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물루스 대제> 포스터서울시극단
로마는 로물루스에 의해 세워졌고 동명의 로물루스 황제 때 그 수명을 다했다. 한때는 서양 세계의 중심이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을 정도의 대제국이었던 로마제국이지만 연이은 황제의 암살과 정쟁은 국력을 쇠퇴시켰다. 끝내 물 밀 듯 이탈리아 반도로 내려오는 게르만족의 침입을 막지 못하고 로마제국은 서기 476년 1000년 영욕의 역사를 잿더미로 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로마제국의 멸망을 배경으로 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로물루스를 주인공으로 한 희비극 <로물루스 대제>가 9월 23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브레히트 이후의 최고의 독일어권 작가로 꼽혔던 뒤렌마트가 이차대전 직후 쓴 작품이다.
뒤렌마트는 히틀러의 제3제국의 흥망과 미국의 원자탄 사용을 통해 감정 없이 인명을 대량살상을 하는 인간이 인간의 감정을 아름답게 하는 예술을 한다는 행위, 그 행위가 이루어지는 사회 이 모두를 부조리하게 보았다. 그는 부조리를 웃음과 전율이 동시에 일어나는 묘사, 곧 그로테스크로 보았다.
<로물루스 대제>는 서로마제국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뒤렌마트의 상상력이 덧붙여진 것으로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희극적 상황으로 바꾸어 현대사회의 부조리함을 우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로물루스는 황제로서 하는 일이라곤 닭을 돌보고 닭 하나하나에 로마황제들의 이름을 붙여 그 닭들이 낳는 알의 수를 헤아리는 것이 전부이다. 자신의 역사적 임무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기다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그 일에 충실하듯 게르만족이 코앞까지 다가왔는데도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
이를 보다 못한 에밀리아와 신하들은 로물루스를 죽이려 한다.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의 살해 장면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연출되나 실패로 끝나고 살해를 모의했던 사람들은 로물루스와 집사만을 남기고 모두 도망간다. 드디어 게르만의 지도자 오도아케가 로마로 입성한다. 죽음을 기다리던 로물루스는 닭을 키우며 소일하는 연금생활자가 되고 로마는 멸망한다.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유발하듯 <로물루스 대제>의 무대는 낡고 녹슨 철로 얼기설기 엮어 만들었다. 무대 위에는 여기저기 고대로마의 영광스런 인물들의 석상이 나뒹굴고 양계장으로 변한 별장은 로마제국의 멸망을 상징하고 있다. 악기편성을 한국식으로 한 음악은 비극의 장중함과 희극의 가벼움을 섞어 적절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2시간 30분의 긴 상연시간에도 관객의 집중을 유지시켰던 가장 큰 요인은 베테랑 연기자들의 훌륭한 연기였다. 로물루스 역의 정동환, 오도아커 역의 박기산 등 객원배우들과 율리아 역의 김혜옥, 케자르 루프역의 이창직, 에밀리아 역의 강신구 등 서울시극단의 중견연기자들의 무르익은 연기가 관객의 극에 대한 집중도를 높혔다. 정확한 발성과 풍부한 성량, 적절한 움직임 모두 열렬한 관객의 박수를 받을 만 했다.
서울시극단의 <로물루스 대제>는 젊은 연출가 이용화가 연출을 맡았고, 김창활이 원작을 깔끔히 번역했다.
공연을 보고 드는 생각. 닭을 키우며 소일해야 할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도 많다는 것이다. 세상 참 부조리한 게 자칭 국가 원로라고 하는 사람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국가보안법이 없어지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것이다. 독재정권 시절, 총리, 장관, 국회의원을 하면서 시국선언문 하나에도 국가보안법으로 줄줄이 잡아넣던 사람들이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이들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자칭 원로여러분 로물루스 황제처럼 연금생활자로 닭이나 키우며 소일하는 게 어떤지요? 키우는 닭에는 꼭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름 붙이는 것도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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