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관왕묘에서 만난 거지노인이 홍칠공이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모용수를 통해 알았다. 그 당시에는 그저 범상치 않을 거지노인이라고 생각했었다. 담천의는 포권을 취하며 인사했다.
“말학 후배 담천의가 홍칠공께 인사드리오.”
“엥…? 자네가 담천의란 작자였어? 푸하하핫… 그렇구만 그랬어. 궁금했지. 섭노괴는 물론 청마수와 흑마조… 그 뿐인가? 금존불이 있는 자리에서 오독공자를 가지고 놀기에 괴물 하나가 나타난 줄 알았지.”
홍칠공 노육은 더욱 신기한 물건 보듯이 담천의를 세세하게 뜯어보았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의 얼굴에 은은하게 놀람의 기색이 어렸다. 이미 구파일방에서도 담천의를 주목하고 있었던 터였다. 풍운삼절을 꺾고, 당가의 위세를 한순간에 짓뭉개 놓은 인물. 무공에 있어서는 그 누구라도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는 소림의 광무선사가 인정했다는 인물. 새삼스럽게 담천의의 모습이 다가오는 듯 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한 치기 어린 짓이었소.”
홍칠공은 여전히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그는 그 동안 관왕묘에 나타난 청년이 누굴까 궁금했었다. 다른 바쁜 일이 없었다면 아마 수하들을 시켜 알아보았을 것이다.
“치기 어린 짓 치고는 너무 대담했지. 하지만 그들이 자넬 가볍게 보았다면 그렇게 대했을까? 물론 구양휘가 따라온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에게는 지광계에게서 눈을 뗄 수 없기도 했겠지만 노개가 본 장면 중에 가장 통쾌했지. 그 덕분에 노개 역시 쉽게 벗어날 수 있었고….”
“섭장천과 지광계 부부가 여기 있소.”
풍철영의 말에 몇몇 인물들의 눈에 경악스런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광지선사나 파옥노군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전혀 변화가 없었다. 같이 움직이는 가운데서도 일행이 모르는 가운데 정보를 받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홍칠공 노육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손을 흔들며 다시 시선을 담천의에게로 돌렸다.
“재미있지 않은가? 몇 놈이야 빠졌지만 일이 터지면 들어 올 것이고 그 관왕묘에서 보여주었던 솜씨 한번 다시 볼 수 있겠지?”
장난하는 듯 말하는 홍칠공을 보며 담천의는 씁쓸한 미소를 피어 물었다.
“이제 그만하시지요. 중요한 일로 모이신 것 같은데….”
“그러지. 뭐 시간은 많으니까 말이야….”
그는 그 말과 함께 얼굴에 있던 웃음을 지우고 일행들을 훑어보았다.
“일이 생겨서 조금 늦었으니 양해들 하시게.”
노육은 그제야 자신이 늦게 온 것에 대해 변명했다. 사실 그가 변명을 하지 않아도 뭐라 할 사람도 없었다. 시간 약속을 지키는 거지는 거지가 아니다. 배고프면 일어나고 배부르면 자는 것이 그들이었다. 아무리 무림의 한 문파를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 본색은 여전히 거지였다.
“장주. 이곳에 철혈보 인물들이 있지?”
홍칠공의 물음에 풍철영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내색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떡였다.
“꽤 신경 쓰게 만드는 거물들이 와 있소.”
“육능풍 그 능구렁이도 와 있지? 그 자식이 아니곤 할 수 없는 일이지.”
노육의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오늘 새벽 본방의 분타주 동추개(銅錘丐) 하강(厦康)이 숨만 붙어 돌아왔어. 같이 있던 득삼이란 아이도 지공(指功)에 당했고….”
“철혈보요?”
“상처로 보아서 하강이 당한 것은 원월만도(圓月彎刀)였어. 또한 득삼이 당한 지공은 철궁지(鐵弓指)였으니 말할 것 없지.”
철궁지는 철혈보의 독문지공이다. 마치 철궁이 날아오는 것과 같은 위력이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던 청성의 송풍진인(松風眞人)이 입을 열었다.
“원월만도라면 그것을 사용하는 자가 무림에 세 명이 있었소. 그 중 둘은 이미 죽었으니 오직 하나 뿐이오.”
죽은 두 명 중 하나는 삼년 전 송풍진인의 작품이었다. 서역을 왕래하는 상인들의 원성이 자자하고, 관헌의 물건까지 손을 대던 인물로 그쪽에서는 죽음을 가져오는 변방의 별(星)로 불리던 그자를 추적한지 두달만의 일이었다.
“철혈보 철무당(鐵武堂)의 도귀(刀鬼)라 일컬어지는 원월만도 좌승(佐承)이겠구려.”
송풍진인의 얼굴은 주름살 하나 없이 청수했지만 이미 머리와 수염은 온통 백색이었다. 사실 송풍진인은 특이한 체질이었는지 사십이 되기 전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던 사람이었다.
“헌데 기이한 것은 좌승 그 놈은 아무리 실수를 했다 해도 노린 자를 죽이지 않은 적이 없었거든. 더구나 득삼까지 버젓이 숨을 붙여놓았단 말이야.”
“어제 새벽 철혈보의 수하 한명이 매화검법에 의해 살해되었소. 그에 대한 보복일 수 있소.”
풍철영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맺기도 전에 파옥노군 규진이 그 말을 잘랐다. 아무리 수양을 해도 그의 급한 성미는 버리기 어려운 모양이다.
“확실히 본파의 검이었소?"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매화십사식에 당했다고 들었소이다. 하지만 틀림없을 것이오.”
풍철영의 말에 파옥노군은 침음성을 터트렸다. 기이한 일이었다. 이미 장안 외곽에서 철혈보의 인물들을 살해한 자들이 구파일방의 무학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그 중 화산의 매화십사식도 끼어 있었다고 들은 바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을 벌인 자는 화산의 제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광지선사도 자유로운 입장은 아니었다.
“음… 화웅. 그 아이는 그렇게 경솔한 아이는 아닐 텐데….”
화산의 제자 중 이곳 근처에 와 있는 인물은 화웅과 화산삼영이었다. 문제를 일으켰다면 화심검 화웅을 제외하고 달리 생각할 인물이 없었다. 규진으로서는 매화십사식이 화산의 제자가 아니라면 펼칠 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좌승은 살귀요. 그런 자가 부상만 입히고 도망가는 귀방의 분타주를 그대로 놔두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오.”
송풍진인의 말에 홍칠공은 고개를 끄떡였다.
“노개도 이상해. 사실 지금까지 철혈보가 보여준 태도는 모호하기 그지없거든.”
철혈보는 지금까지 태도를 분명히 했다. 수하 한사람의 목숨은 곧 상대방의 목숨 열개로 갚아주는 것이 그들의 태도였다. 그들에게 반기를 든 중소문파는 여지없이 멸문을 당했거나 더 이상 무림에 이름을 걸지 못했다. 그들은 그래서 은연 중 중원의 패자(覇者)였다. 구파일방이 있어도 그들의 행동을 제지할 수는 없었다.
“보복은 하되 정면으로 부닥치는 일은 피하자는 뜻이오. 그 때문에 공격은 했지만 목숨만큼은 건지게 해주었다고 볼 수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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