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천강 지류의 얼음장박도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 악동들은 추운 날일수록 더 좋았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철사 줄로 만든 손 썰매를 가지고 무논이나 개천 하수도 가리지 않고 얼음만 보면 썰매를 탔다. 솜을 넣은 바지저고리에 귀에는 토끼털로 만든 귀마개를 하고 밥 때도 잊어가면서 얼음을 지쳤다. 살얼음을 지치다가 빠져서 옷을 다 적셔도, 그래서 어른에게 야단을 맞아도 슬그머니 썰매를 가지고 또 얼음판을 찾았다.
요즘 그 흔한 스케이트는 어쩌다가 도시에서 방학을 맞아 내려온 아이들이나 있었지 우리 악동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초등학교 상급학년이나 중학생이 된 무렵에는 그 스케이트를 모방하여, 우리들이 손수 ‘발스케이트’라는 걸 만들었는데, 앞부분에는 송판에다 못 머리를 박고, 뒤에다가는 철사를 붙인 막대기를 이어서 고무줄로 칭칭 발을 감아서 탔다.
동네 가까운 무논은 물론이요, 멀리 샛강까지 원정도 가서 얼음이 있는 곳은 아이들로 붐볐다. 봄이 무르익어 연못에 얼음이 완전히 녹아야 썰매를 헛간에 넣었다.
이 겨울 들어 주천강 지류 얼음판을 여러 번 지났지만 썰매 타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는 썰매를 타지 않았느냐고 어른들에게 여쭤보았더니, 지난날에는 이곳도 썰매 타는 아이들이 많았다면서 당신들도 겨울 한철을 이 시내 얼음장에서 보냈다고 했다.
대체 그 많았던 아이들이 어디로 갔을까? 그 답은 곧 풀렸다. 시골에 아이들이 없다. 이곳 안흥면만 해도 1970년대에는 1만여 명이었는데 지금은 3천명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거기다가 몇 명 있는 아이들도 학원에 다니느라 얼음판에 나올 틈이 없나 보다. 이 적은 장터마을에도 보습학원 피아노학원 등이 있어 아이들을 집집마다 실어 나르느라고 노란 봉고차가 분주히 쏘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