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환자 귀국 도와주세요"

만성신부전증 응아씨 타향에서 발묶여

등록 2004.12.22 17:02수정 2004.12.23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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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19일) 만성신부전증으로 혈액투석을 받고 있는 외국인이 출국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병원에서 만난 환자는 앳된 얼굴의 베트남인이었습니다. 해외투자법인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했던 보티듀엣 응아(Vo Thi Tuyet Nga, 20)씨는 지난 12월 11일 병원측으로부터 만성신부전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귀국 준비 중입니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응아씨가 신장조직검사 관련한 수술과 인공혈관 문제로 지금 당장 비행기를 탈 수 없고 2개월 후에나 탑승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응아씨는 지난 2003년 7월에 입국했습니다. 맏딸인 데다, 부모가 변변한 수입이 없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했던 응아씨에게 해외취업은 꿈의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전북 정읍에 있는 연수업체에서 일년여를 일했던 응아씨는 몸이 자꾸 붓고 아파서 쉬는 날이 많아지자, 일이 힘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업체를 이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탈한 지 석 달째 되면서 몸이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었고, 결국 병원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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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복

병원에서 병명을 확인한 응아씨는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게다가 일주일만에 450만원이 넘게 나온 입원비를 보면 응아씨는 한숨만 나옵니다.


해외투자법인 산업연수생은 국내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하루 12-13시간씩 일하면서 받았던 돈은 고작 월 7-8만원이었고, 매달 20만원씩 강제 적립되었던 돈을 업체가 돌려준다고 해도 병원비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부담이 너무 커지자, 병원에서는 좀더 저렴한 가격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양에 있는 샘안양병원(원장 박상은)을 소개해줬다고 합니다.


샘안양병원에서는 귀국 예정일인 2월까지 약 300만원이 드는데, 일단 상황이 어려우니 귀국할 때까지 후원자들을 알아보고, 치료비는 퇴원할 때 갚는 방향으로 하자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 일을 전해 들은 최홍진씨는 "다른 사람들이야 쫓겨난다 어쩐다 해도 살아서 나가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사람은 죽어 나갈 사람입니다. 죽더라도 고향에서 죽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좀 도와주십시오"라고 말을 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최씨는 베트남 태권도협회 사범으로 7년 반 일했던 인연으로 급한 일이 있는 베트남인들에게 도움 의뢰를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최씨는 이 일로 베트남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대사관측은 "대사관이 나설 일이 아니다. 환자를 데리고 오지 말라"고 딱 잘라 거절했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건 법적 문제가 아니라 당장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고, 자국민이 귀국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건데, 대사관이 이럴 수 있는 겁니까?"

"설령 한국에서 치료를 받고 귀국한다 해도 뒷감당이 안 될 만치 걱정이 태산입니다. 알다시피 베트남에는 관련의료장비도 부족하고 치료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금 귀국하면 당장 죽을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일 텐데 엄마 아빠라도 만나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죽더라도 집에서 죽어야지요."

"응아가 두 달만이라도 맘 편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최씨의 말을 들으면서 사회 소외 계층에 대한 제도적인 의료지원 시스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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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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