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유행문화만 한류? 거대자본 논리에서 벗어나야"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가 말하는 '한류의 문화기획'

등록 2005.01.18 19:47수정 2005.01.2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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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일까, 아니면 도도한 흐름일까.
일본에서 중국대륙을 거쳐 대만, 태국, 베트남, 필리핀까지 확산되고 있는 한류열풍을 두고 분석이 분분하다. 여전히 그 실체 혹은 흐름의 순도가 거품일 것이라는 의심에서부터 ‘먹힘’이 머지않아 ‘막힘’에 봉착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에 이르기까지 많은 담론이 쏟아지고 있다.

흔히들 ‘진정한 한류’를 언급하면서 김민기의 <지하철 1호선> 중국 공연을 말한다. 2001년 10월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공연된 <지하철 1호선>은 독일원작을 한국적 상황에 걸맞게 개작하여 원작을 뛰어넘는 예술적 재창조를 이뤄냈다는 평을 들었다. 우리나라의 파행적 근대화 과정에 주체적으로 대응했던 한국의 역사적 동력을 중국인들에게 잘 보여주었다는 것.

평론가들은 <지하철 1호선>이 중국에서 성공하기까지 공연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기술, 그리고 자본까지 스스로 부담해야 했으며, 김민기 본인이 직접 열악한 무대시설을 스스로 고치고 중국의 스태프들을 교육시키는 등 중국의 문화환경을 끌어올리면서 접점을 찾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최근 중국에서는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들에 의해 한류가 지나치게 우리의 대중 유행문화 중심으로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어지고 있는 문제제기가 잇따라 제기됐다.

지난해 11월 12일 베이징대학에서 작가 은희경이 <마이너리그>중국어판 출판기념 펜 싸인회를 갖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12일 베이징대학에서 작가 은희경이 <마이너리그>중국어판 출판기념 펜 싸인회를 갖고 있는 모습이다.김대오
2004년 11월 12일 베이징대학에서 장편소설 <마이너리그>(중문 제목 漢城兄弟) 강연회 및 펜 사인회를 가졌던 작가 은희경은 <난방저우모(南方週末)>와의 인터뷰에서 “한류는 허구적인 실체이고 오히려 진실된 한국의 모습을 가로막고 있으며 단지 하나의 거품일 뿐이다”라고 혹평했다. 한류가 십대 스타와 대중 유행문화만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

두 달여 뒤인 1월 7일, 같은 대학에서 ‘한류의 문화기획’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한류의 탄생배경과 현주소 진단을 통해 한류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백원담 교수는 통일운동가 백기완씨의 딸이다.

백 교수는 “초기한류는 삼성 등 거대자본들에 의해 기획되고 조직된 21세기 초반 문화산업버전”이라고 규정했다. 문화자본이 포장한 한류스타군단에 중국의 상업주의와 자신들의 콘텐츠가 바닥난 대만과 홍콩의 문화산업자본이 결합되면서 매체 조작 등을 통해 한류를 증폭시켜 왔다는 것. 또 90년대 격변기를 겪은 중국사회가 미국적 상업주의를 경계하기 위한 대안적 기제로 한류를 선택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백 교수는 한국문화산업이 갖고 있는 경쟁력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아름다운 시절>, <박하사탕>, <제이에스에이(JSA)> 등 상업주의 문화와 조응하면서도 인간적 가치생산이라는 문화적 본연에 충실한 작품들을 통해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한류의 현주소를 ‘자본의 세계화라는 각축 속에서 겨우 따낸 상가 입주권, 세계문화시장이라는 쇼핑몰에 어렵사리 연 작은 점포, 혹은 명함 한 장’이라고 명했다. 경제논리를 내세워 문화산업 규모를 늘리는 데만 급급해 한 나머지 진정한 문화교류를 놓치고 있다는 것.

백 교수는 “(한류의 살길은) 한국사회가 지닌 장점들이 한류와 융해될 수 있도록 기획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월드컵에서 보여준 문화적 활력, 반전촛불시위, 국가존립 때마다 뿜어져 나온 민중들의 저력과 해방문화, 인터넷 쌍방향성 문화 등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진정한 한류의 실질들을 기획하라는 것이다.


다음은 백원담 교수의 강연 요약 내용이다.

초기 한류에 대한 진단 - 거대 자본의 문화산업 버전

초기한류는 삼성에 의해 중국 십대들의 호기심을 상품의 구매력으로 조직하기 위한 상업적 전략으로 시작하였다. 즉 문화자본이 그럴싸하게 포장해 낸 이른바 한류스타군단, 이들을 좇는 중국의 십대들. 결국 한국과 중국 혹은 한국과 동아시아의 21세기 문화적 관계망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조장되었으며 한류는 결국 이들 거대자본들에 의해 기획되고 조직되는 21세기 초반 문화산업 버전이었다.

