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斷腸記)- 68회

등록 2004.12.02 08:42수정 2004.12.0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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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음은 이미 이들에 의해 장원의 모든 사람들이 당했다는 말이다. 너무 허무하다. 완벽한 준비라 했지만 반항 한번 해보지 못한 것 같다.

(사영천을 너무 믿었다.)


그는 이제 자신 혼자서 이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네놈들이 다시 부활하는 것인가? 하지만 세상은 변했어. 네놈들이 설치고 다닐만한 때가 아니야. 또한 이 양만화는 네놈들에게 죽을 만큼 그렇게 값싼 목숨이 아니야.”

그는 말과 함께 초혼령을 손으로 튕기며 사내에게 쏘아 보냈다.
쇄---액-----!
양만화의 무위(武威)는 놀라웠다. 상인인 그가 이 정도의 무공을 익혔다는 것은 자기관리에 철저했다는 이야기다. 쏘아가는 초혼령패는 암기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진(全眞)의 격공비류(隔空飛流)? 제법 하는군.”

사내의 얼굴에 뜻밖이라는 표정과 함께 조소어린 비웃음이 떠올랐다. 격공비류는 전진파의 암기수법 중 하나다. 어떤 물체든 암기화하여 던질 수 있되, 그 물체는 기이한 호선을 그리며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나아가기 때문에 막기 어렵다.


하지만 사내의 손이 허공을 가르자 초혼령패는 쏘아가는 힘을 잃고 얌전하게 사내의 손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파파---파---팍!

방바닥에서 죽창(竹槍)처럼 생긴 여철(藜鐵:도둑이나 적을 막기 위해 흩뿌려 놓은 마름 모양의 쇳덩이)이 올라오고 천정에서 쇠 그물이 사내의 전후방 양쪽에서 빠른 속도로 내려 퍼졌다.


뿐이랴! 침상 모서리 양쪽에서 쏘아지는 독침들. 이건 어느 한 목표를 노리며 날아가는 것이 아닌 방 전체를 가득 채워 피할 틈을 주지 않는 공격이다.

사내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함이 떠올랐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음을 몰랐다. 이것은 보고받은 것 이상이다. 아마 양만화 혼자만 아는 기관장치일 것이다.

“준비도 많이 했어.”

그런 위험 속에서도 그의 어투는 여전했다. 더구나 그는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그 많은 것을 피하고 있었다. 쇠 그물을 이용해 날아오는 비침들을 튕겨내며 여철의 날카로움을 마치 평지 걷듯 움직이고 있다.

(대단한 자다.)

양만화도 이 정도에 자신의 목적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 정도로 무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양만화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오직 자신만이 아는 비장의 한 수가 남아 있었다.

슈우----악-----!

갑자기 천정 모퉁이를 뚫고 나오는 두 줄기 섬전 같은 인영 두개가 사내를 향해 쏘아갔다. 너무나 급작스럽고 쾌속해서 암기를 피하는 사내로서는 도저히 예상하지 못할 공격이었다. 사내의 입에서 처음으로 다급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헛!”

사내를 공격하는 자들은 왜소한 몸집의 마의를 걸친 초로의 인물들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방금 밭일이라도 하고 돌아 온 듯한 모습이었는데, 얼굴 뿐 아니라 드러나 있는 팔이나 다리에는 무수한 상처가 있어 흉측하게 보였다.

“네놈들은 농아쌍살(聾啞雙煞)이로구나!”

사내가 자신을 베어오는 쌍겸(雙鎌:낫)을 피하며 허리를 감고 있던 연검을 뽑음과 동시에 다리를 노리고 짓쳐드는 혈기(血錤:호미)를 쳐냈다. 확실히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들의 공격은 사내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무림인들에게 쫓겨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양만화의 개가 되어 있었군.”

농아쌍살(聾啞雙煞)은 형제다. 하나는 벙어리고 하나는 귀머거리인 이 두 형제는 자신들을 비웃는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였다. 본래부터 악인들은 아니었지만 장애(障碍)가 있는 그들에게 쏟아지는 세상의 따가운 눈길에 잔혹한 살수를 펼쳤다. 그 중에는 구파일방의 문도도 있었는데 그로인해 그들은 많은 무림인들에게 쫓기게 되었다.

하지만 농기구인 낫과 호미를 사용하는 그들의 살수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고, 결국 구파일방에서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지만 그들이 죽었다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다만 십수 년 전부터 그들은 무림에서 사라져 버렸는데 뜻밖에도 이곳에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결정적이라 생각했던 한 번의 기습이 실패로 돌아가자 농아쌍살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 한줄기 당혹스런 기색이 흘렀다. 자신들의 공격은 완벽했고, 이러한 공격을 피할 인물은 무림에서 손을 꼽을 정도다. 의외의 상대다.

하지만 농아쌍살은 서로의 눈빛으로 이미 마음을 정했다. 쌍겸에서는 이미 살얼음이 낀 듯 하얀 백색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핏빛 호미가 이미 사내의 좌측 옆구리를 헤집어 가는 것과 동시에 쌍겸에 그의 머리를 두 쪽 낼 듯이 움직였다. 그들의 필사초식인 육암난비(戮暗亂飛)와 분형혈섬(焚刑血雷)을 펼친 것이다.

