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가 쫄깃한 기 더 고소할 낍니더"

[음식사냥 맛사냥 13] 남해의 맛 '모듬회'

등록 2005.04.11 18:21수정 2005.04.1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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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깃쫄깃하고 고소한 모듬회 한 접시 드세요 ⓒ 이종찬


봄빛이 한창 무르익고 있는 요즈음. 남해안에서는 한껏 물이 오른 싱싱한 물고기를 건져올리는 어부들의 손길이 더없이 바쁘다. 어디 어부들뿐이랴. 수평선에 코를 꿴 채 흔들리는 섬들 사이 점점이 박힌 낚싯배, 그 낚싯배를 타고 있는 낚시꾼들의 낚싯줄에도 잊을 만 하면 파닥거리는 물고기들이 줄줄이 올라온다.

짭쪼롬한 갯내음 물씬 풍기는 봄바다. 바닥에 깔린 갯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홍합과 굴까지 환히 보이는 구산면 구복 앞바다. 그 비취빛 바다 위에 나 몰라라 툭툭 떨어진 빠알간 동백꽃. 동백꽃 송이 송이를 저쪽 섬까지 열심히 실어나르는 파도. 그 파도를 따라 이리저리 기우뚱거리면서도 열심히 봄을 낚아올리는 사람들.

어부들의 그물이나 낚싯줄에 걸려 은빛 햇살을 투툭 투툭 떨구며 파닥거리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면 갑자기 나른한 몸에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 광어, 도다리, 가지메기(농어새끼, 깔때기)가 가득 담긴 그물을 힘껏 끌어당기는 어부들의 굵은 팔뚝을 바라보면 나도 달려가 함께 힘껏 끌어당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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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처럼 잔잔한 구복 앞바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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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시 구산면 구복 앞바다에 있는 생선회 전문점 <수국정> ⓒ 이종찬


생선회가 쫄깃하고 고소하기로 이름난 마산만과 진해만. 그 사이에 드러누워 어린애처럼 칭얼대는 섬들을 보듬고 있는 바다가 구산면 구복리 앞바다다. 마산만과 진해만을 아우르는 구복 앞바다는 오래 전부터 물이 맑고 고기가 물만큼 많기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일까. 이곳 앞바다에는 일년 내내 낚시꾼들과 싱싱하고 담백한 회를 맛보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닷가 주변에 굴껍질처럼 다닥다닥 들러붙은 전형적인 어촌마을. 저만치 물 빠진 갯벌에 쪼그리고 앉아 열심히 바지락을 캐고 있는 아낙네들. 갯바위 곳곳에 자그마한 등대처럼 서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 잔잔한 바다 위에 하얗게 떠있는 스티로폼. 마산시 구산면 구복리와 저도를 잇고 있는 다리 두 개.

이 지역사람들이 '콰이강의 다리'라고 부르는 다리. 그 다리 건너 움푹 팬 오솔길 아래, 생선회가 쫄깃하고 고소하기로 유명한 생선회 전문점 '수국정'(주인 최기웅)이 있다. 수국정은 특히 요즈음처럼 갖가지 봄꽃이 한껏 어우러질 때면 꽃놀이 겸 고소한 생선회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수국정에 앉아 생선회와 소주 한 잔 기울이며 가만히 바라보는 저도의 풍경 또한 멋지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야트막한 산길. 그 산길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개나리, 진달래, 벚꽃, 동백, 산수유…. 산모롱이 저만치 노랗게 웃고 있는 배추꽃과 할미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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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듬회 3~4인분 한 접시가 5만원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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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런하게 잘 썰어놓은 싱싱한 생선회 ⓒ 이종찬


"물개기(물고기)로 골고루 맛볼라카모 고마 모듬회로 한 접시 드이소. 오늘 새벽에 갓 건져올린 개기(고기)가 돼나서 싱싱하고 맛이 참 좋을 낍니더. 특히 요즈음 같은 봄철에는 도다리가 최고로 맛이 들었지예. 하지만 모듬회에 들어가는 가지메기(깔때기, 농어 새끼)하고 돔 새끼도 부드럽고 쫄깃쫄깃합니더."

