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도로가에 내걸린 플래카드 가운데 하나박도
지난 해 연말 정부가 내 놓은 농촌장가보내기 대책을 보니 고작 올해부터 농촌 총각이 결혼을 하면 600만원을 보조해 준다고 했다. 한 호사가는 그 돈이 베트남 여인과 결혼하는 데 드는 비용이라고도 했다. 아주 유치한 정책의 빈곤이었다. 돈 몇 푼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이 한심하다.
왜 이런 사태가 왔나? 그것은 우리들의 양식 없는 이기심이 불러온 결과다. 하늘은 사람을 태어나게 할 때 남녀의 성비를 알맞게 점지해 주었다. 과학의 발달로 엄마의 뱃속에 있는 아기의 성별을 미리 알게 된 사람들은 별 거리낌 없이 하늘의 점지를 거역하기 시작했다.
그런 일들이 한창 성행하던 1980년대 어느 지방은 남자 대 여자의 비율이 '130 : 100'이나 될 정도로 여아 출산을 억제시켰다. 거기다가 시골 아가씨들마저 시골 총각을 기피하는 현상으로 농촌 총각의 결혼문제는 그때부터 큰 사회 문제의 씨앗으로 자라고 있었다.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 하늘의 뜻을 거역한 이기심들이 이제는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우리 나라에만 국한된 게 아니고, 이웃나라까지 파급시키는 데 더 큰 문제다.
필자가 지난해 초여름 연변에 갔을 때, 연변대학의 한 교수는 그곳 연변지방 일대 농촌에 혼인 잔치가 끊어진 지 수년째나 되는 마을도 숱하다고 개탄했다. 그 까닭은 농촌 아가씨들이 도시로 한국으로 시집갔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필자가 동남아 여러 나라를 둘러보며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 나라 농촌 총각 역시 결혼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불러오지 않았는지 염려스럽다.
올챙이 시절을 너무 쉽게 잊는 현실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 의사당에서 핏대를 올리면서 애국애족을 부르짖으며 고급 승용차를 타고 거드름을 피우면서 허울 좋은 정치 자금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끌어 모으면서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 나이 드신 부모를 봉양하면서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파면서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
그런데 부당하게 뭉치 돈을 먹었다고 쇠고랑을 차고 교도소로 들어간 사람 가운데 형기를 제대로 채우고 나왔다는 보도는 거의 보지 못했다. 교도소만 가면 무슨 병들이 그리도 발병하는지 병보석이요, 가석방이요, 집행유예로 죄다 풀려나오고 있다. 그리고 또 다음 선거에서 한 표를 부탁한다.
고향에서 땀 흘려 농사지은 농촌 젊은이는 애써 가꾼 작물이 과잉생산으로 수입농산물로 생산비도 심지어는 운반비도 나오지 않아서 밭을 갈아엎는다. 이런 현실에 어느 아가씨가 시골에 정착하겠는가.
뭉치 돈에 길들여진 의원이나 탁상공론에 익은 공무원 나리들이 농촌총각 문제를 돈 몇 푼으로 해결하려고 하니 지금과 같은 비인륜적인 일들이 줄곧 일어나고 있다.
이제라도 나라의 지도자는 젊은이들이 긍지를 가지고 농어촌에서 살 수 있는 정책을 펴야하고, 아울러 우리보다 조금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시집온 여성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해 주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만 농어촌 문제를 근원적인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일지는 모르지만 한국으로 시집 온 동남아 여인들 가운데는 귀한 대접은커녕 부인이나 며느리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일이 더러 있다고 한다. 불과 40~50년 전, 우리의 누이들이 미군 병사에게 성노리개로 팔려가고, 일본의 사내들이 이 땅에 건너 와서 기생 파티를 벌인다고 분노한 그때를 우리는 까마득히 잊고서 그들에게 배운 대로 답습하는 건 아닌지?
오래 전에 본 <뿌리>라는 티브이 드라마 중에서 백인에게 성폭행 당한 흑인 여인의 부르짖음이 머릿속에 맴돈다.
“네 자식에게 복수를 당할 것이다.”
그 여인의 저주대로 많은 세월이 흐른 뒤 그 백인은 자기가 만든 혼혈 자식에게 복수당한다.
만일 베트남의 한 작가가 나에게 “왜 네 나라는 30여년 전에는 총칼과 화염방사기로 우리를 못살게 하더니, 이제는 돈 몇 푼으로 우리의 누이를 데리고 가느냐”고 항의한다면 내 양심으로는 대답할 말이 없다.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 거리에 나붙은 플래카드가 사라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백성들은 앞뒤 생각 없이 제 눈앞의 이익만 챙기지 말고 사람답게 살고자 노력하고, 우리 지도자는 '경제' 타령만 하지 말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데 앞장선 새해가 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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