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모두 영화 제작가· 스태프·배우"

우리 집보다 비싼 캠코더로 가족영화 만들기

등록 2004.10.07 17:18수정 2004.10.1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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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우리 집은 사방이 열려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장독대가 놓여져 있는 뒷곁이 돌담장으로 둘러져 있으니 삼면이 열려 있는 셈입니다. 안채를 중심으로 좌우 양면에 정면, 삼 면 모두에는 출입문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대문이 없는 집입니다.


집을 비워두고 어디론가 멀리 떠날 경우 집 단속은 어떻게 하는가. 집 단속이 따로 없습니다. 그냥 열려진 채로 방치해 놓고 다닙니다. 우리 집 보다 비싸게 주고 구입한 '재산목록 1호'만 챙기면 그만입니다. 그것만 챙겨 나오면 방문 자물쇠도 필요 없이 집 단속은 끝입니다.

우리 집 재산목록 1호는 바로 6mm 디지털 캠코더입니다. 7년 전에 다 쓰러져 가는 빈집이었던 우리 집은 200만원(시골집이 대개가 그러하듯이 땅 임자는 따로 있습니다)이지만 캠코더는 300만원 가까이 주고 구입했습니다. 4년이 지났으니 사실 요즘 시세는 많이 다를 것입니다. 디지털 제품은 오래 될수록 가치가 없어지니까요.

"이거, 캠코더가 우리 집 보다두 비싼거유."

사람들에게 농담 삼아 말하곤 했는데…. 아이들조차도 친구들에게 집 보다 비싼 캠코더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어쨌든 4년 전, 전 재산을 털어 그 캠코더를 구입했습니다. 구입 후 3년 전부터는 그걸로 매년 한 편씩 단편영화를 찍어오고 있습니다. 화질이 괜찮은 편입니다. 필름과 비교하면 택도 없지만 자연 조명을 잘 살려서 찍고 난 후 소극장 스크린으로 보면 그런 대로 볼만합니다. 지금은 새로운 기종에 저 만치 밀려 있긴 하지만 한때 방송국에서도 사용했던 기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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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한 달에 60만원이라는 생활비로 어떻게 단편영화를 만들 수 있냐구요? 충분히 만들 수 있습니다. 제작비는 별로 투자할 게 없습니다. 4천원 가까이 하는 6mm 테이프만 구입하면 됩니다.

a 컴퓨터에 프리미어라는 프로그램으로 편집을 합니다.

컴퓨터에 프리미어라는 프로그램으로 편집을 합니다. ⓒ 송성영

우리가족 모두가 제작자이고, 스태프이고, 배우가 됩니다. 내레이션은 아이들이 맡습니다. 배우는 엄마를 비롯해 가족 모두입니다. 어쩌다 한 가족처럼 지내는 주변 사람들이 우정 출연을 해주기도 합니다. 촬영, 편집 등의 전문적인 부분은 방송물을 좀 먹은 아빠인 내가 도맡아 합니다. 편집은 컴퓨터로 해결합니다.


시나리오 역시 내가 맡아서 하는데 시나리오라는 게 따로 없습니다. 시나리오에 맞춰 촬영할 필요가 거의 없습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평소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해 놓는 것을 만들고자 하는 단편영화의 내용에 짜 맞춰 짜깁기 편집을 합니다.

장마비가 억수 같이 내리고, 번개가 무시무시하게 뻔쩍거리는 장면이 필요하면 장마철에 찍어 놓은 것을 붙이면 됩니다. 평소 재봉틀을 돌리는 엄마의 모습을 찍어 두었다가 편집 상 필요하다면 그대로 쓰면 됩니다. 개울가에 꽃이 떨어지고 낙엽이 질 때의 장면이 필요하다 싶으면 급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 가서 찍으면 됩니다. 적당한 시기에 맞춰 언제 어느 때고 촬영할 수 있습니다. 자연 빛을 최대한 이용하다보니 화질 또한 아주 깨끗하게 나옵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이 모든 일들은 바쁜 일과에 쫓겨 다니며 살아야 했던 도시 생활에서는 불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시골로 이사 오면서 적게 벌어먹고 살아가는 지금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적게 벌어먹고 살아간다면서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적게 벌어먹고 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적게 버는 만큼 시간이 많이 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서 있어서 영화 찍는 것하고, 경제적인 문제하고는 크게 상관없는 일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4천원짜리 6mm 테이프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니까요. 단편영화 한 편 만드는데, 6mm 테이프가 열 개 필요하다고 해도 4만원이면 해결됩니다. 그게 제작비의 전부입니다. 그저 영화 찍는 재미를 만끽하면 됩니다. 그것도 가족과 함께 즐기면서 말입니다.

영상물의 소재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제작비가 없으니 당연히 소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에 널려 있는 환경을 충분히 이용합니다. 우리 집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크게 소품이나 이러저러한 세트가 필요 없습니다. 생활 속에서 늘 사용하는 것이 소품이고, 집 자체가 세트입니다. 가족들이 평소에 입고 다니는 평상복이 의상입니다.

조명 또한 따로 필요 없습니다. 방안에서 찍을 때는 스탠드 조명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거의 대부분, 99%는 자연조명을 이용합니다. 자연조명을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시간이 많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개울가에서 찍을 장면이 있다면 개울가에 빛이 적당히 들어올 때를 기다렸다가 찍습니다. 아침 햇살과 노을이, 나뭇잎이나 개울물에 반사되는 빛이 그대로 조명입니다. 내 캠코더 영화의 질은 바로 이 자연 조명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상 꼭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따로 연출물을 만들어 냅니다. 연출물을 만들 때가 가장 힘이 듭니다. 전문연기자들이 아니기 때문에 수차례 반복해서 찍어도 어색합니다. 다큐멘터리 형태로 별 생각 없이 찍어 놓은 것은 편집해 놓고 보면 별로 어색하지 않지만 연출한 부분은 아주 어색합니다.

