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41회

등록 2004.10.26 08:21수정 2004.10.2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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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수하 중 한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름난 포두 출신으로 상화각 거처에 어른거리는 사람들을 살피라고 세 명이나 풀어놨는데, 뒤 창문 쪽에 있던 수하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죽어 있었소. 다른 사람들은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고 있더군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명포두 출신이라면 최소한 자기 몸을 지킬 정도는 된다. 더구나 전영반이 이끌고 다닐 정도의 수하면 알아줄만 하다. 그런 그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다니 상대는 절대 쉽게 잡힐 자가 아니다. 더구나 이제는 범인이 한명이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래 수화의 방에 없어진 물건이 있던가?”
“아까 제가 손대인께 언마님이 절에 다녔냐고 여쭤 본 적이 있지요?”
“그렇지.”
“그 때 제가 손에 들고 있었던 것이 미륵불상이 맞지요?”
“그런 것 같군.”
“그런데 그것만 없어졌더군요.”

기이한 일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범인이 가져간 것이 고작 그것이라면 무언가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다. 좌중은 생각에 잠겼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갈유였다.

“백련교(白蓮敎)야. 맞아. 범인은 백련교도일 가능성이 높아. 전영반. 아까 소규헌에서 죽은 아연이란 소녀 있지?”

갈유가 무언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무언가 감이 잡힌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 소녀의 가슴 아래 찍힌 장인(掌印)이 특이해 기이하다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백련교도들이 익히는 백인장(白刃掌)의 장흔이야. 희미하기는 했지만 분명 하얗게 변해 있었어.”


백인장은 백련교의 독문무공이다. 백인장을 맞은 시체는 장인이 하얗게 남는다. 더구나 백인장을 극성으로 익히면 장인이 남지 않고 날카로운 흉기로 난도질 당한 것 같이 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었다.

“맞군요. 단혼연을 사용한 것도 백련교와 관련이 있겠군요.”
“선사. 백련교는 미륵불을 모시지요?”
“아미타불….”


광무선사는 갈유의 말에 합장을 하며 불호를 외었다.

“반드시 백련교만은 아니오. 미륵불은 불가에서 말하는 이상향의 세계를 열 불타이시오. 허나 백련교에서는 현세에 나타나시리라 현혹하는 것 뿐 이외다. 미륵불은….”

미륵불(彌勒佛)은 먼 훗날 이 땅에 출현하여 중생들을 제도할 부처이다. 불가에 귀의한 모든 사람들이 죽어서 가고자 하는 이상향인 도솔천에서 천인(天人)들을 위해 설법하고 있어 아직은 부처님이 아니므로 미륵보살이라고도 한다.

<미륵하생경>에 의하면 장차 전륜성왕이 지배하는 세상이 오면 미륵이 태어나 용화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고 세 차례의 설법으로 무수한 중생들을 남김없이 제도하여 이 땅에 용화세계(龍華世界)를 건설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대개 미륵불상은 용화꽃 봉우리나 꽃가지를 든 용화수인을 짓고 있는 형상으로 표현되며 미륵불을 모신 전각을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부른다.

“종파(宗派)에 따라서 경중이 있지만 불가에 있는 사람이라면 미륵하생을 믿소이다. 다만 불가에서 대웅보전(大雄寶殿)에 모시는 부처님들은 미륵불이 아니라 불타 삼신으로 법신불(法身佛), 보신불(報身佛), 화신불(化身佛)을 모시고 있소.”

법신불은 주존(主尊)이신 비로자나불(毘盧蔗那佛)로 광명이 두루 비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보신불은 아미타불(阿彌陀佛), 화신불은 노사나불(盧舍那佛)로 대부분의 사찰 대웅보전에 모셔진 부처는 대개 위 세 부처다.

“백련교에서 말하는 미륵불은 민간신앙과 합해져 미륵신앙을 믿는 자를 구원해 주리라 하는 것으로, 도력(道力)과 술법(術法)을 이용해 호풍환우(呼風喚雨) 하는 모습으로 현혹하는 것이오. 이 때문에 많은 힘없고 가난한 양민들이 어려운 현실을 도피하고자 가입하기도 했던 일을 기억하시지 않소?”

대명이 건국된 지 사십여년. 원말의 농민반란은 백련교도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백련교는 천여년 전 동진(東晋)의 승려인 혜원이 노산(盧山)의 동림사(東林寺)에서 제자를 모아 조직한 백련사(白蓮社)에서 기원한다. 그 후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년 전 남송(南宋) 초에 모자원(茅子元)을 교조로 하는 백련종(白蓮宗)이 그 주축이 된 것이다.

