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116

놀이는 끝나고

등록 2004.09.13 17:09수정 2004.09.13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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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는 끝나고

116.


“하여간 남정네들이란 여인네들이 챙겨주지 않으면 마무리가 어설프다니깐.”

막순이가 돌을 바닥에 ‘툭’ 놓으며 하는 말에 박팔득 형제는 무안한 듯 어깨를 으쓱거리며 중얼거렸다.

“무슨 여인네 돌팔매질이 저리 사납냐......”

애향이는 백위길을 얼싸안으며 다친 곳은 없는가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백위길은 연실 괜찮다는 말을 하며 급히 어디론가 가려 했다.

“왜 이리 서두르시는 것이옵니까?”


“박충준이 강상과 결탁해 창고에 쌀을 재어놓고 농간을 부리고 있소. 이를 모르는 백성들이 난리를 부려 흉악한 모략을 꾸미는 자들을 저도 모르게 도울 것이니 진실을 알려야 하외다.”

“이미 늦었습니다. 지금 시전 거리는 쌀을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로 넘쳐 나고 있소이다. 이제 이들이 어디로 쏟아져 나갈지 모를 일이옵니다.”


박팔득의 말에도 불구하고 백위길은 시전으로 나는 듯이 달려 나갔다.

“다들 보시오! 다들 보시오!”

김광헌이란 자가 임의로 쌓은 얕은 단위에 올라가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이대로 가다간 잡곡조차 구하지 못해 초근목피라도 캐어다 먹어야 할 참이오. 곡식의 값이 말 그대로 금값이니 우리같이 없는 자들은 어찌 하란 말이오? 허나 나라의 창고에는 방방곳곳에서 거둔 세곡이 가득 차 있다 하니 이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소.”

사람들 사이에서 ‘모두 때려 부숴 버려!’, ‘가자!’하는 울부짖음과 분노 섞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고억철이라는 사람이 뛰어 나오더니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소리쳤다.

“우리가 나라의 창고를 턴다면 역적으로 몰려 큰 화를 당할 것이오! 두 번 세 번 신중히 생각해 볼 일이외다!”

“허나 이런 일이 생겨도 나라에서는 손을 놓고 있으니 어쩌겠소이까!”

화난 목소리로 소리친 사람은 홍진길이라는 사람이었다.

“볼 것 없소이다! 나 하나 죽어 굶주린 처자식을 먹이면 그만이오! 어차피 여기 있는 사람들은 잃을 것도 없는 몸들이지 않소! 모두 갑시다!”

김광헌이 소리치자 사람들은 흥분하여 함성을 질렀다.

“잠깐 멈추시오!”

그 때 목이 쉬어라 소리치며 뛰어나오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백위길이었다. 백위길이 포교임을 알아보는 사람들은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난 우포청 포교 백가라하오! 여러분들은 속고 있소이다!”

포교라는 말에 사람들은 야유를 퍼부으며 당장 끌어내라고 아우성이었다. 백위길을 아는 사람들은 이를 말리며 성실한 포교의 말이니 들어나 보자며 소리쳤고 김광헌은 사람들을 진정시킨 후 백위길을 단상위로 올라가도록 했다. 백위길은 목청껏 외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싸전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의 농간이오! 이들의 농간에 넘어가 나라의 창고를 도모한다면 역적을 돕는 일이고 바로 그들이 원하는 일이외다!”

백위길이 하는 양을 가만히 보고 있던 잡곡상 상인 최봉려가 사람들 틈에서 모습을 숨긴 채 따졌다.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하시오! 증거를 대보시오!”

“맞다. 포교라면 사정을 잘 알 것인 즉, 증거를 대어라!”

백위길은 화가 나서 최봉려를 찾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일갈했다.

“너희 싸전상인과 잡곡상들이 얼마 전부터 곡식의 양을 줄이고 값을 올리며 됫박을 속이고 곡식에 물을 넣어 무게를 속인 것을 다 알고 있는데 망발이냔 말이냐!”

사람들이 그 말이 맞다며 웅성거렸다.

“당장 쌀이 부족하니 됫박을 속여도 가만히 있었지.”

“글쎄 밥을 했더니 물을 먹인 것이라 푸석하지 않던가.”

“그렇다고 이런 일이 생긴 증거가 될 수는 없지 않소?”

옆에서 김광헌이 못 미더운 듯 한마디를 하자 백위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 의심스럽다면 한강 나루터 인근에 있는 여객(旅客)의 창고를 살펴보시오. 그곳에 쌀이 그득하게 쌓여 있을 것이오. 상인들의 농간이 아니라면 그곳에 곡식이 쌓여있을 까닭이 없지 않겠소? 사실이 아니라면 날 여기서 밀어버리고 밟아 죽여도 좋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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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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