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46회

등록 2004.11.02 08:14수정 2004.11.0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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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교도는 이제 사라졌나 했는데 뿌리가 깊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 같군요. 안전하다고 생각한 손가장 내에도 그 사람들이 끼어 있으니 말입니다.”

“….”
“하지만 문제는 왜 언마님을 살해 했냐는 거지요. 목적을 달성하는데 그리 필요한 일은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경계심만 더 가지게 될 테니까요.”


그의 지적은 옳다. 굳이 언수화를 죽일 이유가 있었을까?

“하지만 거기에 또 하나의 숨은 뜻이 있었어요. 손가장은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드나드는 곳입니다. 손대인의 인덕(人德)과 사람을 가리지 않는 고매한 인품(人品)덕택이지요.“

그는 손불이에게 잠시 목례를 보냈다.
“원, 사람. 말하다말고, 싱겁기는.”
손불이는 계속하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러다보니 손가장은 중원의 명물이기도 하지만 백련교나 여러 문파에서 본다면 반드시 정보원(情報員)을 심어두어야 할 곳입니다. 이곳에서라면 왠만한 중원소식은 앉아서도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지요. 특히 언마님의 경우는 손가장 내에서도 가장 빠르고 정확한 정보통로가 될 수 있었지요.”

언수화는 손가장내 손님을 맞는 역할을 했다. 경여가 건강이 좋지 않은 관계로 특별한 사람이 아니면 나서는 일이 없이 이곳에 오는 손님이라면 거의 언수화가 했다. 그의 말처럼 언수화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원의 소식과 정보에 전문가만큼이나 많이 알고 있었고, 새로운 소식이나 정보도 가장 먼저 알 수 있었다.


“그 말은 맞는 것 같군요. 수화는 이재(理財)나 상술(商術)도 뛰어났어요. 가끔 내 방에 와서는 물건 중 어떤 것은 미리 사 놓을 것을 권유했어요.”

경여의 말이었다.


“수화가 말한 것을 사두면 그 물건이 얼마 안 되어 폭등하기도 했지요. 한번은 사놓으라는 음식재료를 사놓지 않았다가 고생한 적이 있었어요. 아마 야채였던 것 같은데 열흘쯤 지나고 나니 가격도 가격이지만 폭우 때문에 물건들이 사용하지 못할 것들만 나오더군요.”

손님이 항상 들끓는 곳이다 보니 음식재료도 언제나 창고에 쌓아 놓아야 한다.

“정보는 황실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중요하지요. 손대인께서는 더구나 상인이시니 이미 정보의 중요성을 아시고 계실겁니다. 하여튼….”

그는 목이 마른지 옆에 누가 마시다 만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자신이 이곳에 들어와 정보를 얻을 수는 있지만 언마님처럼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얻기는 힘들었을 겁니다. 당연히 언마님과 가까워질 필요가 있었어요. 하지만 여자끼리, 특히 한 남편을 모시는 여자끼리 속내를 다 들어 내놓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했지요.”

정보를 얻는데 상대에게 내가 정보를 캐고 있다는 생각을 알게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이미 경각심을 가질 것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주기 어려워진다.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이곳에 마님들이 많다보니 손대인께서 충분히 잠자리를 같이 하시기 어려웠지요. 험험, 죄송합니다.”

그는 재차 손불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미 어제 저녁 손불이에게 모두 들은 터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 하자니 미안했다.

“더구나 손대인께서는 친구분들을 워낙 좋아하시다 보니 더욱 그랬을 겁니다. 이미 나이도 삼십대에 접어든 언마님이야 말할 나위 없지요.”

여자의 삼십대는 무르익을 데로 무르익은 나이다. 이미 쾌락이 무언지 알았고, 남자의 요구보다 자기 몸이 먼저 달아올라 덤벼들 나이인 것이다.

“그것을 이용한 겁니다. 다행히 언마님은 상대의 은근한 수작에 호응하게 되었겠지요. 그 분의 몸을 봐도…, 어험, 하여간 여자끼리 즐긴다는 죄책감은 있었지만 상대와 언마님은 은밀히 쾌락을 즐겼고, 침실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곧 새로운 정보일 뿐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요.”

