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물 반 도다리 반이었지예"

[그 품에 안기고 싶다 2] 마산의 땅끝, 낚시의 명소 '원전 앞바다'

등록 2005.01.29 15:04수정 2005.01.30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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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의 땅끝마을 원전마을 앞바다
마산의 땅끝마을 원전마을 앞바다이종찬
지금 그 겨울바다에는 물방울을 파닥거리며 올라오는 도다리가 전해주는 찌르르한 손맛을 즐기기 위한 낚시꾼들로 붐빈다. 지금 그 겨울바다 위에는 은빛 찬란한 갈치와 시퍼런 바다물빛보다 더 푸른 고등어, 감성돔, 광어, 노래미 등을 줄줄이 낚아 올리는 낚싯배들이 섬처럼 떠돈다.

그에 뒤질세라 갈매기 서너 마리도 눈알을 두리번거리며 푸르른 겨울바다 위를 천천히 날고 있다. 가끔 통통거리는 멸치잡이배가 낚싯배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큰 파도를 일으키며 먼 바다로 달려 나간다. 그때마다 점점이 떠있는 낚싯배들이 금세 뒤집어질 듯 기우뚱거리다가 물결처럼 스르르 휘어진다.


저만치 낮에 놀다 두고 온 조각배처럼 떠있는 자그마한 섬 위에는 아까부터 솔개 한 마리 하늘에 콕 찍어놓은 점처럼 떠있다.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낚시꾼들이 줄줄이 낚아 올리는 물고기를 노리는 것일까. 아니면 날 잡아봐라, 하면서 겨울바다 위를 톡톡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낚아채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히야! 바닷물 좀 봐라. 바닥이 환하게 다 보이는구먼."
"마산 앞바다도 선생님께서 '독수대'란 시를 쓸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렇게 맑았지 않습니까?"
"그랬었지. 그때 마산 앞바다에는 미더덕이 쫙 깔려 있었지. 물이 조금 빠지면 굴이나 바지락, 홍합이 자갈보다 더 많았었고, 소쿠리와 호미 한 자루만 들고 나가면 금세 한 소쿠리 가득 채우곤 했지."


원전마을 앞바다는 낚시터로 이름 떨치는 곳이다
원전마을 앞바다는 낚시터로 이름 떨치는 곳이다이종찬

낚싯배는 언제든지 빌릴 수 있다. 가격은 그때 사정에 따라 다르며, 노를 직접 저으면 조금 싸다
낚싯배는 언제든지 빌릴 수 있다. 가격은 그때 사정에 따라 다르며, 노를 직접 저으면 조금 싸다이종찬
지난 1월 15일(토) 오후, '마산의 문화재'라 불리는 이선관(63) 시인과 함께 직행버스(224번)를 타고 마산의 땅끝 마을로 불리는 원전마을에 갔다. 원전마을은 예로부터 바닷물이 거울처럼 맑고 회 맛이 고소한 물고기가 잘 낚여 이 지역의 낚시꾼들이 즐겨 찾는 자그마하고도 살가운 갯마을이다.

한반도의 남녘 끝자락 해남에 있는 땅끝 마을이 '토말(土末)'이라면 경남 마산의 남녘 끝자락에 있는 땅끝마을이 바로 원전마을이다. 왜냐하면 마산 남부터미널에서 구산면 수정리로 들어서서 반동, 난포, 심리마을을 지나 이 마을에 도착하면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 마을이 마산과 진해, 고성의 경계이기도 하다.

근데, 이 지역 사람들에게 마산의 땅끝 마을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하지만 낚시를 하려면 어느 곳에 가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으면 금세 원전마을로 가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만큼 원전마을은 계절에 관계없이 바다낚시가 잘 되기로 이름이 난 곳이다.


"짜고 비릿한 내음이 물씬 풍겨나는 게 전형적인 갯마을이구먼."
"저도 이런 곳에서 한번쯤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아서라! 다친다, 소주나 까자."
"그건 선생님 시잖아요?"
"그러니까 이곳 원전마을도 지난번 태풍 매미 때 큰 피해를 입었다 그 말이지. 지금 원전항 부두를 만들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로구먼. 그나저나 저 부두 공사 때문에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많이 잃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원전 앞바다는 겨울철에도 도다리가 잘 낚인다
원전 앞바다는 겨울철에도 도다리가 잘 낚인다이종찬

특히 이곳의 도다리는 손바닥 반만한 것이 특징이며, 뼈째 썰어먹는 고소한 회맛이 끝내준다
특히 이곳의 도다리는 손바닥 반만한 것이 특징이며, 뼈째 썰어먹는 고소한 회맛이 끝내준다이종찬
그날 이선관 시인과 내가 원전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쯤이었다. 날씨는 금세라도 함박눈이 펑펑 쏟아질 것처럼 잔뜩 찌푸려 있었다. 하지만 흐릿한 겨울하늘을 비웃기라도 하듯 원전마을을 출렁거리고 있는 푸르른 바닷물은 수정처럼 맑았다. 근데, 부두 곳곳에는 '낚시금지'란 붉은 글씨가 씌어져 있다.


