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능상으로 남아있는 성종의 왕비 공혜왕후 순릉은 지금도 찾는 사람들에게 많은 호기심을 낳게 한다.한성희
여기까지 들은 사람들이 꼭 물어보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조선왕릉 무덤 속에 무엇이 들었는가(금으로 만든 금관이나 귀한 보물들이 들었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찬 눈빛이다)와 옛날 왕의 장례식에 대한 것이다. 수백년 전에 죽은 왕과 왕비가 어느 쪽에 묻혔는지 어느 방향으로 누웠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물을 법한 질문이다.
왕의 장례식은 사대부나 사가와 달라도 엄청 다르다. 보통 사람이 죽으면 염을 할 때 삼베로 만든 수의를 입히지만, 왕과 왕비의 습(襲)에는 흰 비단 옷을 9겹으로 입힌다. 그리고 죽은 지 2∼3일 내에 하는 소렴에 대행(大行. 왕과 왕비가 죽은 후 시호가 붙기 전에 일컫는 말)에 겹옷, 겹이불로 19겹을 입히고, 4∼5일 후의 대렴에는 무려 90겹의 수의를 입힌다.
임금님의 장례
왕의 장례인 국장은 국가사업에 비견할 정도로 많은 돈과 인력을 퍼부은 대단한 중대사였고, 새로 등극한 왕이 첫 번째 국사를 맡는 일이기도 했다.
왕의 병환이 위급해지면 대신을 불러 왕위를 전하는 유교를 작성하게 한다. 임종 무렵부터 솜을 얹어 흔들리는지 살피며 소렴과 대렴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을 내시가 맡는다. 왕비일 때는 나인(女官)이 한다. 승하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왕세자와 대군 이하의 친자, 왕비와 내명부, 외명부의 공주 등은 모두 관과 웃옷을 벗고 머리를 풀며 금, 옥, 비취, 노리개 등을 제거한다.
지금도 각국 대통령이나 수장이 죽으면 전국에 계엄령이 내리고 삼엄한 경계태세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상이 선포되면 계령(戒令)이 내리고 병조에서는 군사들을 동원해 도성의 성문과 대궐을 겹겹이 에워싼다.
이어 예조에서 의정부에 보고하고 중앙과 지방에 공문을 보내 도성과 지방의 관청으로 하여금 계령을 지키게 한다. 5일간 장이 열지 못하며 작은 골목에서 필수품만 매매하게 한다.
왕이 승하 후 3개월이 지난 뒤 졸곡(卒哭)을 하는데 졸곡 전까지 혼인이나 돼지나 소 등 동물의 도살이 금지된다. 이 때문에 국상 한 번 나면 백성들은 고기 구경도 못하고 혼인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의 장례위원회와 같은 임시 관청이 3개 설치된다. 이조판서는 의정부에 보고하여 빈전도감, 국장도감, 산릉도감을 설치하고 국장을 분담하게 한다. 자세히 알리자면 복잡하므로 간단하게 설명하려 한다.
빈전도감은 제조(감독·지휘하는 겸임관직)가 세 명이고 그 중 한 명은 예조판서가 맡는다. 빈전도감의 일은 세 관청 중 비교적 간단하여 소렴과 대렴에 입을 옷, 빈전(일반인은 빈소라 한다), 찬궁(관을 설치하는 일), 성복(상복을 입는 일) 등을 맡는다.
국장도감은 호조판서, 예조판서가 제조를 맡고 명기, 집기류, 악기류, 대여(관을 싣는 큰 가마), 지석, 제기, 책보 등을 만드는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