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소설] 호랑이 이야기 78

조왕신의 불기둥 2

등록 2004.09.26 19:43수정 2004.09.2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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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넌 화완포가 없어서 혹시 못 들어가는것 아닐까?”

수단에게 공격을 받고 거의 죽을 뻔한 백호였는데, 저런 불꽃 속에 들어가야한다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짐작했는지 백호가 바리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내가 화완포가 없다고 누가 그러던?”

그러더니 백호도 어딘가에서 화완포를 꺼내더니 하늘로 집어던졌습니다. 그 화완포는 하늘에서 그물처럼 퍼지더니 등 위에 사뿐이 내려앉아서 백호를 북극호랑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마치 누군가 백호에게 하얀 페인트를 뿌려서 몸 위에 그어진 줄이 다 지워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리 아가씨인가요?”
“네?”


놀란 바리는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대문도 열리지 않았고 바리는 배웅 나온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왼쪽도 보고 오른쪽도 보고 앞뒤도 다 둘러보았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다시 바리를 불러 말했습니다.

“그렇게 주변만 보지 말고 위도 한번 보세요.”


시키는대로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지붕 위에는 타오르는 불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바리가 백호에게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잖아, 대체 누가 이야기하는거지?”

다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저 여기 있잖아요. 여기….“

그때 지붕의 불길 속에서 무언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마치 자기를 보아달라고 까치발로 서있는 모습 같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모양을 한 불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붕에 있는 것들은 타오르는 불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사람 모양을 한 불꽃 수십 개가 지붕 위에 서있는 것이었습니다. 지붕 위에서 날아다니던 것도 불똥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사람 모양을 한 불덩이가 수도 없이 그 지붕을 통해서 오가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지붕으로 날아오는 사람 모양의 불덩이들은 전부 가슴에 무언가 품고 오고 있었습니다.

바리 앞으로 고개를 가까이 내밀고는 그 사람 모양의 불꽃이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왕신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저는 조왕신님을 돕고 있는 불꾼입니다. 멀리 나가서 바리님을 모시고 오고 싶었지만, 전 함부로 멀리 나갈 수가 없어요, 사람들 눈에 잘못 뜨이면 도깨비불로 오인받기 쉽거든요.”

백호가 말했습니다.

“염려 마세요. 저 아래에서 동자님을 만나서 길을 잘 찾았습니다. 저희한테 지리 천문신장님의 나침반도 있으니 길을 잃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까 다리 위에서 길을 비추어 주고 계셨죠?”

그 불꾼이라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헤헤 보셨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문을 열어드릴게요, 화완포는 준비 하셨겠죠? 여기 조왕신님은 각 집안의 부엌과 불꽃을 관리하시는 분이라 집안이 온통 불꽃 투성입니다. 아마 화완포를 입지 않으셨다면 이 대문 근처에도 오시지 못했을거에요, 아주 뜨겁거든요.”

그 불꾼은 말을 마치고는 손바닥을 입 앞으로 모으고 대문 쪽을 향해 손바람을 불었습니다. 입을 통해서 불길이 치솟을줄 알았더니 찬바람이 나왔습니다. 그러더니 바리 앞에서 굳게 잠겨 있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불꾼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얼른 들어오세요. 찬기운이 있는 동안에 들어오세요, 만약 찬기운이 떨어지게 되면 이 집의 불기운이 온산에 퍼져서 나무가지들이 말라버릴지도 모릅니다.”

바리는 그렇게 활짝 열린 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안은 눈이 부실만큼 밝았습니다. 바리가 지금까지 가본 다른 집들도 방안에 촛불 하나 켠 것이 없었지만, 어디서 들어오는지 다들 밝은 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마치 커다란 전구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습니다.

집안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기둥에서 아주 밝은 빛이 파랗게 뿜어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기둥을 통해서 불꾼들이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붕이 아마 그 기둥과 연결된 모양이었습니다. 기둥을 통해서는 불꾼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집안은 아주 넓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바리가 어디로 들어왔는지 들어온 입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단지 높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높고 긴 불기둥이 끝없이 늘어서 있는 벽만 보였습니다.

불기둥 하나하나는 불꾼들이 드나들고 있는 기둥보다 십 분의 일 정도로 가늘었고, 기둥 표면에는 무언가 글자가 검은 색으로 빼곡히 적혀있었지만,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문도 아닌 이상한 글자였습니다. 바닥 역시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바리와 백호는 마치 불꽃 한가운데 들어와 서있는 것 같았습니다.

입구에서 바리와 이야기한 그 불꾼은 바리을 따라 안으로 들어와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바리 아가씨. 이곳이 조왕신님이 사시는 집입니다.”

기둥 속으로 왔다갔다 하고 있는 불꾼들을 가리키며 바리가 말했습니다.

“예, 아주 멋지네요. 그런데 저 분들은 다 뭐하시는 분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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