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 닭 울음소리 들어 봤어?

낙안민속마을의 사계<4> 낙안읍성에서 포근한 새해를 맞이한 안씨 가족

등록 2005.01.01 15:58수정 2005.01.0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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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불을 덮고 보낸 12월 마지막 날의 안씨 가족. ⓒ 서정일

해외 출장이 잦은 안병한(42)씨. 올해 연말엔 여느 여행과는 다른 색다른 여행을 기획했다. 전통적인 것들을 찾아가 보자는 부인 김윤정씨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

종무식을 일찍 마치고 청학동을 지나 낙안읍성에 도착한 시간은 12월 31일 오후 3시경, 미리 인터넷으로 정한 은행나무 민박집에 짐을 풀고 마을을 둘러본다. 하지만 해가 일찍 저무는 겨울, 민박집 구경이 도착 하루의 전부가 될 모양이다.

그동안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이곳은 처음 방문한다는 안씨의 가족은 초등학생인 원준, 재준을 포함 모두 네명, 한 이불 덮고 자는 것이 즐거운지 원준이와 재준이는 이불 속에서 재잘거리며 뒹굴뒹굴한다. 고향 할머니집 같은 민박집에서의 하룻밤, 그들은 무슨 추억을 담아갈까? 몇 시간 후면 밝아올 2005년을 향해 또 무슨 소원을 빌까? 새해를 맞는 낙안읍성의 첫날밤, 모두 멋진 새해 꿈에 부풀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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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너머로 2005년의 새해가 떠올랐다. ⓒ 서정일

드디어 2005년 새해가 밝았다. 안씨 가족도 민속마을에서 색다른 새해를 맞이했다."닭 울음소리 들어 봤어?" 기자의 질문에 늦잠꾸러기 재준이는 눈만 끔벅끔벅한다. 아침에 닭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도시인에게 쉽지 않은 경험. 더구나 올해가 닭의 해인만큼 꼭 한번 들어 봤으면 했는데 듣지 못한 재준이에겐 아무래도 녹음이라도 해서 보내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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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꼬막 접시로 향하는 젓가락에 쑥쓰러운 듯 웃는 김씨 ⓒ 서정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은 모두 꿀맛. 하지만 경상도 사람들에게 전라도 음식이 맞을까 궁금하다. "정말 맛있어요." 뚝딱 밥 한그릇을 금세 비운 원준이를 보면서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곳은 낙안 팔진미라는 진상 음식을 갖고 있는, 음식 맛으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그래서 매년 10월이면 음식 축제도 열린다. 부부의 입맛이 닮아서 그런지 동시에 젓가락이 꼬막 접시로 향하며 멋쩍게 웃는 안씨 부부. 집에 돌아가서도 이 맛을 잊지 못할 것 같다면서 역시 음식은 전라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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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씨 가족은 성곽을 돌며 한해의 계획들을 얘기했다. ⓒ 서정일

객사 앞을 지날 때 그네 타는 걸 보며 재미있어 하는 김씨. 의기투합해서 그네 타기 시합을 한다. 아빠는 재준이를, 엄마는 원준이를 밀어 주면서 서로 높이 오르겠다고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시합은 길게 가지 않았다.

한참을 재준이 뒤에서 밀어 주던 아빠, 지쳤는지 성을 한바퀴 돌아 보자고 은근슬쩍 줄행랑이다. 자동적으로 시합은 무산되고 모두 애교 섞인 투덜거림 속에 한 계단 한계단 성을 밟기 시작한다. 멀리 들판과 발 아래로 보이는 초가집들이 가족의 신년 나들이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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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안씨 가족. ⓒ 서정일

마네킹이 있어 아이들은 동헌이 재미있나 보다. 곤장을 때리는 인형 앞에서 포즈도 취해 보고 죄인을 향해 호통도 쳐본다. 금방이라도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은 인형 앞에서도 방긋 방긋 웃는 개구쟁이들. 사랑스런 가족들의 모습을 영원히 남기고 싶어 삼각대를 펼치는 안씨, "김치"를 외치며 환하게 사진기를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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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물 공예장에서 재롱(?)을 부리는 안씨 ⓒ 서정일

때 마침 객사 옆엔 메주 만들기 축제가 한창이다.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시골에서 자라서 자신 있다며 눈 깜짝할 사이에 만든 짚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동심으로 돌아간 안씨는 아들 앞에서 재롱(?)을 부린다.

모두 깔깔거리며 웃고 있는 사이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보따리 풀어놓듯 얘기하는 안씨. 내친 김에 떡메 치기에도 도전한다. 여행의 피곤함도 잊고 힘차게 울리는 떡메 소리는 올 한해 나쁜 기억들을 모두 날려 버릴 듯한 시원스런 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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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체험장에서 접시를 만들고 있는 원준이와 재준이 ⓒ 서정일

재준이가 도예 체험장으로 신나게 뛰어간다. 무엇이든 직접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재준이, 그 욕심은 못 말린다. 양손에 흙을 잔뜩 묻히고 한참을 씨름하더니 멋진 사발 하나를 만들었다.

자신도 믿어지지 않은 듯 탁자에 놓여진 작품을 감상하면서 연신 "멋지다"고 입을 다물 줄 모른다. 손에는 도자기 하나, 방금 써 준 가훈을 들고 아쉬운 낙안읍성에서의 이틀을 마감한다.

소중한 추억을 한아름 가득 담아 가는 안씨 가족. 이번 여행을 통해 가족들간에 정이 더 많이 깊어졌다고 흐믓해 하는 안병한씨. 고향 같은 곳에 오니 고향의 마음을 닮아 정이 깊어진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기자와의 작별을 아쉬워 한다.

손을 흔들며 현대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에서 고향에서 편하게 쉬고 가는 여유로움 같은 것을 느꼈다.낙안읍성에서 안씨 가족은 색다른 새해를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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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의 낙안읍성 방문에서 많은 걸 얻고 간다는 안씨 가족. ⓒ 서정일

덧붙이는 글 | 함께 만드는 낙안민속마을의 사계(http://blog.naver.com/penfriends)

덧붙이는 글 함께 만드는 낙안민속마을의 사계(http://blog.naver.com/pen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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