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47회

등록 2004.11.03 08:18수정 2004.11.0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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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마님의 죽음을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은 아취였지요. 그러나 정작 알린 사람은 누구였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가 쪽에 서있던 아취가 신형을 날리며 창을 뚫고 나가고 있었다.


와장창----!
“어--맛---!”
“악----!”

옆에 있던 시비들의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지금까지 같이 지내던 동료였다. 생각지도 않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지만 그 비명성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들은 또 다시 비명을 질러야 했다.

“돌아가거라!”

광무선사의 웅후한 소리와 함께 부서진 창문 안으로 아취의 몸이 되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쿵---!

입가에 가느다란 선혈과 함께 그녀는 어렵게 몸을 일으켜 세우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녀는 팽악의 손짓 하나로 다시 주저앉았다. 혈도가 제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혜원대사와 현진도장이 들어섰다.


“무량수불… 이미 정리되신 것이오? 전영반.”

현진은 도호를 그으며 전영반을 향해 물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대기 중이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아취가 신형을 날리는 순간에도 뒤를 쫓는 사람이 하나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밖은 광무선사 등이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가 진짜이지요.”

전연부는 이제 한결 여유로워져다. 아취의 행동으로 자신이 확신하고 있던 사항들이 모두 맞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앵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취는 그 시각 바로 소규헌으로 가서 아연을 살해한 직후였을테니 그녀는 당연히 알릴 수 없었죠. 그래서 윤마님은 아앵을 시켜 죽음을 확인시켰고, 아앵은 놀라서 큰마님에게로 알리려 온 것이지요. 그동안 아취는 먼저 자신의 거처로 가서 아앵이 큰마님을 모시고 오자 큰마님 곁에서 부축하며 자리를 뜬 것이지요.”

금의위의 명 영반이라는 전연부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그는 이제 완전하게 올가미를 씌웠다. 윤소소가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자… 이래도 부인하시겠나요? 한가지 더 말씀드릴까요?”
“…….”

윤소소는 의외로 침착했다. 여기까지 오면 아취처럼 도망을 가거나 다른 행동을 해야했다. 하지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다.

“어제 손대인께 마님들의 취향을 여쭈어 보았지요. 사실 잠자리까지 묻는다는 것이 곤혹스럽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헌데 윤마님의 취향을 듣는 순간 모든 것이 풀리더군요.”

이 일과는 상관없이 모든 처첩들의 시선이 손불이를 향했다. 아마 눈빛으로 때려죽일 수 있었다면 손불이는 지금쯤 그녀들에게 맞아 죽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잠자리에 자신들의 취향까지 남에게 이야기하느냐 말이다.

그는 더 이상 입에 담기 싫다는 듯 윤소소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이야기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때였다.

“되-었-다!”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윤소소의 몸은 탁자에 앉은 채로 허공에 더 올랐고, 바로 전연부를 향해 창백하리만큼 하이얀 팔을 휘두르며 일장을 뻗었다. 백련교도들이 사용하는 백인장(白刃掌)이었다. 하지만 이미 투명한 빛을 뿜는 것으로 보아 십성에 이른 것 같았다.

“헉----!”

전연부는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그 역시 천비수(天匕手)란 외호를 가진 무인이다. 하지만 급작스러운 윤소소의 공격에 다급히 몸을 젖히며 옆으로 굴렀다. 그러나 윤소소의 목적은 전연부가 아니었다. 그녀는 허공에서 바로 지척인 경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머님은 건들지 못한다!”

갈인규는 이미 경여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일수를 향해 일권(一拳)을 뻗었다. 웅혼한 권풍과 함께 그녀가 노린 한수가 빗나갔다.

“제법이구나. 소림의 비전 심의권(心意拳)이라니… 하지만 어림없다.”

심의권(心意拳)은 소림의 비전절기다. 백보신권(百步神拳)과 소림오권(少林五拳)은 소림의 내공을 기초로 익히는 절기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심의권은 마음으로 익히며 그 기법이 풍부하고 격식에 치우치지 않는 다양함으로 소림에서 이를 익히는 승려들이 오히려 적은 편이다. 따라서 처음에는 진전이 전혀 없는 듯 하다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심의권이다.

