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의 보름달뉴스툰
우리는 예전에 보름달을 보고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다고 믿었다. 어려웠던 시절에는 방아 찧는 상상만 해도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나라처럼 인도, 중앙아메리카에서도 달에서 토끼를 보았고, 유럽에서는 보석 목걸이를 한 여인의 옆얼굴, 책 또는 거울을 들고 있은 여인을 상상했다고 한다. 두꺼비, 당나귀, 사자의 모습을 생각한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에선 보름달이 뜨는 날은 정월대보름, 한가위 등 풍요로운 명절이지만 서양에서 달은 주로 마귀할멈이나 늑대인간 등 무시무시한 악령과 연관된 할로윈데이 등 귀신의 날이다. 서양에서는 달의 영기를 받으면 미친다고 여겨 미친 사람을 '달의 영기를 받은 사람(lunatic)'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가위의 시절놀이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는 벌초(伐草), 성묘(省墓), 차례(茶禮), 소놀이, 거북놀이, 강강수월래, 원놀이, 가마싸움, 씨름, 반보기, 올게심니, 밭고랑 기기 등을 들 수 있다.
그중 가장 보편적인 풍속은 벌초와 성묘 그리고 차례이다. 한가위 때에 반드시 벌초를 하는 것이 자손의 도리로 여겼으며, 한가위의 이른 아침에 사당을 모시고 있는 종가(宗家)에 모여 차례를 지낸다. 그리고는 성묘를 가는 것이 순서이다.
'소놀이'는 풍물패를 따라 소를 흉내 내며, 온 마을을 다니며 노는 놀이이다. 소놀이를 할 때는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 머슴을 상머슴으로 뽑아 소등에 태우고 마을을 돌며, 시위하기도 한다.
'거북놀이'는 수수 잎을 따 거북이 등판 마냥 엮어 이것을 등에 메고, 엉금엉금 기어 거북이 흉내를 내는 놀이이다. 이 거북이를 앞세우고 “동해 용왕의 아드님 거북이 행차시오!”라고 소리치며, 풍물패와 함께 집집을 방문한다. 대문에서 문굿으로 시작하여 마당, 조왕(부엌), 장독대, 곡간, 마굿간, 뒷간 그리고 마지막에는 대들보 밑에서 성주풀이를 한다.
조왕에 가면 “빈 솥에다 맹물 붓고 불만 때도 밥이 가득, 밥이 가득!” 마구간에 가면 “새끼를 낳으면 열에 열마리가 쑥쑥 빠지네” 하면서 비나리를 한다. 이렇게 집집을 돌 때 주인은 곡식이나 돈을 형편껏, 성의껏 내놓고 이것을 잘 두었다가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쓴다.
'강강술래'는 손에 손을 잡고 둥근 달 아래에서 밤을 새워 돌고 도는 한가위 놀이의 대표라 할 수 있다. 이 놀이는 이순신 장군이 왜적을 물리칠 때, 의병술로 시작한 것이라는 설이 있으며, 또 이러한 집단 원무의 시작은 원시 공동체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강강술래는 둥글게만 돌지 않고, 갖가지 놀이판으로 바뀌면서 민요를 곁들인다.
"하늘에는 별도 총총/강강술래, 동무 좋고 마당 좋네/강강술래, 솔밭에는 솔잎 총총/강강술래, 대밭에는 대도 총총/강강술래, 달 가운데 노송나무/강강술래” 앞소리꾼이 소리를 내면, 모두는 받아서 강강술래로 메긴다. 새벽이 부옇게 움터올 때까지 강강술래는 그칠 줄을 모른다.
'원놀이'는 서당에서 공부하는 학동들이 원님을 뽑아서 백성들이 낸 송사를 판결하는 놀이로 요즘의 모의재판과 비슷하다. 가마싸움은 이웃서당의 학동들끼리 만든 가마를 부딪쳐서 부서지는 편이 진 것으로 하는 놀이이다. 이긴 편에서 그 해에 과거시험에 급제한다는 믿음이 있다.
'반보기(중로상봉:中路相逢)'는 한가위가 지난 다음 서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끼리 때와 장소를 미리 정하고 만나는 것이며, 중도에서 만났으므로 회포를 다 풀지 못하고 반만 풀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마음대로 친정 나들이를 할 수가 없었던 시집간 딸과 친정의 어머니가 중간 지점을 정하고, 음식을 장만하여 만나서 한나절 동안 회포를 푸는 것이다.
