를 명확하게 조사해 달라"고 지시했었다.

노 대통령은 또 정보체계 문제와 관련해서는 "관련 기관들의 현지 정보활동과 교민동태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원활하게 이루어졌는지를 살펴보고 다른 나라의 현지 활동 사례들도 이번 기회를 통해 좀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었다.

노 대통령 "외교부의 문화·타성 문제는 김선일 사건과 별개로 대책 세워나갈 것"

a

신봉길 전 대변인 ⓒ 연합뉴스

그리고 노 대통령은 끝으로 "이밖에도 외교부의 문화나 타성이 지적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들은 이번 사건과 별개로 대책을 세워나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책임소재 및 문책과 관련해서는 "분위기 때문에 과오를 전제로 한 조사가 되지 않도록 하고 공정하고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엄격한 조사가 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면서도 "감사원 조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것이다"고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김선일씨 피살 사건이 발생한지 두 달이 넘었고 감사원 조사가 시작된지도 두 달이 된 현 시점에서도 외교부의 무사안일한 대응과 상황에 대한 대응 미숙으로 자국민이 외국에서 피랍되고 피살된 것은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모호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장관 인사부터가 국민 정서와 정반대로 진행된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김선일씨 피살 사건을 접했을 때 국민들은 분노했고, 외교안보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물러날 줄 알았으나 엉뚱하게 조영길 전 국방장관과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경질되고 그는 무사했다.

특히 감사원 조사와 국회 국정조사에서 이라크대사관이 정확한 피랍일자를 당분간 알리지 말라는 내용의 비밀전문을 외교부 본부에 보낸 사실이 밝혀지고 외교부에 문의해온 AP통신 기자가 당초 외교부가 자체 조사해 발표한 대로 1명이 아니라 3명이라는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지만 책임이 보태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지휘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두 중간 간부들마저 두 차례의 인사발령에서 슬그머니 끼워 넣어 영전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 특히 지난 8월9일 인사는 국회의 김선일 피살 사건 국정조사가 마무리되기도 전에 단행되었다.

최재천 의원 "국정조사 '면죄부'가 인사까지 맘대로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여권의 한 소식통은 "오히려 반기문 장관은 이때(9일) 이미 신봉길 대변인(공보관)을 주중 경제공사로 내정해 놓고서도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해 신 공보관에 대한 인사발표는 27일로 늦추었다"고 밝혔다. 신 공보관의 경우 열린우리당의 국정조사 위원들 사이에서도 AP통신의 피랍 사실조회 문의와 관련 '위증죄로 고발하자'는 의견이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통상부는 지난 4월 일단의 한국인 선교사들이 이라크에서 집단으로 납치되었을 때 반기문 장관 주재로 당시 최영진 차관, 이광재 아중동국장, 김욱 재외국민영사국장, 신봉길 대변인이 참석한 가운데 '이라크 사태 일일 점검회의'를 개최했으며 이런 신속한 대응 때문에 빨리 석방된 것처럼 생색을 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 이지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이 외신에서 피랍 보도를 보고서 맨 먼저 인지해 외교부에 전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얼마 전에는 감사원의 재무감사결과 외교부가 범정부적으로 적용되는 국외여비 지급기준을 무시한 채 3급(부이사관) 또는 4급 상당 직원들에게 일반석(이코노미)이 아닌 비즈니스클래스 항공운임을 지급해와 2급 상당(이사관) 이상 공무원에게만 비즈니스 운임을 주도록 되어 있는 공무원 여비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지적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이 지적한 대로 김선일씨 사건과는 별개로 외교부의 문화나 타성이 여전히 지적되고 있는데 별다른 대책은 세워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또 외교부에 못지 않게 국가정보원과 NSC의 정보수집 실패 및 전략적 판단 오류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부처에서 책임진 사람도 아무도 없다.

결국 노 대통령이 감사원 조사를 요청했을 때만 해도 외교통상부·국정원·NSC 등에 대한 문책인사와 외교안보시스템 전반에 대한 수술이 단행될 것을 예상하는 여론이 비등했음에 비추어 오히려 결과는 정반대로 진행된 셈이다.

지난 김선일 국정조사에서 여당 의원임에도 주이라크 대사관과 김선일씨와의 '특수관계'를 파헤쳐 국정조사의 물꼬를 튼 최재천(서울 성동갑) 의원은 "장관이야 국정조사에서 '면죄부'를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사까지 맘대로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면서 "외교통상부가 모럴 헤저드에 빠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7년 만에 만났는데 "애를 봐주겠다"는 친구
  2. 2 아름답게 끝나지 못한 '우묵배미'에서 나눈 불륜
  3. 3 스타벅스에 텀블러 세척기? 이게 급한 게 아닙니다
  4. 4 윤 대통령 최저 지지율... 조중동도 돌아서나
  5. 5 '검사 탄핵' 막은 헌법재판소 결정, 분노 넘어 환멸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