가족 영상물 제작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그 한계 선상에서 가끔씩 아내와 다투기도 합니다. 집안 일로 바쁜 아내를 잡아 놓고 반복된 촬영을 하다보면 부딪히기 일쑤입니다.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재미있어 하다가도 연출이 반복되면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짜증내는 것은 잠시 잠깐입니다. 재미있는 일이 더 많습니다. 찍어 놓은 것을 컴퓨터 화면을 통해 보다보면 다들 자신의 어색한 연기에 재미있어 합니다. 완성물이 나오면 두고두고 보면서 재미있어 합니다.

a 우리 가족이 만든 단편영화는 아마추어 영상제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만든 단편영화는 아마추어 영상제에 뽑히기도 했습니다. ⓒ 송성영

비록 아마추어 수준이긴 하지만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하 민언련)에서 주최하는 시민영상제에 <알>이라는 단편영화를 출품해 일반 청년부문에서 대상을 받았기도 했고, 또한 대한민국종교예술제 단편영화제에서 <가재는 바다로 갈 수 있는가>라는 단편영화로 입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영상물들은 우리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의 접대용이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고문의 시간들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재미있게 보십니다. 작품의 질을 떠나서 자신들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고 또한 거기에 출연하고 있다는 것에 무척 신기해합니다. 신기해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식구들 또한 기분이 좋아집니다.

죽어라 돈 벌어서 머리통 쥐어 짜가며 만든 영화가 아니기에 기분이 좋습니다. 그동안 우리 집에서 우리들의 가족 영화를 본 사람들은 백 명도 채 안되지만 영화 같지도 않은 영화를 기분 좋게 보아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어서 또한 기분이 좋습니다.

캠코더 작업의 또다른 효과는 가족 모두가 아내가 말하는 문화생활(문화생활을 뭐라 정의 내려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시골에 살면 다양한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단지 문화생활을 도시에서만 가능하다고 그렇게 규정지어 놓은 사람들의 단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 식구들은 시골에 살면서도 나름대로 '문화생활'을 하고 있으니까요. 우리 식구는 '캠코더 영상물 만들기 놀이'를 통해 문화의 소비자가 아닌 창조자로서 우리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생활’이라는 게 근사한 음악당에서의 장엄한 오케스트라에 도취해 보거나 화제의 연극이나 영화를 감상하는 그 어떤 것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은 그것이 문화생활이라고 정해놓은 그들만의 어떤 문화생활에 불과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시골생활은 이미 문화생활의 혜택을 충분히 받고 있는 셈입니다.

도시의 문화생활자들은 예술인들이 창조해 놓은 창조물을 감상하는 것이 고작이지만 시골에서의 문화생활자들은 예술인들이 창조를 위해 모방한 본래의 창조물을 그대로 감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감상의 차원을 넘어 대자연이라는 거대한 '문화생활권'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상자가 보고 느끼기에 따라서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에서 음악과 미술과 시를 접 할 수 있고 또한 보이지 않는 그 어떤 대자연의 경외감에 푹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캠코더 작업을 통해 그런 기분 좋은 '문화생활'에 빠질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적게 벌어 적게 먹고 살아가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모두가 돈 한 푼들이지 않고 단지 한가로운 시간만 투자하면 거저 얻게 되는 것이니까요. 내가 돈벌이에 목을 메고 있다면 시간에 쫓겨 아마 이러한 대자연물들을 즐기기는커녕 당장 눈과 귀, 가슴팍으로 들어오기조차 힘들 것입니다.

우리들만의 캠코더 작업은 도시 내기 아내의 시골생활에 큰 힘이 돼 주었습니다. 도시생활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문화생활에 대한 박탈감을 충족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아내 말로는 '지덜 잘난 맛으로 시골에서 살고 있다지만 문화생활을 못하고 사니 얼마나 갑갑할까' 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가진 것 없이 시골에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도 이런 것을 만들고 살아간다'는 뭐 그런 부질없는 자부심 같은 것도 생기나 봅니다. 자부심이라는 게 부질없는 것이라 해도 나는 또 기분이 좋습니다. 캠코더 작업을 시작하고부터 아내는 문화생활 운운하는 '고상한' 사람들에게 할말이 생겼으니까요.

'문화생활'이니 뭐니 다 접어두고 캠코더 단편영화제작의 또 다른 효과는 남들 다 간다는 이런저런 학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 생생한 교육 '꺼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저 가족들과 함께 어울려 뭔가 재미있는 꺼리로 시작한 캠코더 작업이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다를 것입니다.

a 요즘 우리집 아이들이 캠코더 촬영에 재미를 붙이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집 아이들이 캠코더 촬영에 재미를 붙이고 있습니다. ⓒ 송성영

먼 훗날 우리 집 아이들이 만에 하나 영화제작에 관심을 쏟게 된다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들이 그 어떤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올해는 영화 찍는 놀이에 별 재미를 붙이지 못해 아이들에게 캠코더를 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엄청 재미있어 합니다. 그동안 접근 금지시켰던 '집보다 비싼 캠코더'를 주물러 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요. 녀석들이 계속적으로 재미있어 한다면 조만간 편집도 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들 장래를 위해 큰 목적이나 뜻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먼 훗날 우리 집 아이들이 영상물 만들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된다 해도 상관없는 일입니다. 지금 현재 아이들이 캠코더 찍기 놀이를 즐길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부모가 일방적으로 벌이는 '영화 만들기' 놀이에 덩달아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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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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