하지만 윤소소의 신형은 어느새 탁자와 평행이 되면서 왼손으로는 갈인규의 심의권을 밀어내면서 오른손은 여전히 경여의 견정혈(肩井穴)을 노리며 파고들었다.

“이런---!”

갈인규는 경험이 극히 적었다. 많은 것을 익혔지만 실전 경험이 없는 관계로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더구나 문제는 손불이의 첫 번째 소실인 한미령(漢美玲)이었다. 절박한 순간에 느닷없이 겨우 일장도 채 못되는 거리에서 미끄러지며 경여를 낚아채 갔던 것이다.

“아미타불--!”
“헛---!”

좌중의 모든 사람이 다급성을 터트렸다. 그녀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의 힘으로 빠져나갈 수 없게 되자 경여를 볼모로 하여 빠져나가려는 수작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생각은 옳았다.

이 안에 있는 목숨 중 손불이와 경여보다 더 중한 목숨은 없다. 지금의 경우에는 손불이 보다 경여가 더 이용가치가 클 수 있었다. 한미령은 이미 경여의 견정혈과 완맥을 쥐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미 윤소소의 오른손도 경여를 잡는 순간이었다.

“네년들이 감히 나를….”

경여의 그 말은 끝나지 않았다. 어떻게 움직였는지 갈인규 뒤쪽에 있던 담천의가 미끄러지듯 다가들며 양손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신형의 움직임이 물 흐르듯 유연하다. 너무나 부드러워 좌중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움직임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부드러운 양팔의 움직임은 이미 경여의 몸에 닿고 있던 윤소소의 손과 한미령의 공격을 밀어내며 그들 두 여인의 완맥을 잡아끌고 있었다. 마치 쇠가 자석에 달라붙듯 그녀들의 완맥은 담천의의 양 손아귀로 들어갔고 동시에 윤소소는 가슴에 격렬한 통증을 느끼며 허리를 굽혔다.

퍽---!

갈인규가 그의 공격을 거두지 못한 탓이었다. 그는 한손으로 자신을 밀어내며 한손으로 경여를 잡아가는 윤소소의 가슴을 노리고 공격한 것인데 담천의에게 완맥을 잡힌 윤소소가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맞은 것이다.

“우욱---”

윤소소의 입에서 피가 솟구쳤다. 핏물에는 내장부스러기가 섞여 쏟아졌다. 심의권은 무서운 무공이다. 단 한방으로 오장육부가 파열되는 것이다. 초기에 진전이 없는 점도 그렇지만 그 위력이 파괴적이라 소림 내에서 잘 익히지 않는 무공인지 모른다.

“아미타불----!”
“무량수불----!”
“으--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좌중은 일제히 경악에 찬 신음을 터트렸다. 이 자리에 있는 무림인치고 중원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미 누구나 손꼽을 수 있는 인물들이다. 그렇기에 저 단순하게 보이는 담천의의 한수가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두 여인의 공격은 너무 빠르고 정확했다. 그 상황에서 그녀들은 최선의 공격을 감행했고 이 자리의 누구도 그녀들의 그러한 공격을 저지하지 못했다. 위치적으로 가까이 있었다고는 하나 담천의는 그녀들의 공격을 막아냈을 뿐 아니라 그녀들을 가볍게 제압했다.

특히 혜각대사와 현진도장의 충격은 다른 사람과 또 달랐다. 담천의의 한수에 대한 감탄은 같았지만 그들이 느끼는 대상은 달랐다. 혜각대사는 심의권의 오의(奧義)를 깨닫고 있는 갈인규에 대한 찬탄과 담천의의 놀랄만한 무위였으나, 현진도장은 담천의의 저 부드러운 비기(秘技)였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모르는 저것…!

분명 무당의 무학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저러한 무학을 본 바도 익힌 바도 없다. 무당의 비기(秘技)로 보이나 한번도 본적이 없는 그 무엇…!

하지만 현진의 가슴은 용암이 끓어오르는 기이한 감흥을 맛보았다. 당장 물어 보고는 싶지만 그는 가슴 한가득 혼란과 기이한 감흥을 안은 채 담천의를 주시했다. 이미 장내는 정리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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