하긴, 낚시꾼들이 오죽 이 마을 곳곳을 누비며 극성을 부렸으면 마을 주민들이 '낚시금지'라고까지 써놓았겠는가. 그래서일까.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 마을에서 저만치 떨어진 방파제에 옹기종기 모여 바다 위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저만치 낚싯배를 빌려 타고 섬 사이를 떠돌며 줄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전문 낚시꾼들이리라.

"요즈음 같은 겨울철에는 어떤 고기가 잘 잡히나요?"
"도다리지예. 여기 도다리는 쪼맨하고(자그마하고) 맛이 꼬소한 기 새꼬시(뼈째 썰어먹는 회)로 그만이지예."
"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마산 앞바다에서도 도다리가 참 많이 낚였었는데."
"그때 여기는 물 반 도다리 반이었지예."


텅 빈 고깃배들이 밀려오는 파도를 따라 출렁거리고 있는 원전부두에 자그마한 고깃배 한 척이 들어온다. 고깃배가 부두에 닿자마자 어부 한 명이 그물망으로 푸덕거리는 무언가를 가득 떠올린다.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니 모두 손바닥 반 만 한 도다리다. 얼굴이 검붉게 그을린 어부의 말로는 그물로 잡은 것이란다.

바닥이 환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바닷물이 맑기로도 유명하다
바닥이 환히 들여다 보일 정도로 바닷물이 맑기로도 유명하다이종찬

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홍합과 굴
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홍합과 굴이종찬
동그란 물방울을 마구 튕기며 파닥거리는 도다리를 바라보는 이선관 시인이 입맛을 다신다. 하지만 어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싱싱한 도다리를 들고 저만치 총총총 걸어가 버린다. 내가 이선관 시인을 바라보며 고개를 어부 쪽으로 길게 긋자 이선관 시인이 그만 됐다는 듯 손사래를 치더니 방파제 쪽을 가리킨다.

방파제에는 귀까지 포옥 덮이는 털모자를 쓴 사람들 대여섯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우고 있다. 낚싯바늘에 갯지렁이를 끼고 있는 사람, 막 낚싯줄을 바다로 향해 던지는 사람, 낚싯줄을 슬슬 감고 있는 사람, 하염없이 겨울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연인, "이거 우리 아빠가 낚았어요"하며 해맑게 웃는 꼬마 등 그 모습도 천차만별이다.

"낚시가 좀 되요?"
"도다리만 쪼매 올라오네예."
"이곳에 낚시를 하러 자주 오십니까?"
"머리도 식힐 겸 잊을만 하모 옵니더."
"낚싯배를 타고 나가면 칼치도 제법 낚인다던데?"
"칼치는 멸치떼가 떴을 때 나가모 제법 쏠쏠한 손맛을 볼 수가 있지예."


저만치 바닥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겨울바닷가에 검은 잠수복을 입고 서 있는 잠녀 한 명이 철버덕 바다 속으로 뛰어든다. 이어 엉덩이를 하늘로 한껏 치켜들더니 이내 물갈퀴가 달린 발바닥을 내보이며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인어 같다. 대체 이 추운 겨울바다에 들어가 무엇을 잡고 있는 것일까.

방파제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방파제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종찬

낚시꾼이 낚아놓은 도다리
낚시꾼이 낚아놓은 도다리이종찬
잠녀가 자맥질을 하고 있는 원전마을 겨울바다. 이선관 시인은 아까부터 아무런 말 한마디 없이 겨울바다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시인과 겨울바다. 시인은 대체 저 겨울바다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시의 낚싯줄을 겨울바다에 드리운 채 씨알 굵은 시가 낚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바라보아도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한 원전 앞바다. 그래. 원전 앞바다는 그 누군가 몹시 보고플 때나 이 세상살이가 고달플 때 다시 한 번 찾고 싶은 곳이다. 저 넉넉한 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 정말 보고픈 그 사람의 마음도 낚고, 이 세상살이의 고달픔도 낚아, 고소한 도다리 회처럼 오래 꼭꼭 씹고 싶은 곳이다.

잠녀가 마악 바닷물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잠녀가 마악 바닷물 속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마산-마산 해안도로-남부터미널-구산-수정-반동-난포-심리-원전마을 
※마산 시내에서 원전마을로 가는 직행버스(224번)나 시내버스(24번)를 타도 된다.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대진고속도로-마산-마산 해안도로-남부터미널-구산-수정-반동-난포-심리-원전마을 
※마산 시내에서 원전마을로 가는 직행버스(224번)나 시내버스(24번)를 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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