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관광지에 이렇게 다양한 화장실이?

낙안읍성엔 공중화장실도 다양하다

등록 2005.01.04 21:17수정 2005.01.05 14:57
0
원고료로 응원
전남 순천 낙안읍성엔 공중화장실이 모두 일곱 개 있다. 성 안에 4개와 성 밖에 3개, 그리고 딱히 공중화장실이라 표현키는 어렵지만 전시가옥에도 화장실은 있다. 이렇듯 면적에 비해 비교적 많은 공중화장실이 있다는 건 관광객 입장에선 편리한 일.

그런데 재미난 건 모두 제 각각의 모양새를 갖고 있다는 사실. '어찌 짓다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동네 사람들의 우스개 소리로 '시공사가 틀려서 그런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획일적인 규격이나 형식에 의해 지어진 것에 비해 훨씬 낙안읍성다운 화장실이란 생각이 든다.

a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주차장 입구의 화장실 2곳(사진 왼쪽에 입구가 보이는 건물과 오른쪽에 측면이 보이는 건물)의 모양이 다르다. ⓒ 서정일

먼저 주차장 쪽에 있는 두 개의 화장실을 살펴보자, 주차장의 입구며 양쪽에 서 있기에 모양새를 맞출 만도 한데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한쪽은 전통 한옥 형식이며 다른 쪽은 좀더 현대식으로 변한 기와집. 전통한옥 화장실은 높이가 낮아 키 큰 사람은 입구에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 하지만 아늑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런 반면 맞은편 현대식 기와의 화장실엔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잘 되어 있다.

a

매표소 앞 화장실은 이용자의 진행방향에 입구가 있지 않고 뒤로 돌아가게끔 만들어져 있다 ⓒ 서정일

매표소 뒤엔 또 하나의 화장실이 있다. 초가집으로 제법 민속촌답게 지어졌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용자의 진행방향쪽에 입구가 있는데 이곳은 뒤로 돌아 들어가도록 만들어져 있다. 조금 급한 분들은 돌아가는 길이 십리길처럼 멀게만 느껴질 것이 틀림없는 매표소 앞의 화장실. 미관상 반대편에 입구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아무튼 야속한 화장실이다.

a

물레방아 앞의 화장실은 입구에서 부터 남녀를 철저히 구분한 돌담을 쌓았다. ⓒ 서정일

낙안읍성 화장실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화장실은 역시 물레방아 옆 자그마한 화장실이다. 남문 근처 가장 외딴곳에 있는 화장실인데 다른 화장실은 입구가 모두 함께 들어갔다가 남녀가 양쪽으로 각각 나눠지는데 이곳엔 그런 입구는 없고 처음부터 담장으로 막아 구분해 놓았다. 애초부터 남자와 여자를 확실하게 분리한 것. 물레방앗간(?) 옆이라서 남녀를 확실히 구분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참 재미난 돌담이다.

a

주위를 돌담으로 쌓았고 입구의 문을 나무로 만들어 운치가 있는 화장실 ⓒ 서정일

서문쪽 화장실과 낙안읍성 중앙부의 은행나무 앞에 있는 화장실은 그나마 쌍둥이 모양을 하고 있다. 화장실 주변을 돌담으로 정감 있게 쌓았고 입구의 문 또한 나무로 짜여 있어 예스러움이 물씬 풍긴다. 들어가려고 입구에 서면 흡사 대청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 그대로다. 돌담의 이끼와 담쟁이 넝쿨이 아름다운 화장실은 멋스러움 때문인지, 적절한 위치 때문인지 방문자가 가장 많다고 한다.

a

겉치장이 화려한 향토문화관 뒤의 화장실 ⓒ 서정일

외관상 조금 돋보이는 화장실이 있다. 지금까지의 화장실이 평상복을 입은 화장실이라면 이곳 향토미술관 뒤에 있는 화장실은 정장을 차려입은 모양새. 전통적 기와 형식에 빛깔 또한 화려하여 화장실일까 하는 의문마저 드는 곳이다. 그저 모양새로만 보면 화장실 중에 화장실이다. 하지만 내부는 모두 대동소이하여 겉치장에 신경을 많이 쓴 화장실 같다.

a

전시가옥에 있는 화장실 또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다. ⓒ 서정일

마지막으로 몇 군데 지정되어 있는 전시가옥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다. 안채와 멀리 떨어져 길가 담장과 붙어 있는 낮은 초가지붕을 가진 화장실. 입구엔 그저 거적 하나 늘어져 있다. 하지만 맘만 먹으면 충분히 사용이 가능하기에 용기를 내서 한번 사용해 보셔도 좋다. 단, 불쑥 얼굴을 들이미는 관광객들은 조심해야 한다.

이렇듯 낙안읍성을 돌아본 사람들은 공중화장실조차 획일적이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자연 그대로 돌 하나 나무 하나도 순리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곳이 낙안읍성이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서 동 호수를 보지 않으면 어느 곳이 자기 집인지조차 헷갈리는 획일화된 도시의 삶, 그들에게 이곳 낙안읍성은 세상엔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걸 가르쳐 주는 좋은 교육장인 셈이다.

덧붙이는 글 | 함께 만들어가는 낙안읍성 연재
http://blog.naver.com/penfriends

덧붙이는 글 함께 만들어가는 낙안읍성 연재
http://blog.naver.com/penfriends

AD

AD

AD

인기기사

  1. 1 주민 몰래 세운 전봇대 100개, 한국전력 뒤늦은 사과
  2. 2 "곧 결혼한다" 웃던 딸, 아버지는 예비사위와 장례를 준비한다
  3. 3 길거리에서 이걸 본다면, 한국도 큰일 난 겁니다
  4. 4 전장연 박경석이 '나쁜 장애인'이 돼버린 이야기
  5. 5 파도 소리 들리는 대나무숲, 걷기만 해도 "좋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