여자끼리의 행위를 민대질이라 욕을 하며 경멸했지만 의외로 그런 일은 많았다. 특히 여자가 많은 집안에서는 시녀들끼리 그런 행위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나 은밀하기도 하여 모르는 경우가 많았고, 밝히길 꺼려했기 때문에 발견되어도 덮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남자에게도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남색질이라 욕설한 것으로 보아 비단 여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서서히 백련교에 대한 교화도 시작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미륵불상을 건네 준 것이구요. 물론 언마님은 아직 교화된 것이 아니었지요. 헌데 이번 일을 시작하자니 언마님이 문제가 된 것이지요.”

“…?”
“일을 벌리다 보면 백련교와 관련 있다는 말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범인이 누군지 바로 밝혀질 것 같으니까 범인은 이중효과를 노리고 그녀를 살해한 겁니다. 즉, 한 가지는 죽여서 미리 입을 막자는 것과 우리들의 이목을 다른 데로 돌려 목적을 쉽게 이루자는 것.”

사건은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살해동기와 목적이 명쾌하게 밝혀지고 있었다.

“소규헌에 있던 아연(娥嚥)이 살해된 것도 같은 맥락이지요. 언마님의 시비였던 그녀는 범인과 언마님간의 관계를 알았어요. 그 때문에 2개월전 언마님을 꼬드겨 시비를 바꾸었던 것이고, 언마님의 살해 소식이 알려지면 그녀가 그러한 비밀을 말할 것이니 그 전에 살해할 수밖에 없었지요. 세 번째 죽은 아앵(娥櫻)도 마찬가지였어요. 언마님은 몰라도 아연이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혹시 하며 자신의 주인을 유심히 살피는 아앵은 확신하게 될 테니까요.”

그는 말을 끊고는 윤소소를 바라보았다.

“안 그런가요? 윤마님?”
“그런 말도 안 되는 ….”

“시간이 없어 자기 처소에서 아앵을 죽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또 다른 함정이었지요. 아주 교묘했어요. 일반사람이라면 당연히 윤 마님을 의심했겠지만 저 같은 전문가들은 오히려 윤 마님이 아니라는 확신을 들게 해주는 증거가 되죠. 저도 용의자 중에서 윤 마님을 제외시키고 헤매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으니까요.”

조사하는 사람의 능력까지 헤아렸다는 이야기다. 무척이나 치밀한 두뇌의 소유자다.

“헌데 문제는 또 하나 있었어요. 고민되게 만드는 일이었죠. 바로 소규헌에 있던 아연을 살해한 사람은 윤마님이 아니었거든요. 같은 내원에 있지만 소규헌은 여기 갈소협의 전용거처라 큰마님께서 자신을 제외한 다른 분들은 이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다고 들었지요.”

“맞는 말이오. 전영반.”

경여는 그 말을 바로 인정해 주었다. 그녀가 다른 첩실들을 막은 이유는 혹시나 갈인규를 유혹하면 안 된다는 그녀의 기우(杞憂)에서였다.

“아무리 은밀해도 시비들이 많은 이곳에서는 눈에 뛸 염려가 있었어요. 만약 소규헌에 마님이 들어가면 즉각 큰 마님께 보고될 것이고 그것으로 바로 범인이 밝혀지게 되는 우를 범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시녀들은 괜찮았어요. 청소나 정리 등을 하러 가는 시비를 누가 이상하게 보겠습니까? 문제는 범인이 하나가 아니라 더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저는 단순한 사건이니만큼 범인이 한명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문제에 봉착 했던 거지요.”

시녀들의 얼굴에도 동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비 중에 범인이 끼어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지만 어제 우리가 큰 마님이 직접 만드신 연포탕(蓮鮑湯)을 먹고 있을 때 언마님의 죽음을 알린 것은 언마님의 시비인 아취(娥翠)가 아닌 윤마님의 시비인 아앵이었지요.”

일반인이라면 이러한 사소한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전문가라면 아주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를 찾는다. 그런 점이 일반인과 전문가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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