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머위는 씁쓰름한 맛이 일품인 나물입니다.
이파리를 살짝 데쳐서 쌈으로 먹으면 곰취의 맛이 나는 듯도 하고, 줄기를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으면 고구마줄기를 먹는 듯도 합니다. 쓴맛이 강해서 데쳐서 바로 먹는 것이 아니라 줄기는 껍데기를 벗겨 물에 하루 정도 담가두었다가 먹습니다.
이렇게 야생초 중에는 그냥 먹으면 독이 되지만 여러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좋은 음식이 되고 약이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우리 산야에 수없이 많은 야생초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냥 잡초는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그 효용가치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기 때문에 잡초 취급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꼭 인간에게 유용해야만 할 책임도 없을 것입니다.
들녘에서 만나는 모든 야생초들의 특징은 어느 한 순간이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곳에도 일단 뿌리만 내리면 어디서든지 같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가 서있는 자리가 척박하면 척박할수록 진하게 피어나고 진한 향기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김민수
털머위도 연한 이파리가 나올 시기엔 머위와 같은 방법으로 식용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털머위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는 잎 뒷면에 털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데 그냥 앞면만 보면 왜 털머위인지 알 수가 없답니다. 오히려 보통 머위보다 미끈하거든요.
털머위는 바닷가 근처에서 많이 피기에 '갯머위'라고도 부르고, 꽃이 곰취와 거의 흡사해서 '말곰취'라고도 부른답니다. 제주도에서는 10월 중순께부터 피기 시작해서 12월 중순까지도 꽃의 행렬이 계속됩니다. 그래서 겨울바다에서도 심심지 않게 국화과의 꽃들을 만날 수 있답니다.
▲김민수
제주도해안가에서 겨울에도 만날 수 있는 야생의 꽃들은 이렇습니다.
갯쑥부쟁이, 해국, 감국, 털머위, 수선화는 기본이고 운이 좋으면 양지바른 곳에서 괭이밥이나 갯까치수영 등을 만나기도 한답니다. 집 근처에는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색의 송악이나 비파나무의 꽃들이 제 철을 만나 피어있지요.
제 철에 피어나지 못하는 꽃을 가리켜 '바보꽃'이라고 하지만 바보꽃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손길을 탄 원예종들도 겨울에 많이 피는데 동백이나 코스모스, 장미 같은 것들이 그것입니다.
▲김민수
지난 겨울이었습니다.
한 겨울에 담장에 장미꽃 한 송이가 한 겨울 추위도 마다하지 않고 피어있었습니다.
'이 겨울에 피어나서 외롭겠구나, 언제 얼어죽을지 모를 인생….'
그런데 예쁜 꽃등에 한 마리가 날아오는 것입니다. 그 때 문득 '바보꽃, 그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바보꽃이 아니었구나. 필요가 있어서 피어있었던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죠. 그때서부터 '바보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단지 열매를 맺느냐 못 맺느냐는 결과론적인 것들만으로 꽃들을 바라보고는 바보꽃이라고 하지 말자고 했습니다. 과정의 중요성들을 무시하고 결과에만 매달려 살아가면서 우리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입고 살아가는지 돌아보았습니다.
▲김민수
털머위는 뿌리를 포함해서 모든 부분을 약으로 쓴다고 합니다. 그 약효는 해열, 지사, 해독, 소종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기관지염, 임파선염, 물고기를 먹고 체한 데에도 효과가 있고, 종기와 타박상에는 생으로 짓찧어서 바르면 좋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물고기를 먹고 체한 데' 달여먹으면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독(魚毒)을 풀어준다는 이야기인데 독을 가지고 있는 물고기 중에 대표적인 것이 복어입니다. 어쩌면 털머위가 복어의 독을 풀어주는데 특효약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민수
털머위가 먼저인지 머위가 먼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의 전개상으로는 그냥 머위가 먼저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옛날 아주 먼 옛날 하나님이 이 세상의 들꽃들을 거의 다 만드셨을 때의 일이란다.
