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못 생겼어도 새색시 같은 '이질풀'

내게로 다가온 꽃들(80)

등록 2004.09.09 15:07수정 2004.09.0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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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꽃 이름 중에는 꽃의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가진 꽃들이 있습니다. 이 경우는 대부분이 이파리의 모양이나 뿌리, 열매 또는 약효에 따라서 그 이름이 붙여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질풀의 경우는 약효에 따라서 지어진 이름인 셈이죠.

'이질(痢疾)'은 빈번한 설사와 발열, 복통을 유발하는 증상입니다. 그리고 전염병이기에 그렇게 달갑지 않는 병이죠. 이 병에 걸렸을 때 이질풀을 다려서 복용하면 병이 다스려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들은 배탈로 인해 설사가 날 때, 여러 가지 주변의 식물을 이용해 응급조치를 했습니다. 그 중에 '이질풀'은 설사의 특효약으로 사용되었던 것이죠.


이름은 못 생겼어도 우리네 삶에 꼭 필요한 꽃인 셈이죠. 이름을 붙여준 분들이 민간에 자주 퍼지는 이질병을 고칠 때 일반인들도 쉽게 찾아 사용하라고 붙여준 것이구나 생각하니 그 배려가 남달라 보이는 꽃입니다.

김민수
이질풀의 다른 이름은 현초, 노관초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현초'라는 꽃 이름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한자로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질 현(賢)'자를 쓴다면 말 뜻 그대로 '어진 풀'이니 이질을 다스려주는 어진 풀이라는 풀이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꽃말은 꽃의 예쁜 모양새를 담아 '새색시'랍니다. 가을 들판 여기저기 보랏빛으로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정말 새색시가 부끄러운 듯 풀숲에서 낭군을 바라보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보일 듯 말 듯 수줍게 들판 여기저기 피어서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꽃, 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꽃이니 자기 색시가 가장 예뻐 보이는 새신랑이 홀딱 반할 '새색시'라는 꽃말이 제법 잘 어울립니다.

김민수
이질풀에는 이런저런 꽃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전해지고 있는데 알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참에 꽃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주어야겠습니다.

아주 먼 옛날 깊은 산골에서 있었던 일이야.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서 소꿉놀이를 하며 자랐던 돌이와 순이가 있었는데 어느덧 순이가 어엿한 아가씨로 자라 시집갈 나이가 되었겠지. 깊은 산골에 산 순이는 자라면 이웃에 사는 돌이와 으레 결혼해서 한 가정을 꾸밀 것이라고 생각을 했단다. 그런데 돌이는 그 깊은 산골이 너무도 답답하고 싫었단다.

언젠가 아버지를 따라 오일장에 갔을 때 보았던 큰 마을, 그곳을 늘 그리며 살았단다. 돌이는 어느 날 밤 순이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순이야, 네가 큰 마을에 가서 돈 많이 벌어 부자가 되어 큰집을 짓고 너를 데리러 올게."

그러나 맨손으로 부자가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늘 그 자리를 맴도니 돌이도 답답했단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돌이는 어느 돈 많은 부잣집의 데릴사위로 들어가게 되었단다.

물론 순이는 이제나저제나 돌이를 기다리며 그 깊은 산골에 남아 있었지. 그러나 돌이는 부자가 되고 싶어 데릴사위로 부잣집에 들어가긴 했지만 순이를 잊을 수가 없었어. 그러다 몹쓸 이질병이 돌았고, 돌이도 그 전염병에 걸리게 되었지. 병에 걸리자 그는 쫓겨났고 결국 몇 년 동안 일만 죽어라 하고는 아무 것도 얻은 것 없이 병든 몸으로 고향에 돌아왔단다.

'그래, 아무리 깊은 산 속이라도 이만큼 일하면 순이하고 행복하게 살지 못할라구.'

그러나 이미 순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으니 돌이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났단다. 돌이가 병든 몸을 안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순이의 무덤에는 보라색꽃이 피어 있었어. 슬피 울던 돌이는 무덤에 핀 꽃이 순이의 넋을 담은 꽃이라 생각하고는 '그래, 너를 평생 내 몸에 간직하고 살께'하며 그 꽃을 따서 먹었지 뭐야.

그런데 그 순간 그렇게 아팠던 배가 거짓말같이 평온하게 가라앉는 거야. 순이의 넋이 묘약이 되어 돌이의 병을 고쳐주었던 것이지. 순이 무덤에 피었던 이 꽃이 바로 '이질풀'이라나?


김민수
김민수
이질꽃은 토질에 따라서 색을 달리하는 것인지 종자가 다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난해 분명히 보라색 꽃이 피는 이질풀을 얻어다 심었는데, 하얀 꽃이 피었습니다. 비록 하얀색 꽃을 피웠어도 그 속내에 담고 있는 성질이야 변함이 없겠죠.

이질꽃이 풀숲 여기저기에 피기 시작하면 완연한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머지않아 억새풀과 아직 피지 못한 가을꽃들이 들판 여기저기를 수놓을 것이고, 이질풀꽃을 그들에게 슬며시 자리를 내 주고는 또 피어날 가을을 고대할 것입니다.

김민수
한 번 뿌리를 내리면 그 곳에서 평생을 지내는 식물들의 종자번식방법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소나무, 민들레, 방가지똥, 참마, 박주가리 같은 것들은 바람의 도움을 받아 자기의 영역을 넓힙니다.

좀 무게가 나가는 씨앗들인 도토리나 호두, 동백, 밤 같은 것들은 중력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야 할까요? 그냥 땅에 떨어져 흙을 만나면 그 곳에서 생명을 싹틔워 갑니다. 어떤 것들은 먹힘으로 인해서 자기의 영역을 넓혀갑니다. 종자가 단단한 껍질에 쌓여 있어서 동물들의 몸 속에 있다가 배설되어 그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죠.

우리가 먹는 포도나 수박, 참외 같은 것들도 그 중의 하나죠. 그리고 씨앗에 갈고리 같은 것이 있어 동물들의 몸에 달라붙어 자신의 새 삶의 터전을 찾는 파리풀, 도깨비풀, 도둑놈의 갈고리, 진득찰, 담배풀, 이삭여뀌 같은 것들도 있답니다.

그렇다면 이질풀은 어떨까요?

스스로 터져서 이동을 합니다. 터지는 힘이 세서 조금만 건드려도 '파팍!'하고 폭죽 터지듯이 퍼지는 것이죠. 이런 것들은 괭이밥, 제비꽃, 봉선화, 냉이, 콩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모두들 자기를 지켜갈 만한 충분한 것들을 지니고 태어납니다.

우리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요? 이미 우리 안에 충분히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갈 만한 모든 것들이 들어 있는 것인데 자꾸만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은 아닐는지요.

이질풀. 이름은 못 생겼어도 그 못 생긴 이름에 실망하지 않고 늘 새색시처럼 수줍은 듯 아름답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다가오는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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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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