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 묶는 일, 아무나 할 수 있남유?

올해는 직접 메주를 쑤었습니다

등록 2004.12.01 17:04수정 2004.12.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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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성영

메주를 쑤기 위해 적당한 날을 골라잡았습니다. 올해는 엄니를 모시지 않고 아내와 둘이서 직접 쑤기로 작정했습니다. 예년에는 두 말 반 정도를 쑤었는데 이번에는 그 두 배인 다섯 말을 쑤었습니다. 사랑방 아궁이 가마솥으로 한 번에 콩 두 말 반을 삶을 수 있는데 하루에 두 말 반씩 이틀에 걸쳐 삶고 찧어 열 아홉 덩어리의 '잘생긴 메주'를 만들었습니다.

메주 쑤는 날, 영주네 엄마가 포대기에 영주를 업고 왔습니다. 마실 나왔다가 일손을 도왔습니다. 영주네 아빠 엄마는 올 봄에 결혼한 부부입니다. 우리가 소개시켜준 동네 빈집을 말끔히 수리해 신혼살림을 시작했습니다. 헌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혼한 지 3개월만에 영주가 세상에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손가락으로 셈을 해보자면 영주는 엄마 아빠의 '급한 사랑'으로 결혼식 날짜와는 상관없이 좀 일찍 세상에 태어난 것이죠.

초등학생처럼 장난기 많은 영주 엄마는 초등학교 선생님이고 아빠는 얼마 전까지 사회복지단체에서 일했던 참한 사람입니다. 태어나긴 급하게 태어났는데, 영주는 어지간히도 느려빠진 순둥이입니다. 아직 머리털도 별로 없는 빡빡이 녀석이 칭얼거리기보다는 헤죽헤죽 웃기를 더 잘 합니다. 암튼 태어나 5개월째 된 영주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새로 생긴 동생입니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포대기에 싸여 외할머니 댁에서 자랐던 옆집 희준이가 동네에서 유일한 동생이었는데, 그 녀석이 얼마 전 친가로 돌아갔습니다. 비우면 채워진다고, 그 자리를 빡빡이(나는 영주를 '빡빡이'라고 부릅니다. 녀석의 머리카락이 다 자랄 때까지 그렇게 부를 작정입니다) 영주가 채워준 것입니다.

영주네와 함께 나리씨도 왔습니다. 나리씨는 대전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서 7년 동안 일했다고 합니다.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등의 악법 철폐, 고문 추방 등 인권실현 운동 단체인 민가협에서 씨알도 안 먹히는 인간들과 맞서 싸우면서 속이 많이 상한 것 같습니다.

나리씨는 힘든 몸을 쉬기 위해 영주네 집 옆댕이에 국선도 사람들이 사랑채처럼 지어놓은 보금자리에서 묵고 있습니다. 쉬러 온 사람이 눈앞에 일이 보이니 옷소매를 거둬붙이고 달려들었습니다. 해왔던 일이 그러했듯이 참 참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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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푸라기를 털어낸 말끔한 지푸라기 대여섯 가닥을 서로 교차시킨다. ⓒ 송성영

가마솥에서 푹 삶은 콩을 꺼내 한창 절구질을 하고 있는데 계룡산에서 도 닦는 대철씨도 왔습니다. 대철씨는 본래 사물놀이를 했던 사람인데 지금은 보일러도 고치고 자물쇠도 고치고 집수리도 해가며 마음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대철씨는 영주 엄마와 함께 절구질을 거들어 줬습니다. 날을 잡아 불러들인 것도 아닌데 우연찮게 좋은 사람들이 찾아와 메주 쑤는 맛이 났습니다. 메주 또한 그런 사람들의 손길이 닿았으니 더 잘 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틀에 걸쳐 열 아홉 덩어리의 메주를 만들었습니다. 본래 열 여덟 개가 나오는데 한 개를 작게 쪼개 두 개로 만들어 열 아홉 덩어리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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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닥의 지푸라기로 교차 시킨 부분을 양 옆으로 돌려 묶는다 ⓒ 송성영

홀수로 만들어야 한다는 평소 어머니 말씀을 따랐습니다. 꽉 찬 짝수보다는 예로부터 고집해온 홀수에는 어떤 생활의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짚으로 메주를 묶는 일이었습니다. 마루 바닥에 짚을 깔아 하루 정도 메주를 말린 다음 짚으로 묶어야 하는데 묶는 방법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매년 메주를 쑬 때마다 엄니로부터 배웠는데 전화를 걸어 여쭤볼 성질의 것도 아니고, 영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제사 때마다 매번 상차림을 잊어먹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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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려 다 묶은 지푸라기를 양쪽 옆부분에 얽어 넣는다. ⓒ 송성영

죄 없는 볏짚을 족쳐가며 이리저리 묶어 보다가 틀렸다 싶으면 다시 풀어 묶기를 반복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메주와 실랑이를 하던 끝에 겨우 묶는 방법을 되살려 낼 수 있었습니다. 마루 앞을 오고가며 혀를 차는 아내의 눈총을 받아가면서 말입니다. 알고 나면 다 그렇듯이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습니다.