들꽃들을 만드신 하나님은 이제 그 꽃들 중에서 사람들과 가까이 있을 꽃들과 멀리 있을 꽃들을 나누셨단다. 사람들과 가까이 있을 꽃들은 주로 독이 없어서 사람들이 쉽게 이파리며 꽃이며 뿌리를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고, 사람들과 멀리 있을 꽃들은 너무 예쁜 꽃들이나 독을 가지고 있는 꽃들이었지.
그 중에 머위가 있었겠지.
맛은 씁쓰름해서 그냥 먹으면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멀리 떨어뜨려 놓자니 꽃이 너무 못 생긴 거야. 하나님에게 고민이 생겼겠지?
"햐, 이 머위를 어떻게 한다. 맛으로 보자면 좀 멀리 보내야 할 것 같은데, 꽃을 보니 못 생겼다고 천대하는 것 같고, 고민이네."
"하나님, 그럼 이런 방법은 어때요."
"무슨 방법?"
"사람들하고 가까이 있는 머위는 번거롭겠지만 조금만 손질을 하면 먹을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좀 멀리 떨어뜨려 놀 꽃들은 예쁘게 해주세요. 같은 머위란 이름으로 말이죠."
"그래? 그런데 머위야, 네 꽃으로는 아무리 예쁘게 만들려고 해도 모양이 안나오는데 어쩌지?"
"그럼 저하고 맛이 비슷한 꽃처럼 만들어 주세요."
하나님은 머위의 이파리를 따서 먹어보셨어.
"음, 맛이 꼭 곰취 같군."
"그래요, 곰취의 예쁜 노랑꽃을 달아주세요."
"알았다. 그 대신 너는 한 겨울의 추위와 바다의 태풍까지도 겪을 수 있어야 하는데 괜찮겠니?"
"고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한 겨울 추위와 태풍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걱정 마라. 내가 너를 위해 털옷을 준비해 주마."
그래서 털머위가 바닷가 근처에 피어나고, 사람들이 그를 말곰취라고도 부른다고 한다네요.
▲김민수
| | <내게로 다가온 꽃들> 100번째 기사를 올리면서 | | | 참, 행복했습니다 | | | |
| | ▲ 개감수-소개해 드리지 못했던 꽃 중에서 | | 올해 초 동백 이야기를 서두로 <내게로 다가온 꽃들>을 100회 목표로 연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꽃이 100회를 맞이하게 될까 궁금했는데 12월에도 피어나는 '털머위'가 차지를 했군요.
시작할 때 원고료 전액을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성금으로 사용하자고 그림을 그려주시는 이선희 선생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99회까지의 총 고료는 134만8천원이었고 그 중 93만원은 백혈병 수술을 급하게 해야했던 제주도의 김보미 학생에게 전달했고, 이제 100회를 마치고 남은 기금에, 이선희 선생님과 제가 조금 더해서 비닐하우스에서 손자와 겨울을 나야 할 김병기(가명) 할아버님께 보일러 등유 50만원(세 달치)을 넣어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연재하는 중에 <내게로 다가온 꽃들>(한얼미디어)이라는 책이 출간되어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는 중이고, 100회를 마치는 대로 열심히 작업해서 그 두번째 책을 봄이 오기 전에 낼 예정입니다.
바쁘신 가운데서도 그림을 그려주시느라 애를 쓰신 이선희 선생님,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일일이 지적해 주신 독자분들과 꽃과 관련하여 저보다 더 풍성한 알 거리를 제공해 주신 모든 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드립니다.
가을입니다.
겨울에 필 꽃들이 준비하고 있지만 거반 사계절을 돌았습니다.
고민 중입니다.
얼추 소개하지 못한 꽃들을 세어보니 그 이름이 들어오는 것만 대략 100여종이 됩니다. 그걸 소개하려면 거의 일년이 걸릴 것이고 그 사이 하나 둘 알아가면서 꽃여행이 계속 될터이니 이러다간 꽃에 발목을 잡힐 것 같습니다.
이제 몇 회를 목표로 하는 것이 무의미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연재기사를 마치고 그냥 <사는이야기>로 그 여행을 이어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김민수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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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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