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383

숨겨진 비밀 (1)

등록 2004.10.20 12:56수정 2004.10.2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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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그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라! 알겠느냐?”
“예, 죄송합니다. 심려를 끼쳐드려서….”

“좋아, 그건 그렇고 말은 어찌 되었지?”
“언제든 끌고 올 수 있을 겁니다.”


“그래? 좋아, 그러면 일어나는 대로 준비해봐.”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숙였던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연일 계속된 모진 고문에 이회옥은 빈사지경(瀕死之境 :죽음에 임박한 상태)에 이르렀었다. 하긴 그토록 심한 고문을 당하고도 멀쩡하였다면 이상할 것이다. 이실직고를 하지 않으면 죽어도 상관없다는 듯 정말 지독한 고문이었던 것이다.

매일 밤, 규환동을 찾아온 남궁혜가 상처를 꿰매고 금창약을 발랐기에 망정이지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한낱 죄수를 위해 무천의방 방주의 좌승지인 그녀가 시료를 전담하는 것은 소화타 장일정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가장 효능이 좋은 금창약을 사용하여 환부(患部)가 빨리 아물도록 하였으며, 상처를 꿰맬 때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화농(化膿 : 썩어서 고름 잡히는 것)되지 않도록 조치하였다.


하긴 남궁혜에게 있어 소화타가 누구이던가!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너무도 야속하지만 죽도록 연모하는 님이다. 그런데 하옥된 죄수가 죽어버리면 사랑하는 님에게 엄청난 누(累)가 된다고 하니 지극 정성으로 보살핀 것이다.

물론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채로 간간이 신음만 토하는 그가 불쌍하다는 연민(憐愍)의 정을 느껴서이기도 하였다.

어쨌거나 이회옥의 전신은 수없이 많은 상흔으로 뒤덮여 누더기처럼 되어 버렸다. 하긴 이십여 종류나 되는 산혼편으로 거의 매일 다스려졌으니 그만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절대 발설하지 말아야 한다며 정신을 다잡던 이회옥은 너무도 고통스럽자 차라리 죽는 게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하지만 편히 죽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군화원에 있는 모친과 고모, 그리고 조연희를 구해내지 못했기 때문이고, 철천지원수인 철기린을 지옥으로 보낼 일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이회옥은 전신 근육이 가닥가닥 끊기고, 뼈를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는 분근착골(分筋搾骨)에 처해졌다.

그것은 고문 수법 가운데 최후의 보루(堡壘)라 지칭될 충분한 자격을 갖춘 수법이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이를 악물자 어금니가 부러져나갔고, 꽉 다문 입술은 이빨에 의하여 구멍이 뚫렸다.

이실직고만 하면 즉각 형을 멈추겠다고 하였을 때 하마터면 모든 사실을 토설(吐說)할 뻔하였다. 그만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한 여인의 앙칼진 음성이 있었다.

“흥! 오라버니…!”

단 한 마디를 내뱉은 여인은 싸늘한 시선으로 철기린 구신혁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무도 차가운 성품인지라 아무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던 차가운 꽃 빙화(氷花) 구연혜였다.

사람이 조금 화가 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만 정말 화가 많이 나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폭풍전야가 이러할 것이다.

말 없이 노려만 보는 누이동생의 서릿발같은 표정을 본 철기린은 형(刑)을 멈추라는 명을 내리고는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일부함원(一婦含怨)이면 오월비상(五月飛霜)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차가운 성품인 누이동생의 미움을 사서 좋을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두말하지 않고 형을 멈추라 하였던 것이다.

물론 자신이 의도하던 바를 이루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 무영혈편은 빙화가 이회옥을 연모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는데 둘을 맺어주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하였었다.

그때 구신혁은 무릎을 쳤다. 무영으로부터 빙화가 이회옥에게 연모지정을 품고 있다는 보고를 들었을 때에도 생각지 못했던 묘안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회옥은 특정 세력의 비호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나중에 권력을 쥐더라도 보살펴야 하거나 신세를 갚아야 할 무리가 없다.

성주가 되면 목숨을 걸고라도 자신을 보필할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만일 이회옥이 매제가 된다면 그야말로 적임자 중의 적임자가 될 것이다. 정직하며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겸손하면서도 절도 있는 성품은 솔선수범(率先垂範)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공과 학문까지 뛰어나므로 약간의 수련만 거치면 비보전이나 순찰원을 맡길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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