또 한 마을의 여자들이 이웃 마을의 여자들과 경치 좋은 곳에 같이 모여 우정을 나누며, 하루를 즐기기는 일도 있었다. 이때에 각 마을의 소녀들도 단장하고 참여하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며느릿감을 고르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속담에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가까운 친척을 만나러 가는 것이 먼저이고, 꽃구경은 나중)’라고 하여 한가위 앞뒤로 반보기가 아닌 ‘온보기’로 하루 동안 친정나들이를 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큰 바람이었다. 오늘날도 민족대이동이라 하여 4천만명이 고향을 찾아 일가친척을 만나고, 조상에게 입은 덕을 기린다.
전라도에서는 '올게심니(올벼심리)'라 하여 한가위를 전후해서 잘 익은 벼, 수수, 조 등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묶어 기둥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고, 다음해에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 때 음식을 차려 이웃과 함께 잔치를 하기도 한다. 올게심니한 곡식은 다음해에 씨로 쓰며, 떡을 해서 사당에 바치거나 터주에 올렸다가 먹는다.
경상도 지방에서도 ‘풋바심’이라 하여 채 익지 않은 곡식을 천신(薦新:철따라 새로 난 과실이나 농산물을 먼저 신위(神位)에 올리는 일)할 목적으로 벤다. 또 새로 거둔 햅쌀을 성주단지에 새로 채워 넣으며 풍작을 감사하는 제를 지내기도 한다.
'밭고랑 기기'는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한가위 전날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나이대로 밭고랑을 긴다. 이때에 음식을 마련해서 밭둑에 놓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된다고 믿는다.
한가위의 시절 음식
'설에는 옷을 얻어 입고, 한가위에는 먹을 것을 얻어먹는다'라는 우리나라의 옛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가위는 곡식과 과일 등이 풍성한 때이므로 여러 가지 시절 음식이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송편, 시루떡, 인절미, 밤단자를 시절 음식으로 꼽았는데, 송편은 대표적인 한가위 음식이다. 송편에 꿀송편, 밤송편, 깨송편, 콩송편, 대추송편 등이 있으며, 이때 솔잎을 깔아 맛뿐이 아니라 향과 시각적인 멋도 즐겼다. 솔잎에는 살균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가 다른 식물보다 10배 정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 유해성분의 섭취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위장병, 고혈압, 중풍, 신경통, 천식 등에 좋다고 한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모시잎을 삶아 넣어 빛깔을 낸 모시잎 송편, 강원도 지방에서 감자송편이 있으며, 쑥송편, 치자송편, 호박송편, 사과송편 등도 별미이다.
‘농가월령가’에는 신도주(新稻酒), 오려(올벼의 옛말)송편, 박나물(덜 여문 박을 얇게 저며서 쇠고기와 함께 간장에 볶은 뒤에 파, 깨소금, 후춧가루를 치고 주물러서 만든 나물), 토란국 등을 이때의 시식이라고 했으며, 송이국, 고지국(호박, 박, 가지, 고구마 따위를 납작납작하거나 잘고 길게 썰어 말린 것)도 영동 지방에서는 별식으로 먹는다.
얼마 전만 해도 가정에서 온 식구가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며 송편을 빚는 정경이 아름다웠다. 송편을 잘 만들어야 예쁜 아기를 낳는다는 말에 서로 은근히 솜씨 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며, 빚은 송편이 예쁜지 볼품이 없는지에 따라 배우자 될 사람의 얼굴도 그렇게 된다는 말을 믿었다. 또 임신한 부인들은 송편에 솔잎 한 가닥을 가로로 넣어 쪘는데 찐 송편을 한쪽으로 베어 물어서 문 부분이 솔잎의 끝 쪽이면 아들이고, 잎꼭지 쪽이면 딸이라고 했다.
한가위의 차례상에서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이다. 한가위 때 마시는 술은 ‘백주(白酒)’라고 하는 데, 햅쌀로 빚었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햅쌀로 빚은 술)’라고도 한다. 한가위 때는 추수를 앞 둔 시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풍족해져 서로 술대접을 하는 수가 흔했다. 녹두나물과 토란국도 한가위의 시절음식이다.
달은 어려운 이웃과 함께 보아야 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