염불삼매를 수행하며 아미타불을 믿었으나 당대의 미륵불을 신봉하면서 미륵불의 내세를 믿고 현세를 부정하는 것이 주된 교리다. 그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주술적(呪術的) 경향이 짙어져 불교에서는 사교(邪敎)라 하여 배척받았으나 현세를 부정하고 극락정토로 갈 수 있다는 사상 때문에 절망한 농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반란에 가담하게 하는 등 민생이 고달프고 나라가 어지러울 때면 반드시 나타나는 종교집단이다.

또한 원말에는 이와 비슷한 명교(明敎)와 미륵교(彌勒敎) 등도 농민들 사이에 퍼져 있었는데 백련교와 상호 융합되면서 그 기세가 커지게 되었다. 원말 농민반란의 주역이 된 홍건군(紅巾軍)은 단순한 민란의 주동자들이 아닌 백련교도들이 무장을 갖춘 정예병력으로 변질된 것으로, 그 명분도 이민족을 대륙에서 몰아내고 한족(漢族)을 부흥(復興) 시킨다는 거대한 기치 아래 그 힘을 더욱 발휘하였던 것이다.

“손대인. 혹시 집안에 백련교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전연부의 질문에 손불이는 펄쩍뛰듯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전영반… 백련교도가 언제 자신이 백련교도라 하던가? 대명 천지에 백련교도라 떠들고 다닐 사람이 있겠냐는 말일세.”

하기야 그렇다. 백련교는 남송(南宋)과 원(元)하에서도 그러했지만 명 건국 후 사교(邪敎) 또는 마교(魔敎)라 하여 백련교도를 중하게 처벌했기 때문에 그 숫자는 현저히 줄어 들었고, 지하로 숨어들 수 밖에 없었다.

“손가장 내에 백련교도가 있다고 하세. 아마 내일이면 관가에서 포승줄 꿰차고 와서 줄줄이 엮어 갈껄.”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범인은 이 손가장 내에 있는 백련교도라 보이는군요.”

냉정한 말이었다. 만약 진짜 이 집 안에 백련교도가 있다면 손가장에 정말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백련교도에 대해서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 것이 대명이다. 지금은 그래도 나아졌지만 특히 태조 주원장 시절에는 가족 중 한 사람이 백련교도라 하면 일가족을 처형하기도 하였다.

“집안에서 세 명… 아니 전영반 수하까지 네 명이 죽었는데 이젠 백련교도라… 정말 마가 끼어도 집안 말아먹을 마가 끼었군.”

사실 대명 건국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은 백련교도들의 민란과 홍건군이다. 주원장 자신도 홍건군과 백련교에 몸담은 적이 있는 백련교도였다.

하지만 대명을 건국한 후 교언이설(巧言異說)로 농민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백련교도는 이제 필요 없었고, 또한 황권이 안정되지 못하던 대명 초기에는 결정적으로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었다.

더구나 주원장은 그의 신분(身分)과 과거로부터 단절되고 싶어했다. 그래서 더욱 백련교도의 씨를 말릴 필요가 있었다. 전연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니 더욱 집안 사람들을 교화하기 전에 잡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빨리 잡아내야지. 헌데 어떻게 잡아낼텐가?”
“이제 대상은 많이 좁혀졌습니다. 지금부터는 확인을 해야죠.”

전연부는 이제야 감이 오는 모양이었다. 하루가 한 달이나 되는 것 같은 피곤한 하루였다. 계속되는 살인에 자신도 당황했었다.

“한 가지만 확인하면 내일쯤 밝혀낼 수 있겠죠.”

전연부의 말에 좌중은 의혹의 눈초리를 보였다. 아직 범인에 대한 확신이 있을 시기가 아니다. 범인에 대해 밝혀진 사실이라고는 추상적인 것들 뿐이다.

백련교를 신봉하는 여자라는 점, 무공이 고강하면서 특이한 취향을 가진고 있다는 점이다. 하기야 이 정도로 좁혀진 것만도 다행이다.

“다만 한 가지… 표물이나 두 소저가 본래의 목적이었다면 왜 언 작은마님을 죽여야만 했을까? 이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는군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의 이목을 딴 데로 돌리려 한 것은 아닐까?”

갈유의 말이었다. 나름대로 타당한 말이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그렇다고 보아야죠. 하지만 이목을 끌기 위한 방법은 얼마든지 있죠. 굳이 살인이라는 어려운 방법을 택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대인께서는 저와 말씀 좀 나누셔야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제 돌아가 쉬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이만큼 감을 잡은 것도 여러분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벌써 자시가 넘어 축시 중반이다. 잠을 잔다 해도 두시진 이상 자기 어렵다. 하지만 이렇게 있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내일을 위해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손불이와 전연부, 갈유만이 그 자리에 남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머물고 있는 정고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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