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디'는 느린 것이 아니라 여유

중국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재미

등록 2004.11.08 08:18수정 2004.11.0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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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을 배우다

중국에 와서 처음으로 여행한 곳이 풍녕초원(豊寧草原)이었다. 북경에서 어느 정도 가면 되느냐는 말에 대답하기를 '흔진'(很近 : 아주 가깝다)이라 한다. 정확히 몇 시간 걸리느냐고 다시 물어보니 6시간 정도라 한다.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6시간이면 서울에서 부산 가고도 남는 시간인데 이들은 아주 가까운 거리로 인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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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녕초원의 맑은 가을 하늘 ⓒ 정호갑

거리에 대한 관념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 중국은 땅이 넓기에 많은 사람들이 20시간 이상 거리를 예사로 옮겨 다닌다. 그러다 보니 이들에게는 20시간 기차 여행은 일상의 삶이 되었다.

올 여름에 나도 북경에서 우루무치까지 45시간 기차 여행을 했다. 거의 만 이틀을 기차에서 보낸 셈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그렇게 견디기 힘들 정도의 시간은 아니었다. 45시간이라는 것이 머리에 입력되자 마음도 45시간을 지낼 수 있도록 바뀌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진다. 한국에서는 서울에서 부산으로 오고 가는 5-6시간이 그렇게 지겨웠는데, 이제 20시간 기차 여행은 길다고 느끼지 않는다.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거리와 시간에 대한 관념은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꾼다. 흔히 중국 사람들을 만만디라고 부른다. 중국에 살면서 만만디는 행동이 느린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만디는 멀리 보고 기다릴 수 있는 마음가짐에서 나온 '중국인의 여유'라 생각한다.

태산에서 버스를 타고 북경으로 올 때 국도에서 길이 막혀 그 자리에 그대로 1시간 정도 있어도 누구 하나 짜증을 내거나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지 않는다.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느긋하게 기다리면서 자기 할 일을 할 뿐이다.

기다림은 수양이다.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속담도 있다. 늘 한 순간을 참지 못하여 뒷감당 하기 어려운 경우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많은가? 중국 여행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이 기다림이다.

특히 아이들을 대할 때 기다림은 꼭 필요하다. 아이들과 부딪치는 가장 큰 이유가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에서 비롯된다. 시험이 며칠 남지 않았다, 책상 정리 하여라, 씻어라, 컴퓨터 그만 하여라 등등 아이들보다 앞서 늘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시간을 나의 조급함이 뺏고 있다.

나 또한 그 시절에 조금 엇길로 빗나간 때도 있었지만 잘 넘겨 여기까지 왔는데, 왜 우리 아이들은 못 넘길까봐 걱정하는가? 아이들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만만디의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여유가 필요하다.

도로는 100% 개방된 나라에서 생기는 긴장감

여행을 하면서 봉고나 택시를 이용해야 할 때가 있는데 여행에 지쳐 잠시나마 눈을 붙이고자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속도도 속도지만 중앙선이 따로 없다. 추월하기 위해 중앙선을 예사로 넘나든다.

그러다 보면 오는 차와 마주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정말 아찔한 순간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어떤 때는 길을 가다 잘못 들어섰다 싶으면 바로 역주행을 하기도 하고, 그대로 후진하는 경우도 있다. 목숨을 건 곡예다. 그런데 거기에는 내 목숨도 걸려 있으니 긴장할 수밖에.

이것을 보고 우리 일행 가운데 한 명이 중국은 도로가 100% 개방되고, 도로에서 융통성은 200%인 나라라고 말하였다. 그것을 한 일행이 또 받아 중국은 농경문화와 유목문화가 결합되었는데, 농경문화는 길이 있어 그 길로 가지만, 유목문화는 자기가 길을 만들어 간다면서, 아마 유목 민족의 피가 아직 그대로 흐르는 모양이라면서 우스개 소리를 한다.

명언이다. 도로가 100% 개방된 나라라는 것도, 유목민족의 피가 흐른다는 것도. 하나는 오늘 중국의 현실이고, 또 하나는 중국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현실을 바로 보면서 중국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국을 제대로 알아가는 길이리라.

힘들어도 지나면 이야깃거리가 된다

중국 여행에서 가장 힘든 것이 기차표 구하기다. 기차표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4일에서 5일 앞서 예매를 시작한다. 하지만 왕복표는 없다. 그러므로 출발지에서 표를 구해 출발하더라도 도착지에서 표를 구하지 못 할 수가 있다. 그럴 때 암표를 사야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암표 가운데는 가짜 표도 있다고 하니 잘못 표를 사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돈은 돈대로 물어야 하겠지만 뒤처리를 외국인으로서 어떻게 감당해야 하겠는가?

역에서 기차표를 사지 못해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으면 그것을 재빠르게 눈치 챈 암표상이 슬며시 다가온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표를 바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몇 시간 후에 구할 수 있다며 보증금을 요구한다. 기차역에도 없는 암표를 당신들은 어떻게 구할 수 있냐고 물으면 역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암표에 대한 믿음이 서지 않으면 기차를 포기하고 버스를 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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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침대 버스 구조 ⓒ 정호갑

버스표 구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우리 버스보다 좀더 길고 높은 2층 침대 버스가 있다. 실내도 깨끗하고 해서 10시간 내외로 이동하는 거리라면 굳이 기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 2-3시간 가다 쉬는데 단지 버스 안에서 이동할 수 없어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조금 갑갑한 면은 있다.

태산을 둘러보고 북경으로 오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 저녁 늦은 시간이라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다. 버스를 타려 했지만 버스 역시 끊기고 말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묶을 곳을 찾고 있으니 북경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건넨다.

버스에서 자면 불편하겠지만 그래도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하였다. 고속도로 주변 으슥한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거기서 제남을 거쳐 북경으로 가는 많은 버스들 가운데 빈 자리가 있는 경우 우리를 태울 작정인 모양이다. 아마 버스 기사들과 이들과 연결 고리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21시에 탈 수 있다는 버스가 22시 3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다. 도대체 언제 버스가 오냐고 물으니 말을 슬며시 바꿔 그러나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24시에 온다고 한다. 기다림에 지치고 이들의 무리(5-6명으로 이루어져 있다)가 약간 두렵기도 하여 택시를 잡으려 하니 역까지 데려주겠단다.

그런데 이들은 봉고 안에서 우리에게 호텔을 잡아 주겠다고 한다. 그들이 지금까지 약속을 지키지 못한데 대해 미안함은 전혀 없고 어떻게 해서든지 호텔을 알선하여 그 대가를 받고자 하는 마음뿐이다.

여행에 지친 몸으로 떨면서 쓸데없이 2시간을 보낸 것을 생각하니 그들이 괘씸하다. 그래서 그 호텔로 들어가지 않고 역에 바로 이웃한 호텔에서 하루 묶고 다음날 버스로 돌아 왔다.

말은 쉽게 하고 돌아서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아마 그들이 사람을 의심하는 버릇이 이러한 데서 비롯하지 않았을까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도 지나고 나니 낯선 땅에서 겪은 이야깃거리로 남는다.

중국 여행을 하면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조금 불편하고 순간 화가 나는 것도 중국을 알아가는 재미라 생각하면서 참는다. 중국 사람들조차 죽을 때까지 다 둘러보지 못 한다는 중국 여행. 그래도 또 떠날 계획을 한다. 그리고 어떤 재미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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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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