1월 7일 백원담교수의 베이징대학 강연 모습.
1월 7일 백원담교수의 베이징대학 강연 모습.김대오
여기에 중국사회 전역에 팽배한 상업주의, 특히 자신들의 콘텐츠가 바닥난 대만과 홍콩의 문화산업자본이 한류스타들과 결합하면서 매체의 조작 등을 통해 한류를 증폭시킬 수 있었다. 여기에는 물론 상업주의문화의 탁류가 중국사회 전역을 휘몰아쳐도 속수무책인 현실과 중국정부의 문화정책 부재의 무능함이 포함되어 있다.

한류는 90년대 중국사회의 격변기에 문화적 공백을 메우는 부분적 기제로서 작용하였고 한국기업들의 중국마케팅 전략이 엉겁결에 적중하여 조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집체주의적 생활패턴이 개인주의로 바뀌면서 사회주의의 자장을 벗어난 그 공간에 한류의 접근이 용이할 수 있었고 미국적 상업주의가 왕창 몰려들어오는 것에 거부감과 대안적 기제로서 한류가 선택될 수 있었다.

물론 우리문화산업의 경쟁력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미국의 문화지배구도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그 밑둥에 독창적인 자기문화세계를 구축해온 적극적 측면이 포착된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시절>, <박하사탕>, <제이에스에이(JSA)> 등이 상업주의 문화와 조응하면서도 인간적 가치생산이라는 문화적 본연에 충실한 면모를 지닌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지식계로부터 한류는 “고려민족이 그 특유의 강인함과 근엄한 정신으로 21세기에 올린 개가”라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중국의 영화들이 사회주의 주선율(主旋律, 영웅찬양영화)을 선양하는 낡은 영화문법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류가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교착상황의 중국문화계를 전향적으로 타개해나가는 기제로서의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는 분석이다.

한류의 흐름에는 문화적 근접성으로 인한 정서적 문화할인율이 낮았다는 요인도 무시할 수 없지만 급속한 자본화 과정 속에서 문화적 정체성을 구성해가는 과도기적 대행을 한류가 수행하며 문화소비차원에서의 문화적 선택으로 이해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보여진다.

한류의 현주소-어렵사리 연 점포 하나, 명함 한 장

한류란 우리가 식민지, 분단, 파행적 자본의 세월을 견뎌 주변부에서 반주변부로 가까스로 수직이동, 중심부의 배제와 착취의 논리를 피눈물로 익히며 자본의 세계화라는 각축 속에서 겨우 따낸 상가 입주권, 세계문화시장이라는 쇼핑몰에 어렵사리 연 작은 점포, 혹은 명함 한 장에 다름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처음 점포를 열었으니 미숙하기 짝이 없어 한 푼이 아쉬워 행상수준으로 들고 뛸 수밖에 없는 수준, 안타깝지만 그것이 우리 한류의 현주소인 것이다.

최근 한류는 일본은 물론 태국과 필리핀에까지 확산을 이루는 한편으로 중국과 대만에서는 한류스타들이 인기 확인과 돈벌이에만 연연, 중화문화에 대한 이해나 요구에는 관심이 없다는 비판 속에 그 파고가 흔들리는 추세이다. 지금의 한류국면은 경제논리와 기능적 대처방식으로 문화산업규모 늘리기에 급급하여 진정한 문화교류의 중요성을 간과함으로써 한류의 계기성을 오히려 상실하고 있는 어려운 형국이라고 진단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류의 겉과 속, 정면과 반면을 제대로 짚고 이후 행보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다.

앞으로의 한류-문화연대에서 평화벨트까지

우리에게는 식민지분단의 참혹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외래문화의 홍수 속에서도 그것의 핵질만을 골라내어 우리의 형질로 전화시켜낼 수 있는 창조적 중역성, 아름다운 관계지향의 문화적 동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월드컵에서 유감없이 펼쳐낸 문화적 활력, 전쟁반대 촛불시위의 순결한 정화, 국가존립의 위기국면마다 뿜어져 나오는 현상타파의 민중저력과 해방문화, 보수언론의 횡포를 무력화시킬 정도로 활성화된 인터넷 쌍방향성 문화, 민주노총에서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중층적인 사회조직화 정도 등. 우리 사회가 지닌 이런 장점들이 자연스럽게 한류와 융해될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한류는 결코 국가와 자본의 힘으로 지속되어 온 것이 아니며, 지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한류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결코 도외시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평화공존의 새로운 관계지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 접점에서 사고되고,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한 지속 가능한 기획으로 추동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문화 속의 진정한 한류의 실질들, 현상타파의 문화적 동력들을 외화시켜 내면서 문화적 패권이 아니라 문화적 공존의 가동시스템을 동아시아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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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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