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40회

등록 2004.10.25 07:35수정 2004.10.2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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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혼연(斷魂煙)에 천린귀화(天燐鬼火)…?”

구양휘가 나직이 뇌까린 말이었다. 아직도 방바닥에서 시퍼런 귀화를 널름거리고 있는 불꽃을 보며 한 말이었다. 그 말에 팽악은 급히 밖으로 나가 흙을 가져와 귀화 위로 덮으며 발로 밟았다. 신기하게도 꺼지지 않을 것 같던 시퍼런 불꽃의 귀화는 금세 하얀 연기를 피어 올리며 꺼졌다.


“송소저…! 다치셨소?”

담천의는 급히 주저앉아 있는 송하령을 곁으로 다가갔다.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예… 팔뚝에 비침을 맞은 것 같아요.”

그녀는 호흡을 가쁘게 내 쉬었다. 그녀의 얼굴색이 회색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담천의는 서슴없이 그녀가 부여잡고 있던 팔뚝을 걷어올리고 상처를 보다가 서슴없이 입을 대고 쭉쭉 빨아내기 시작했다.

"퇫…!”


한 모금 죽은 피를 빨아낸 담천의가 뱉어 내고 다시 빨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습니다.”


현학이 혜각대사를 보고 한 말이다.

“아미타불… 결국 이 집에서 일어난 일이….”

표물과 송하령, 서가화가 목적이었다는 말이다. 담천의는 송하령의 팔뚝에서 입을 떼었다. 그의 이빨 사이에는 가느다란 세침이 물려 있었다.

“퇴…!”

그의 입에서 물려있던 비침이 한쪽 벽에 끝도 남기지 않고 박혔다. 그의 얼굴은 한줄기 노기가 흘렀다. 그의 표정을 살피던 송하령이 배시시 웃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괜찮은 것 같아요.”

그가 마음 상해할까 걱정되어 하는 소리다.

“용폐산(溶肺酸)이군요. 몸 속에 들어가면 폐를 녹이는 치명적인 독이오.”

독을 빨아내 조금 안정을 찾는 것 같았지만 얼굴색이 회색으로 변하고 호흡이 가빠진 송하령을 본 갈인규가 독을 알아보고는 급히 품속에서 단약 두개를 내놓으며 담천의와 송하령에게 한 알씩 주었다.

“고마워요.”
“용폐산이 몸에 들어 간지 두 시진이 지나면 대라신선이 와도 살릴 수 없지요.”

담천의는 단약을 삼키는 송하령을 보고 그에게 준 단약을 갈인규에게 돌려주려했다.

“만약을 위해서니 그냥 드십시오. 해가 되는 건 없으니까요.”

갈인규의 재차로 권하는 말에 그는 단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단혼연은 그리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마시면 몸의 균형이 무너져 움직임이 둔해지고, 정신이 혼미해 지지만 한 두시진 맑은 공기를 쐬면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그래도 담천의가 송하령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사이가 갈인규다. 갈인규와 같이 방을 사용했고, 갈인규는 담천의에게 깍듯하게 예우를 하고 있었다.

“정말 겁도 없군. 단혼연은 본래 백련교도(白蓮敎徒)들이 집단의식을 치를 때 사용하던 것을 개조해 무림인들이 연막이나 도피할 때 주로 사용했는데….”

구양휘는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최근에는 사용하는 자들이 거의 없다.

"수작부린 자는 본건가?“
“보기는 했지만 방을 나온 순간 두 명이 저쪽 정원 숲으로 들어가는 뒷모습만 보았어요.”

안 본 거나 다름없는 서가화의 말에 송하령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몸집이나 몸놀림으로 봐서 여자였어요.”
“여자라… 예상한 것과 같은가?”

구양휘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을 이었다.

“천린귀화를 제조하는 비전(秘傳)이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그것을 구슬에 넣어 폭약과 같이 사용한다…?”

누군지 몰라도 암기와 독, 그리고 화약에 대해 박대정심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면 만들 생각조차 버려야 한다. 저러한 것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그 방면에 있어서 가공할 능력의 소유자다. 또한 그것을 사용했다는 것은 이미 시험단계를 지나 활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두 여인을 기습했던 인물의 두뇌도 비상하다. 날아오는 암기를 무작정 피할 수는 없다. 피할 수 없으면 무기나 손으로 쳐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것이라면 쳐내는 순간 퍼지는 천린귀화를 피할 수는 없다.

천린귀화는 일단 불이 붙으면 꺼지지 않는 불꽃이다. 닿는 것을 모두 태우며 끝까지 파고 들어 간다. 사람이 맞으면 살이 타들어 가게 되고 그것을 끄려면 오직 흙으로 덮는 수밖에 없다. 금속이라도 녹이며 타들어 간다는 천린귀화에 있어 상극은 기이하게도 흙이었다.

“두 사람은 운이 좋았군.”

위기를 넘긴 송하령과 서가화의 상황을 요약한 구양휘의 결론이었다. 담천의를 비롯 좌중의 인원은 모두 동감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사실 계획은 완벽했던 것이다. 안에서 단혼연을 피우면 방문을 열고 나올 것이다. 나오지 않으면 단혼연에 몸이 느려지고,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면 쉽게 해치울 수 있다. 누구나 나올 수밖에 없다.

나오는 순간은 기다린 기회다. 천린귀화탄으로 정신을 빼고 불길이 번지면 당황한다. 그리고 손을 쓰거나 용폐산이 묻은 비침으로 공격하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비침이 한 대가 아닌 여러 대를 맞으면 그만큼 독효는 빠르게 진전된다. 아니면 그 자리에서 병기로 공격할 수도 있다.

그것을 벗어난 두 사람은 정말 운이 좋은 것이다. 물론 상대가 너무 성급했다는 점도 있었다. 경험이 많지 않은 자라는 뜻이다. 또한 사건이 생기고 바로 담천의 일행이 들이 닥쳤으니 그것을 안 범인은 더 손쓸 사이도 없이 도망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간적으로 늦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갈유와 전연부의 모습이 보였다. 이미 펼쳐져 있는 상황을 보니 두 사람은 무슨 일이 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목적이 분명해 졌군요.”

전연부는 탄식처럼 말을 뱉었다.

“마차의 표물 황금 만냥은 자물쇠가 부서져 있었지만 안의 물건은 그대로였소. 다만 그 속을 뒤진 흔적이 있었소.”

황금 만냥은 작은 것이 아니다. 정말로 큰 돈이다. 한 가족이 평생 흩뿌리고 살아도 남는 돈이다. 그 돈은 건들지 않고 뒤지기만 했다면 분명 다른 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노리는 물건은 서소저와 송소저가 가지고 계시겠구려.”

송하령과 서가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의 확답이다. 범인도 범인이지만 전연부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야했다. 그것이 그의 임무 중 하나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 그런 것을 물을 수는 없다.

“일단 갈대인과 본인은 자죽헌(紫竹軒)으로 돌아 갈테니 나머지 분들은 이곳에 계시는게 좋을 싶구려.”

그의 말에 일행은 고개를 끄떡였다. 가장 시급한 일은 서가화와 송하령의 보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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