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새책 7권] 때아닌 봄을 부르는 윤대녕의 '문장'

장편소설 <가상도시백서>와 인권동화집 <블루시아의...>도 출간

등록 2004.12.10 23:13수정 2004.12.1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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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한 문장 속을 흐르는 따스한 피
- 윤대녕 산문집 <열두 명의 연인과 그 옆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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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룸

만약 '시적 화법의 소설'이란 게 존재한다면 윤대녕(43)이 써온 일련의 작품들은 분명 그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서술보다는 묘사, 이야기보다는 이미지 축조에 빼어난 재능을 보여온 윤대녕. 그렇다고 그가 서사에 약한 소설가인가? 천만에다. 첫 작품집 <은어낚시통신>에서 최근 출간된 <누가 걸어간다>까지를 통독한 기자는 감히 말한다. 그의 서사는 재론의 여지없이 '일류'다.

윤대녕을 둘러싼 또 다른 오해 중 하나는 '건조한 문장을 사용하는 작가'라는 것이다. 일견 맞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행간을 읽을 줄 아는 독자라면 이 오해 또한 그저 오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그의 '건조한 문장' 속으로는 사랑에 빠진 연인의 포옹 같은 따스한 피가 흐르고 있다.

최근 출간된 윤대녕의 산문집 <열두 명의 연인과 그 옆 사람>(이룸)은 그가 얼마나 온기 어린 시선으로 세상과 인간을 대해왔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책을 만지면 손으로 따스한 기운이 전해질 정도다. 생경하지만 훈훈한 체험이다. 게다가 책에 수록된 12편의 이야기는 모두 사랑에 관한 것. 따스함과 정겨움은 배가된다.

지난해 가을까지 월간 <꺄사리빙>에 연재됐던 산문에 살을 붙이고, 못 다한 이야기를 더한 <열두 명의 연인과 그 옆 사람>. 윤대녕은 '고독한 무덤'에 다름 아닌 이 땅에서 무기력한 투항자로 살고 있는 우리의 어깨를 애정 어린 손길로 토닥인다. 푸근한 위로. 이는 겨울 속에서 만난 봄의 향기와 진배없다.

수록작 중 '신 삼국유사 가락국기'와 '잃어버린 우산을 추억함'은 특히 봄의 훈풍이 느껴지는 작품들. 이는 분명 윤대녕 문장 특유의 '건조함 속에 숨겨진 따스함' 이 보내는 바람일 터다. 애인 없이 크리스마스를 보낼 여자들에겐 눈물을 부를 책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제몫의 외로움 속에서 산다
- 이신조 장편소설 <가상도시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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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림원

<기대어 앉은 오후>로 제4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이신조(30)가 신작 장편 <가상도시백서>(열림원)를 상재했다. 지난 2001년 가을 첫 소설집 <나의 검정 그물 스타킹>을 낸 후 3년 만이다.

지루한 국지전과 상호비방 등을 반복하던 제국(북한을 의미하는 듯)과 공화국(남한을 의미하는 듯)이 통일된 후 모종의 정치적 이유로 건설된 도시 '만토(晩土)'. 소설은 그 도시로 이주한 6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를 주인공 삼아 전개된다.

뭐니뭐니 해도 <가상도시백서>의 가장 큰 미덕은 70년대산(産) 작가들에게서 쉽사리 찾아볼 수 없는 차분하고, 안정된 문장이다. 이신조는 이 명징한 문장을 무기 삼아 누구도 위로해줄 수 없고, 어떤 명의(名醫)도 치료할 수 없는 '외로움' 속을 살아가는 인간들의 내면풍경을 좇아간다.

그들이 앓는 외로움이란 병은 형태만이 다를 뿐 저마다의 가슴에서 같은 내용으로 존재한다. 채 스물 되기 전 직업군인이 되어 아프리카에서 흑인의 멱을 따던 제국의 군인도, 일류대를 나와 유적발굴 단원이 된 공화국의 최고급 엘리트도 감히 제몫의 외로움을 피해가지 못한다.

소설은 '기어코 만나고 싶은 데도 엇갈리기만 하는 인연' 혹은, '제 속에서 꿈틀대는 욕망 탓에 더욱 고립되는 인물'을 다루고 있다는데서 어안렌즈의 굴절된 화면을 통해 욕망의 덧없음을 설파해온 왕가위의 영화와도 닮았다. 지은태, 나윤, 홍상규, 백우형, 고재욱, 민지석 그리고, '거울탑의 여인'은 사랑을 통해 서로의 외로움을 온전히 털어 낼 수 있을까?

얼굴색과 언어로 사람을 차별하는 죄악이다
- 인권동화집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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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

이태 전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을 항의하는 집회에서 문화평론가 이재헌은 이런 말을 했다. "차이로 인한 차별은 폭력이다". 비단 동성애자 문제 만일까. 태어난 지역 또는, 그 사람이 가진 지위를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 역시 용서하기 힘든 폭력에 다름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창비가 출간한 인권동화집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는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인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차별 역시 명백한 폭력"이라고. 인권의식은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몸에 배야 한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이번 책이 가지는 의미는 만만찮다.

책은 어린이들이 실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소재 삼아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설파한다. 억지스럽지 않고, 도식적이지 않아 좋다. 자연스런 교육과 설득의 힘은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에 작품을 실은 동화작가 박관희, 김중미, 박상률, 안미란 소설가 이상락의 역량에서 기인한다.

다섯 작가의 작품들 서두마다에 각기 다른 화풍의 만화를 그려낸 윤정주의 세심한 배려는 아이들의 작품이해를 돕는다.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일'에 맞춰 자녀들에게 선물하면 좋을 책이다. 좋은 아버지와 엄마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가 애들에게 책을 사주는 것 아닌가.

'학벌없는사회' 공동대표인 홍세화는 "서로 다른 고향,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존중하면서 공존할 때만이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말로 책의 출간을 축하했다.

한줄 이상의 의미로 읽는 신간들

ⓒ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인간>(열린책들)

소설이라는 문학장르 속에 미시적 관찰과 거시적 성찰을 동시에 투영해온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희곡. 이 영민한 작가는 또 다른 장르로의 진출을 통해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외계인에게 납치된 인류 최후의 남자와 여자를 소재로 삼았다는 것부터가 흥미를 끈다. 작가는 이 기이한 설정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묻고있는 게 아닐지. 책에 함께 묶여있는 단편영화 두 편은 모두 베르베르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것이라 한다. 가히 '멀티 인간'의 한 전형이라 할만하다.

이덕형 소설 <검은 사각형>(생각의나무)
재미가 아닌 의미체득의 독서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품격 소설. 성균관대 노문과 이덕형 교수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모스크바와 파리, 밀라노와 이스탄불을 떠돌다. 지금의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강봉룡의 <장보고>(한얼미디어)
드라마 '해신(海神)'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드라마로 한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기는 힘든 일. '반역자'와 '개척자'라는 두 가지 이미지를 한 몸에 지니고 산 장보고의 삶을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본다.

김현자의 <신들의 역사 인간의 이미지>(책세상)
인간과 신은 대립의 개념일까 아니면 더불어 살아온 동지일까. 국내 신화학자의 입을 통해 들어보는 인간과 신의 역사. '신들의 이야기'인 신화(神話)는 과연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허구일 뿐인가?

가상도시 백서 - Snow White City

이신조 지음,
열림원,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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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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