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77

조왕신의 불기둥 1

등록 2004.09.23 21:01수정 2004.09.2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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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산 위로는 초저녁별이 미리 떠올라 바리와 백호에게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마치 일월궁전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등불 같았습니다.

그 지리천문신장님이 준 나침반이 일러준 곳에 도착한 백호와 바리는 산길을 따라 걸어갔습니다. 아무것도 살지 않는 것 같은 초원이었지만, 조금 걷다보니 금방 마을이 나왔습니다.


은행나무 문을 통과해 빠져나온 그 또 다른 세상엔 참 이상한 일이 많았습니다. 겉보기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습니다. 마을마다 서있는 아파트도 다 그 자리에 있었고, 도로 위에 지나다니는 차들도 전부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사이로 뿌리가 보이지 않는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 뒤로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한 숲이 우거져 있기도 했고 도시를 조금만 지나면 백두산보다도 높은 것 같은 산이 나오기도 하고 그 가운데 자그마한 오두막을 짓고 가신님들이 살고 있기도 했습니다.

또 그 집이 아무리 작아보여도 안으로 들어가면 하늘과 땅을 가르는 지평선이 집 안으로 들어올 만큼 큰 집이었습니다. 그런 이상한 세계에 살고 있지만 가신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같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바리는 그 모든 것들을 은행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부터 익히 보아왔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게다가 그 세상에서 바리는 배가 고프지도 그리고 졸리지도 않았습니다. 삼신 할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어보기도 했고 진달래 언니가 준 복숭아를 가끔씩 꺼내어 먹긴 했지만, 바리는 특별히 먹는 것이 없이도 언제나 힘이 넘치기만 했습니다.


이렇게 벌판 위에 만들어진 길고 넓은 강물도 아까 그 꼬마가 말해준 것처럼 바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아마 볼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찌 되었건 이 강물은 계속 흐르고 흘러서 백두대간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계를 적시게 될 것입니다. 바리와 가까운 곳에 존재하지만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이 있다면, 아마 바리가 백호와 지금까지 여행을 한 여러 곳은 정작 서로 어깨를 맞닿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바리는 이렇게 이것 저것 생각에 잠긴 채 가만히 걷고만 있었습니다. 그 사이 해는 이미 지고 어둑어둑 해지고 저녁별이 산 위로 올라와 바리와 백호가 가는 길을 비추어주고 있었습니다.


바리와 백호 앞으로 조왕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산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그 산마루로 가는 길엔 계곡이 있는지 꽤 긴 다리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물이 흐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다리 위로는 반딧불이 반짝이고 있는 것처럼 작은 불꽃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리 건너편 아래쪽으로는 누군가 불을 지핀 듯 모닥불 같은 것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백호가 말했습니다.

“저 곳이 조왕신이 사는 곳 일거야.”

그리고는 화완포를 꺼내주었습니다. 바리는 그 화완포를 손에 들었습니다. 빙잠에서 뽑은 실로 만든 그 화완포는 마치 은실로 짠 것처럼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바리는 머리로부터 해서 아래로 옷을 뒤집어 써보았습니다. 특별히 힘을 주어 입으려 하지 않아도 옷이 혼자 알아서 바리의 몸을 덮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서천꽃밭에서 외할머니를 만나던 때 생각이 났습니다.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온통 눈을 뒤집어 쓴 것처럼 하얬습니다. 마치 북극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곳도 아니고 불로 만든 집이라는데 이렇게 북극사람처럼 하고 가야한다니 우습기까지 했습니다.

다리를 건너 가까이 갈수록 아래쪽에 보이는 그 불타는 것 같은 집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은 집이었습니다. 바리가 생각하고 있던 불로 만든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불을 이고 있는 집이었습니다. 다리를 다 건너자 아래로 가는 길이 나있었습니다. 마치 달빛을 받은 듯 그 길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보기에도 그 집은 다른 집들처럼 나무와 흙으로 만든 오두막처럼 보였습니다. 기둥도 나무기둥이고 문설주도 나무로 되었고 대문도 나무로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붕은, 무언가 타고 있는지 아니면 지붕 대신 불을 얹고 있는지 밤불놀이를 하려고 지펴놓은 모닥불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똥처럼 작은 불꽃 같은 것이 퍼져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반불똥과는 달리 아무리 높이 올라도 사라지지 않고 하늘 높이 솟아 올라가거나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듯했습니다.

바리와 백호는 마침내 그 집 앞에 이르렀습니다. 지붕에서 타오르는 불길 때문인지 바리 뒤로는 그림자가 여러 방향에서 얼룩거리고 있었습니다. 바리는 그 집 대문에 이르자 지붕을 바라보면서 백호에게 말했습니다.

“우와.. 저 집 정말 뜨겁겠다. 우리 저 불속으로 들어가야 되는거야?”

잠시 침을 삼키고는 말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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