츠츠--르--- 쩌---억!

혈광과 푸른 섬광이 피어오르며 허공을 빽빽하게 수놓는 듯 했다. 과거 삼십여명이나 되는 일류고수들의 포위 속에서도 오히려 그들을 살상하고 도망칠 수 있었던 가공할 살수가 이것이었다. 농아쌍살은 상대가 상상할 수 없는 고수임을 알자 처음부터 자신들의 전력을 이 한 초식에 담았던 것이다.

사내도 농아쌍살의 전력을 다한 공격이 의외였던지 몸을 비틀며 어느새 뽑아 든 연검을 빗살처럼 뻗었다. 그에게 있어 검을 꺼내들게 만들 인물은 중원 천지를 뒤져도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농아쌍살의 무위는 예상보다 훨씬 가공스러웠고, 맨 손으로 상대하기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의 검이 허공을 가르자 마치 무지갯빛이 퍼지듯 한줄기의 검기는 두 줄기, 네 줄기로 분리되는가 싶더니 온 방안을 오색찬란한 검기로 휘몰아 갔다.

그 순간이었다. 농아쌍살의 공격을 막고 그들을 휘몰아쳐 가는 사내의 상체에 일말의 틈을 본 양만화가 다가들며 손가락을 튕겼다.

휘리리링-----!

경쾌한 음향과 함께 전진파의 지공(指功)인 파금지(破金指)였다. 극성에 달하면 한 치 두께의 철판도 뚫어버릴 수 있다는 지공.

허나 정작 비명을 지른 것은 양만화였다. 사내는 어느 순간인지 모르게 농아쌍살을 상대하면서도 왼손을 뒤집으며 밀어내자 양만화는 옆구리에 틀어박히는 무형지기에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주저앉았다.

“욱.....!”

그와 동시에 자신의 살갗을 찢으며 흘러가는 몇 줄기의 무형기류를 느끼며 재빨리 몸을 굴렀다. 천잠보의(天蠶寶依)를 입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것마저 없었다면 이미 옆구리가 짓뭉개졌을 터였다.

그리고 그의 동공으로 농아쌍살 중 한명의 수급이 허공에 떠오르고, 또 한명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다급해졌다. 농아쌍살이 이리도 쉽게 죽으리라곤 생각해보지 않았던 양만화였다. 그제야 그는 뼛속 깊이 상대의 무서움을 느껴야 했다.

그는 다급하게 침상 한 모퉁이를 잡았다. 그러자 침상 전체가 가로 세워지며 쏘아 나오는 파르스름한 독액줄기. 닿는 것은 무엇이든 녹여버릴 것 같은 맹렬한 독성을 가진 독액이 분명했다. 그와 동시에 침상 천정 쪽에서 다섯 개의 불길이 빠른 속도로 쏘아 나왔다.

화르르---르--륵--
치이---익----

쏘아 나온 불줄기와 독액이 허공에서 만나자 지독한 냄새와 함께 더욱 맹렬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

“같이 죽자는 건가?”
사내는 급히 신형을 뒤집으며 장을 쳐냈다. 이것은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무형의 강기벽을 형성해 튕겨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방안 전체가 독액이 불에 타오르는 관계로 독연(毒煙)과 독무(毒霧)로 순식간에 가득 찼다.

“나는 죽지 않아, 좀 놀고 있게.”
양만화는 말과 함께 침상 뒤로 급히 구르며 사라졌다.

“도망을? 쥐새끼 같은 놈.”
그의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하는가 싶더니 양 손바닥을 펼치며 가공할 장력을 뻗었다.
콰----쾅----!

미증유의 거력이다. 태풍이 몰아치듯 맹렬하게 쏘아오던 독액과 불길이 삽시간에 밀려나며 침상이 날아가고 뒤 벽체마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치이이익---
퍼져나간 독액이 사방으로 흩어져 벽면까지 녹이고 있다.

“여우굴을 파 놓았군.”

침상 밑에는 닫히다가 만 구멍이 보였다. 사람 하나 들어갈 만한 구멍이 반쯤 닫히다가 멈춰 있었다. 아마 가공할 위력의 장력이 기관 장치마저 부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네놈이 빠져 나갈 수 있을까?”

그는 한자 두께의 청석으로 되어 있는 닫히다 만 구멍입구를 향해 주먹으로 내리쳤다.
파스스----

단단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한자 두께의 청석이 가루가 되어 부셔졌다. 그리고 그는 사방을 향해 장력을 날리기 시작했다.

콰--쾅---쾅---!

양만화의 침실이 풍비박산 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양만화가 사라진 구멍으로 쫒아 들어가지 않았다.

“양만화, 네가 아무리 여우 굴을 수십 개 파놓았어도 죽는 데는 변함이 없어.”

그는 요란하게 양만화의 침실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마치 놓쳐서 분하다는 듯 부수고는 있지만 그의 얇은 입술에서는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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