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69

호종단과의 만남 2

등록 2004.09.09 20:23수정 2004.09.09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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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절벽 위로는 바위가 떨어져 나간 것 같은 자국이 군데 군데 남아있었습니다. 보기에는 정말 바위 덩어리가 땅으로 떨어져 생긴 빈 자리처럼 보일만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바위자국은 아래 부분에 하나, 오른편과 왼편에 각 하나씩 그리고 제일 위편에 하나 그렇게 마름모 같은 모습을 이루고 있었고, 그 가운데 배꼽처럼 또 하나의 바위 자국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자로 재어 일부러 만들어놓은 것처럼 그 자국들 사이의 거리는 다 똑같았습니다. 진흙괴물은 그 바위자국을 하나 하나 메워 나가고 있었습니다.


눈도 없고 귀도 없는 진흙괴물은 하나 하나 잘도 찾아서 잘 메꾸어 나갔습니다. 맨 아래 구멍이 채워지자 그 진흙괴물은 두 방향으로 갈리어 양쪽편에 있는 구멍을 메꾸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가운데에 모여 가운데 구멍을 채우고 꾸물꾸물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제일 위 구멍에 도달하자 절벽 위에 넓게 퍼져있던 진흙괴물은 수채구멍으로 들어가는 물처럼 그 구멍을 통해서 빨려들어갔습니다. 나무들은 비로소 그때서야 잠잠해졌습니다.

진흙괴물이 빨려들어간 그 구멍에 어떤 생명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로 수단이었습니다. 수단의 모습은 붉다 못해 뜨거운 화염에 휩싸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키가 큰 남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남자는 그 불타오르는 것 같은 수단의 머리를 아무 느낌 없이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오호라, 이세상 어딘가에 새로운 물줄기가 만들어진 모양이군.”

 절벽 밑의 풍경을 바라보며 호종단은 무표정하게 말했습니다.

 진흙괴물들이 일러준 대로라면 백두대간 어딘가에서 새로운 물줄기가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역술서가 만들어낸 진흙괴물은 한반도 전역을 훑어지나가면서 물줄기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흙무더니들이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새로운 물줄기를 발견하고는 다시 역술서가 있는 자리에 돌아온 것입니다.


 호종단은 수단을 어루만지며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래, 수단. 얼른 가서 저 물을 다 태워버리고 싶지? 조금만 기다려라, 그런데 저
물줄기는 그냥 시냇물 같지가 않구나, 저렇게 산맥 한가운데 갑자기 샘물이 생기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고, 게다가 저 새로운 샘물이 솟아난 곳이 바로 그 우물선녀가 사는 곳이 아니겠니? 아마 그 우물선녀가 누군가에게 샘물을 만들어낼 비밀을 일러준 것이 분명하다.”


 수단은 호종단의 말을 전부 알아듣고 있는 것처럼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수단은 그곳에 만들어진 샘물의 냄새를 맡고자 하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맡아도 자기가 익히 알고 있던 느낌과는 달랐습니다. 그것은 분명 새로운 물이었지만, 무언가 달랐습니다.

 호종단은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그 우물선녀에게 갔을까? 백두대간에서 나무와 바위를 관리하고 있는 산오뚝이들이라 하더라도 그 우물가엔 감히 가까이 갈 수도 없을 텐데 말이지. 그 무지막지한 나무에 치어서 돌덩어리가 된 산오뚝이들이 벌써 수백 명은 될 거다. 네가 그 우물 곁에 가더라고 별다른 방법은 없었을게야.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 존재라면 딱 두 녀석들 밖에 업어. 그 놈들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 같지 않니?”

 호종단은 바리과 백호를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름은 적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바리와 백호가 우물선녀에게 찾아가 샘물을 구한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 샘물이 땅에 흘러들어 한반도를 다시 적시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호종단은 이제서야 그 바리라는 여자아이와 하얀 털을 가진 멍청한 호랑이를 만나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를 적실 새로운 물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떤 샘물이 이땅에 흘러들어가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이 불안감이 되어 마음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바리와 백호는 우물신을 만난 그 우물 옆에 보석처럼 빛나는 있는 얼음조각들을 쏟아부었습니다. 그 얼음조각들은 마치 물길의 씨앗인양 조그마한 개울을 만들며 앞으로 뻗어나갔습니다. 바리와 백호는 그 개울을 따라 같이 걸어나갔습니다.

처음엔 우물 주변에 흙을 적시며 지나가는 작은 물줄기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그 물줄기는 도랑처럼 점점 넓어지더니 마침내 시내가 되었습니다. 그 시내는 추위에 얼어서 굳어버린 땅을 계속 파내어가며 더 큰 물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거칠게 흘러내리고 있는 물줄기의 소리가 아주 듣기에 좋았습니다.

 바리가 물었습니다.

 “호종단이 찾아올까?”

 백호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습니다. 바리가 다시 물었습니다.

 “호종단이 혹시 호랑이들을 데리고 오면 어쩌지? 아니면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괴물하고 같이 오는 것 아닐까?”

 백호가 말했습니다.

 “염려마, 너에겐 천주떡이 있잖아. 게다가 가신님들이 주신 선물도 가지고 있고. 호종단이 어떤 것을 가지고 오더라고 우리를 해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래도….”

바리는 무엇이 불만인지 아직도 입을 삐죽거리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너무 늦어서 조왕신에게 섣달 29일까지 제대로 가지못하면 어떡해?”
"늦지 않을거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바리는 내심 불안해 하고 있었습니다. 두 밤만 더 자면 섣달 29일이 오는데, 호종단을 만나러 가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시간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만약 그때 시간 맞추어 제대로 가지 못하면, 내년에야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 사이에 호랑이들이 계획대로 일을 저지르고 일월궁전에 올라가 태양과 달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 엄마와 아빠를 다시는 영영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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