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에르의 한국판 양반전

[리뷰] <귀족놀이>(몰리에르 작, 국립극단)

등록 2004.09.21 11:56수정 2004.09.21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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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귀족놀이> 포스터

<귀족놀이> 포스터 ⓒ 국립극단

지금의 위치보다 더 높은 곳으로 상승하려는 욕구는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 주변만 둘러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강남의 아파트 값이 주춤하고 있긴 해도 여전히 수요자가 넘치는 게 사실이다. 이들은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켜서 지금 위치보다 더 상승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 정부가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한다고 해도 납세에 대해 저항은 할망정 강남 입성을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

문학이 사회를 반영하듯이 이런 신분 상승 욕구는 수천년 동안 세계문학의 주요 소재가 되었다. 우리의 대표적 고전들만 보아도 그렇다.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모두 결국은 착한 사람이 복을 받아서 신분 상승을 이룬다는 이야기다. 신분 상승욕을 풍자적으로 꼬집고 있는 <양반전>도 그런 인간의 욕구를 그리고 있다.


우리의 <양반전>과 비슷한 이야기가 프랑스에도 있다. 프랑스 고전주의 시대 극작가 몰리에르의 <평민귀족>이 바로 그 작품이다. 돈 많은 평민이 귀족 부인을 사랑해 귀족 수업을 받는다는 줄거리가 <양반전>을 연상시킨다.

세계 연극의 고전인 몰리에르의 <평민귀족>이 <귀족놀이>이란 이름으로 국립극단에 의해 9월 24일까지 공연된다. 이번 작품은 프랑스의 스태프와 한국의 국립극단 배우들이 함께 하는 작품으로 몰리에르의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 의한 정통 몰리에르극을 맛볼 수 있는 기회이다.

9월 18일 관람한 공연은 전체적으로 음악, 무대, 조명, 배우의 연기가 조화를 이뤘다. 극의 시작과 함께 우리의 전통악기로 연주되는 바로크 음악이 극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미 영화 <스캔들>에서 사용된 바 있는 이런 악기 구성과 편곡은 이번 공연 내내 훌륭한 효과를 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악사들이 무대 우측에 배석해 직접 연주했다.

무대는 바닥의 공작 그림과 자유롭게 이동 가능한 무대 벽을 이용했다. 조명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공작의 그림은 주인공 부자 평민(주르댕)의 신분 상승욕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무대 벽은 360도 회전이 가능해서 장소가 바뀜에 따라 돌려 사용했다. 무대 벽에는 장식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조명을 적절히 이용하여 간단하지만 큰 효과를 만들어 냈다.

이번 공연은 국립극단의 젊은 배우들이 주축이 됐다. 주르댕 역의 이상직, 그의 부인인 마담 주르댕 역의 조은경 등 주역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는데 이상을 쫓는 주르댕의 정신 나간 모습과 현실을 직시하는 마담 주르댕의 모습이 대조되어 재미를 주었다. 다만 노래와 대사가 중복되거나 대사와 대사가 중복될 때, 원을 돌며 대사를 할 때 관객에게 대사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아 답답함을 주었다.


이번 작품은 프랑스 브르타뉴 국립연극센터 소장이자 부설 로리앙 극장의 극장장인 프랑스의 젊은 연출가 에릭 비니에가 직접 연출과 무대 및 의상 디자인을 맡아 전체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선보였다. 다만 의상에 있어서 한국, 일본, 중국의 스타일과 의상이 이리 저리 섞여 있어 이질감을 주었다.

<귀족놀이>는 국립극장에서의 공연이 끝난후 10월 11일부터 16일까지 프랑스 브르타뉴의 '로리앙(Lorient) 극장'에서 다시 올려져 프랑스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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