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도 염전은 수차를 이용한다김준
육지에서는 양수기를 이용해 염도를 높인 함수를 염판으로 옮기는 일을 하지만 무녀염전은 과거처럼 수차를 이용해 물을 퍼올리고 있다. 가끔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염전과 수차에 대해 물어와 귀찮게 하지만 최씨는 싫은 기색 없이 소금이야기를 들려주고 수차를 직접 밟아 보는 일도 허락한다.
문득 지난해 8월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전설과 신화의 섬 고군산군도>가 생각이 났다. 선유도, 장군도, 무녀도를 자전거로 돌아보던 이장호 감독이 멈춰선 곳이 이곳 무녀도 염전이었다. 그는 직접 수차를 돌려보기도 했었다.
그 방송은 염전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무녀도에 염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 방송을 보면서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로드다큐 이후 선유도를 찾는 사람은 더욱 늘었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찾는 것이 어민들에게는 반가운 일인지 알 수 없지만 숙박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환영할 일이다.
"이장호 감독도 여기 왔었어요?"
"그럼, 그 이장호 감독도 여기 와서 찍었지요. 4월인가, 그 뒤로 사람들이 많이 와요."
소금을 거두는 날이면 최씨는 새벽 3시 무렵에 일어나 일을 시작해야, 아침 10시 무렵 운반하는 일까지 마무리할 수 있다고 한다. 혼자서 하는 일이라 물을 대고 빼고, 소금을 거두고, 염전을 보수하는 일이 힘에 겹다. 30kg 한 가마니에 1만 4천원. 몇 년 전 정부의 폐전정책으로 많은 소금밭이 없어지기 전보다 소금 값이 나아졌지만 언제 중단될지 모를 상황이다.
"혼자서 새벽 3시 30분부터 긁어야 10시까지 나르면 딱 맞아요."
"혼자 일하나요."
"혼자 해요. 여그서 물댈라, 저기서 물댈라. 일이 안돼요. 적어도 세 사람은 있어야 돼요."
갯벌을 막아 소금밭을 만들던 시기만 해도 염전이 돈이 된다는 말에 돈 좀 있는 사람들은 염전에 투자를 했던 적이 있었다. 군산에서 제법 부자였던 선친이 이곳 무녀도에 쏟아부은 노력과 자금을 생각하면 지금도 최씨는 화도 난다고 한다. 12살에 몸이 아파 학교를 그만두고 군산에서 무녀도에 들어와 머무르기 시작한 최씨. 지금도 건강한 모습은 아닌듯 하지만 소금 내는 일은 그만둘 수가 없다.
"염전이 좋다고 해서 한 거요. 아버님이 처음 한 거요. 저기 제방 막은 대 길이 있잖아요. 둑이 다 바다여. 우리 아버님이 막았어요. 세 번이나 막았어요. 고생만 하셨어요. 돈만 없애불고…. 그 돈으로 염전 안하고 딴 것 하셨으면…."
"얼마나 돼요, 한 두 정(6천평)은 되나요."
"그 정도는 돼요."
"요즘 30kg에 얼마나 해요."
"1만 4천원이요. 오늘밤에 이렇게 바람 불어주면 소금이 솔찬히 오고…."
"중국산이 들어와서 싸지지 않았어요."
"여기는 중국산 안 와요."
호텔에 카지노가 들어선다?
안내를 하던 민박집 주인은 '앞으로 전월이와 새터를 주목해야 합니다'라고 강조한다. 이곳에 대형 항구가 들어설 것이며 모든 선박과 여객선이 이곳에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무녀도는 카지노와 호텔이 들어서 놀이공원이 형성되고, 선유도는 자연을 보존하는 해수욕장으로 발전할 것이란다. 기대해 볼 일인가? 왠지 씁쓸함을 버릴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새만금 사업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새만금 사업이 백지화되지 않는다면 선유도와 배로 지척인 신시도까지 육로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지금은 군산에서 1인당 1만원을 훨씬 더 주고 배를 타야 하지만 육로가 열리면 몇 천원이면 선유도에 올 수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무녀도와 선유도를 연결하는 연도계획도 수립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안내를 하는 민박집 주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