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26회

등록 2005.02.24 07:24수정 2005.02.2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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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에 그녀는 나직하게 탄식했다.

“좋아요. 저는 당신에게 두 가지 소식을 전해주고, 한 가지 충고와 한 가지 질문을 하러 당신을 기다렸어요.”


“꽤 많은 일을 가지고 왔구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소식일 것이고, 또한 귀중한 정보이기도 하겠구려.”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지만 당신처럼 대화가 너무 잘 통하는 상대라면 다시 만나고 싶어지는 사람은 아니예요.”

“나에게는 사랑하는 여자가 있소. 당신과 같은 미녀와 다시 만난다는 것은 나 역시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도 있소.”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 소식이 바로 당신이 사랑하는 그 여자에 대한 것이에요.”

그는 그녀의 말에 잠시 그녀의 눈을 주시했다. 이 여인이 송하령을 알고 있는 것인가? 송하령과 헤어진 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가끔 그녀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일행들과 어울려 다니고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는 탓에 그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적었다. 하지만 그녀 말이 나오자 그는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소?”

“아니예요. 그녀는 소림을 떠나서 지금 개봉에 있는 서가화의 고모 댁을 향하고 있어요. 과거 순안어사(巡按御使)를 거쳐 복건도(福建都) 지휘첨사(指揮僉事)를 지낸 바 있는 관석당(寬晳塘)이 그녀의 고모부죠.”


“그것 뿐이오?”

그녀는 그가 지금까지의 느긋한 태도에서 송하령의 이야기에 관심을 표명하자 내심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이 사내는 진정으로 송하령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으로 그녀가 이 사내를 만나고자 했던 두가지 목적 중의 하나는 확인되었다.

“지금까지는 아무 일도 없어요. 하지만 당신으로 인하여 그녀가 고초를 겪을지도 몰라요.”
“그 말은 무슨 뜻이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제가 하고자 하는 한 가지 충고와 관련이 있어요.”
“말해 보시오.”

그녀는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도톰한 입술을 열었다.

“당신은 당신의 태도를 빠르게 결정해서는 안돼요. 지금까지 당신은 당신이 의도했는지, 의도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동안 잘해 왔어요. 문제는 지금부터예요. 당신은 신중한 사람이니 당신의 태도를 결정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가질 것이라 믿어요. 당신을 원하는 곳은 세 군데이지만 당신이 그 중 한 군데를 선택하게 되면 나머지 두 군데에서는 당신이나 당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노릴 것이고 당신은 마음이 아플거예요.”

그녀의 말은 모호했지만 무척이나 신중했다. 그것은 그가 알고 있지 못하는 중요한 내용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을 원하는 세 곳이 어딘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이 자신을 원한다면 접근해 올 터였다.

“그대도 나를 원하는 세 곳 중 한 곳에 몸담고 있겠구려.”

역시 조심해야 할 사람이다. 조그만 단서 하나로 전혀 모르고 있는 사실의 일부분을 알아내고 또한 그 일부분으로 전체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녀는 의외로 순순히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어쩌면 이 사내는 단순하게 대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또 한 가지 소식이란 무엇이요?”
“한 가지 소식은 또 한 가지 질문과 관련이 있어요. 당신은 지금 신검산장으로 가고 있는 게 맞나요?”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신검산장에 간다는 사실을 그것을 말한 구효기와 자신의 일행 밖에는 없다. 자신의 행적이 다른 이들의 촉각을 곤두세울 정도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대는 나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고 있구려. 그 정도로 알려면 많은 수고와 대가를 치렀어야 할텐데 말이오.”
“당신은 그만한 대가를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에요. 또한 당신이 당신 자신을 알고 있는 것보다 오히려 제가 당신을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것은 어쩌면 맞는 말이다. 인간은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자신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오히려 그의 곁에서 그를 지켜보고 대화를 많이 나눈 타인이 그를 더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부모나 친구가 그의 성향이나 성격을 그 자신보다 잘 알고 있는 것도 그런 경우다.

“당신이 신검산장을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것이 한 가지 질문이에요.”
“사사로운 일이오. 나는 그곳에서 한 가지 물건을 찾으러 가는 중이오.”

그 말에 그녀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오룡번인가요?”
“오룡번? 그것이 신검산장에 있단 말이오?”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그녀는 내심 자신이 잘못 짚었음을 깨달았다. 너무 앞서 나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내색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아니라면 상관 없는 일이죠. 어쨌든 남은 한 가지 알려 줄 사실은 당신은 신검산장으로 가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에요. 아니 저는 내심 당신이 이런 시기에 신검산장에 가는 것이 어쩌면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도 들지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라 사실 혼란스러워요.”

“왜 그렇소?”

“어쩌면 당신은 가는 도중에 혹은 신검산장에 가서 위험에 처할 수 있어요.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당신은 제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가는 것을 포기할 사람은 아니죠. 하지만 제가 당신이라면 지금 말을 돌려 장안으로 돌아가거나 개봉으로 가겠어요.”

이 여인은 어떠한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녀가 자신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이 아주 적은 정보만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얻을 수 있는 정보란 한계가 있었다.

“일행들에게 돌아가거나 하령을 만나러 가는 게 좋다고 말하는 것이오?”

“기이하게도 신검산장에서는 모종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어요. 갑작스럽게 왜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그 일이 무림을 뒤흔들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갑자기 더욱 호기심이 생기는구려. 그 내용이 무엇인지 나도 알 수 있겠소?”

그의 물음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마침 주인이 계사면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왔다.

“이곳은 그 사실을 알려주기 적당한 곳이 아니예요.”

그 말에 그는 처음으로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와 동시에 계사면을 내려 놓는 주인의 완맥을 잡아갔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모두 놀랐지만 촌노로 보이던 주인장의 행동은 더욱 민첩해서 어느새 내려 놓던 계사면을 담천의의 얼굴에 부으며 무릎조차 구부리지 않은 채 뒤로 주륵 물러났다.

주인의 행동은 그 순간에 담천의의 손을 피하는데 너무 적절한 것이어서 그것을 보는 다섯 명의 여인들을 질리게 할 정도였다. 담천의의 얼굴은 계사면의 뜨거운 국물에 데일 것이고 머리카락 대신 계사면의 면발이 그의 얼굴을 가릴 터였다.

“…!”

하지만 그녀들이 상상했던 것은 잠시 간의 착각이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상체를 비틀었고, 주인의 완맥은 어느 순간 그에게 잡혀 있었다. 다만 촌노인 주인장의 신형이 뒤로 밀림에 따라 담천의와 그가 앉은 의자가 따라갔을 뿐이었다.

“나도 역시 이곳이 그런 중요한 일을 말해 주기엔 적당치 않다고 생각했소.”

이미 그는 본래 그가 있던 위치로 돌아왔고, 그에게 완맥을 잡힌 주인은 마치 시종이나 되는 듯 그의 곁에 서 있었다. 그는 여전히 아무일도 없는 듯 조금 전과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헌데 당신이 데리고 온 마부는 꽤 쓸모가 있던 노인네던데….”

그 말에 그녀는 아직도 놀람이 가시지 않은 듯 두 손으로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다점의 문이 열리며 마차의 마부석에서 졸고 있던 육순의 마부가 양쪽 옆구리에 두 사람을 끼고 들어왔다.

“꽤 쓸모있는 노인네가 너무 늦어 미안하군. 하지만 노부도 무척 바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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