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산대놀이 117

놀이는 끝나고

등록 2004.09.14 17:08수정 2004.09.1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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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백위길은 알아서 확인하라는 심정에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었고 김광헌은 크게 소리쳤다.

“보시오! 포교가 말하길 상인들이 농간을 부려 한강 나루터에 있는 창고 안에 곡식을 재어 놓았다 하오! 이는 도둑질이나 다름없는 짓인 즉 당장 가서 사실이면 이를 박살내고 쌀을 꺼내어 옵시다!”


이미 격앙되어 있던 사람들은 앞 뒤 가릴 것 없이 한강 나루터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백위길은 단상 위에 그대로 주저앉아 멍한 눈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고 이런 백위길을 발견한 애향이와 박팔득이 달려와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큰일났소이다! 행수님! 박선달님!”

여객 주인 김재순이 흐트러진 옷매무새로 경상으로 달려와 행수 배수도와 옴 땡추를 찾았다. 배수도는 찡그린 눈으로 문을 열어 김재순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누구요?”

김재순은 거만한 말투에서 배수도가 경상의 행수임을 직감하고선 땅바닥에 엎드리며 토해 놓듯이 말했다.


“전 박선달님의 부탁으로 경상의 곡식을 창고에 쌓아두고 있는 자이올시다. 지금 난민들이 곡식이 있음을 알아채고서는 몰려와 난동을 피우고 있어 어찌해야 좋을지 막막해 이리로 달려왔사옵니다.”

배수도는 속으로 가슴이 철렁했으나 곁으로는 버럭 화를 내며 김재순을 물리쳤다.


“그게 뭐 어찌 되었다고 경상에 와 호소한단 말이오!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니 물러가시오!”

김재순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배수도를 올려다보았다.

“그 무슨 소리옵니까? 그간 모아온 경상의 쌀들이 모조리 없어져도 상관없단 말씀입니까?”

“그게 왜 경상의 쌀들이오! 대낮부터 신소리말고 돌아가시오! 여봐라! 너희들은 뭘 하기에 이런 자를 안으로 들인단 말이냐!”

배수도는 신경질적으로 문을 벼락같이 닫았고 경상에서 일하는 하인들은 김재순을 밖으로 끌어내었다. 김재순은 어쩔 줄 모르며 밖에서 서성이다가 빠른 걸음으로 오는 옴 땡추를 보고서는 부리나케 달려가 울며불며 하소연을 했다.

“뭐라? 일단 한번 가보자꾸나.”

옴 땡추가 여객의 창고로 가보니 이미 창고는 박살나 있었고 사람들은 서로 쌀을 퍼가려 혼잡하기 이를 때 없었다. 뒤로 밀려 쌀을 퍼가지 못한 사람들은 한곳에 몰려 성토를 하고 있었다.

“이는 싸전에서 가장 큰 정종근이네 가게가 농간을 부린 것임에 틀림없네. 당장 그곳도 때려 부숴 버려야 직성이 풀리겠네만.”

“내 말이 그 말일세! 이 도둑놈들이 여기다 쌀을 쌓아두고 시치미를 떼고 있다니 분이 풀리지 않네! 분명 그 가게에도 창고가 있을 터, 그리로 가세!”

사람들은 싸전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고 행여 자신을 알아볼까 두려운 김재순은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옴땡추는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곰곰이 따져 생각해 보았다.

‘이거 일이 꼬여 버렸구나! 어쩌면 좋을꼬! 혹시......’

옴 땡추는 그제야 백위길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자신의 아우들을 찾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양의 백성들은 모조리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 같사오이다. 포졸들도 맞아죽기 싫다며 나서지를 않고 포도대장도 수심 깊은 얼굴로 조정의 처사를 기다릴 뿐인데 우리끼리 어찌 해야 된단 말이오?”

백위길의 앞에는 너 덧 명의 포교가 착잡한 표정으로 모여 있었다.

“물론 힘으로 저들을 막을 수는 없네. 그러니 말로서 설득을 하는 한편 난동이 벌어지는 것을 최소한으로 해야 포교로서 도리가 아니겠나?”

백위길의 말에 포교들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정 그렇다면 난 다시 혼자 나서겠네. 나라의 녹을 먹는 우리가 어찌 이런 일을 수수방관 한단 말인가?”

“그건 조정에 있는 대신들도 마찬가지 아니옵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지금은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것이 중요한 때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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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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