"어이구, 그걸 한 시간이나 걸려서 알아냈어?"
"이거 내가 하지 않으면 우리 집안에서는 인저 맥이 끊어지게 되는 겨…."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대단한 일이지, 요즘 짚새기로 메주 묶어 메다는 집이 별루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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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시켜 양쪽으로 묶어 완성된 모습 ⓒ 송성영

"뭘 그렇게 어렵게 해, 남들처럼 그냥 망사에 넣어 말리면 될 일을…."
"짚으로 묶는 거하구, 비닐 끈이나 망사에 넣어 말린 메주 맛하고는 전혀 다른 겨."

묶는 방법도 방법이지만 볏짚으로 묶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동네 노인들조차 대부분 비닐 끈이나 망사에 넣어 메주를 말립니다. 메주를 볏짚이 아닌, 비닐 끈이나 망사에 넣어 말리는 것도 메주는 메주입니다. 하지만 볏짚과 비닐의 차이처럼 그 메주로 인한 장맛 또한 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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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으로 얽어 묶은 곳에 메주를 올려 놓는다. ⓒ 송성영

실제 볏짚에는 메주 발효와 관련 있는 균이 많이 묻어있다고 합니다. 그 균들이 고유의 장맛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메주를 비닐 끈이나 망사에 넣어 메달면 과연 고유의 장맛을 낼 수 있을까요?.

집안마다 메주 뜨는 방법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 방법에 따라 장맛 또한 달라질 것입니다. 집안마다 장맛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우리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적인 방법 그대로 메주를 뜹니다. 메주를 만들고 나면 먼저 마루에 볏짚을 깔아 하루 정도 굳게 만들고 볏짚으로 메주를 묶습니다. 그리고 나서 황토 흙으로 잇댄 처마 끝에 매달아 메주가 단단해 질 때까지 말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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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를 올리고 양쪽으로 각각 두 가닥씩으로 볏짚을 갈라 올린다 ⓒ 송성영

메주에 곰팡이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할 때쯤이면 메주를 처마에서 내립니다. 이 메주 덩어리들을 볏짚을 깐 박스에 넣고 아궁이 불을 지피는 방안에 두어 곰팡이가 적당히 나올 때 뜹니다. 그리고는 장을 담습니다. 장 담그는 방법은 예전에 <오마이뉴스>에 올렸습니다.

나는 볏짚으로 메주를 묶어 처마 끝에 매달아 놓고 으쓱거렸습니다.

"햐, 워뗘, 보기 좋잖아, 비닐 끈으로 묶어 놔봐 영 이상할껄."
"대단한 일 하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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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닥의 볏짚을 새끼줄 꼬듯이 꼬아 올린다. ⓒ 송성영

"그람, 대단한 일 했지. 보기에 별거도 아닌 거 같지만 메주 묶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 줄 알어?"
"당신은 한 시간 걸렸지만, 남들은 그거 배우는데 10분도 채 안 걸릴껄."
"그래두 이거 아무나 할 수 없는겨."

단지 볏짚으로 메주 묶는 것에 불과하지만 나는 엄니로부터 배운 이 방법을 아이들에게 물려 줄 것입니다. 엄니는 할머니에게서 배웠을 것이고 그 할머니 또한 윗대의 할머니에게 배웠을 것입니다. 그렇게 이어져 온 전통을 우리 아이들에게 기분좋게 물려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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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 묶기 완성된 모습 ⓒ 송성영

볏짚으로 메주를 묶는 방법,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엄니의 손길이 있고 할머니에 할머니의 손길이 맞닿아 있습니다. 엄니의 장맛이 배어 있습니다. 할머니의 장맛이 있습니다. 전통의 맛이 있습니다.

처마 끝에 메주를 다 매달아 놓고 흡족해 하고 있는 내 옆댕이서 언제나 씩씩한 아내가 그럽니다.

"콩 다섯 말 해놓고 보니까 별거 아니네. 내년에는 열 말도 쑬 수 있을 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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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모두 열 아홉 개의 메주 덩어리를 만들었습니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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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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