은근슬쩍 모듬회(3~4인분, 5만원)를 권하는 50대 중반의 아주머니. 구복 앞바다를 바라보며 얼른 주문을 받으려는 아주머니의 눈빛에도 쪽빛 바다가 출렁이는 듯하다. 아주머니의 말씀대로 모듬회 한 접시를 시키자 '술은 뭘로 할 낍니꺼?' 한다. 모듬회를 먹으면서 술을 시켜먹지 않으면 마치 큰일이 나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얼른 소주 한 병을 시키자 고개를 까딱하는 아주머니가 잠시 주춤거린다. 지금 시킨 횟감을 뜨는 것을 볼 테면 곧바로 따라오라는 투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자 아주머니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포근한 봄빛을 한껏 머금고 있는 구복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수국정 안에는 여기저기 생선회를 초장에 푹푹 찍어먹는 손님들로 왁자지껄하다.

금세라도 마구 꿈틀거릴 것만 같은 싱싱한 회를 한 젓가락 집어 초고추장과 함께 깻잎에 막 싸는 사람. 참기름을 섞은 된장에 생선회를 푸욱 찍어든 채 입 속에 소주를 털어 넣는 사람. 남은 회를 공기밥과 함께 대접에 넣어 초고추장에 쓰윽쓱 비비고 있는 사람. 회 한 접시를 더 시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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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 넣은 된장과 초고추장을 비벼 만든 장에 찍어먹어도 회맛이 아주 좋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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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에 싸먹어도 보고 ⓒ 이종찬

봄빛에 물든 바다와 생선회를 맛깔스럽게 먹고 있는 사람들을 흘깃흘깃 바라보며 10여분쯤 기다리자 초고추장과 고소한 참기름을 부은 된장, 엇썰기한 마늘과 풋고추, 오이, 생고구마, 땅콩, 메추리알과 함께 상추, 깻잎이 바구니 수북이 나온다. 함께 나온 소주를 홀짝거리며 또다시 10여 분쯤 더 기다리자 드디어 모듬회 한 접시가 식탁 한가운데 왕처럼 턱 자리를 잡는다.

"요즈음 모듬회에는 주로 어떤 고기가 들어갑니까?"
"가지메기하고, 광어, 도다리, 돔 새끼가 들어가지예. 퍼뜩 드셔보이소. 요즈음 회가 다른 철보다 쫄깃한 기 더 고소할 낍니더."
"아주머니께서 그걸 어찌 아십니까?"
"썰어보모 금방 알지예. 그라고 고기 색깔 좀 보이소.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기 맛깔스럽게 안 보이능교?"


가지런하게 잘 썰어놓은 회 한 점을 초고추장에 찍어 입에 넣자 회가 쫄깃쫄깃하게 씹히는가 싶더니 이내 고소한 감칠맛과 함께 사르르 녹아버린다. 도다리 한 점을 된장에 찍어 깻잎에 싸서 입에 넣자 향긋한 봄맛이 입안 가득하다. 게다가 여느 횟집처럼 횟감 아래 잘게 썬 무도 부풀게 깔려 있지 않아 양도 몹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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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를 다 먹을 때쯤이면 밥과 함께 매운탕이 나온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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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회를 밥과 초고추장과 함께 비벼먹는 맛도 끝내준다 ⓒ 이종찬

광어 한 점 초고추장에 찍어 파릇파릇한 상추와 함께 한 입. 가지메기 된장에 찍어 깻잎과 함께 한 입. 새끼 돔 한 점 된장과 초고추장을 섞어 만든 양념장에 찍어 마늘과 풋고추와 함께 한 입. 생선 특유의 비릿한 맛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저 쫄깃쫄깃하고 고소한 생선회가 혀끝에 향긋하게 착착 감길 뿐.

회를 집어 먹는 사이 사이 한 잔 쭈욱 들이키는 짜릿한 소주맛도 그만이다. 생선회와 소주. 그래. 이 둘은 언제 보아도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모듬회를 2/3쯤 먹고 있을 때 시원한 매운탕이 놓인다. 발간 국물이 그저 눈으로 보기만 해도 시원하게 느껴진다. 맵싸하고 칼칼한 매운탕 국물과 함께 떠 넣는 밥맛도 끝내준다.

어디 그뿐이랴. 커다란 그릇에 밥 한 공기를 그대로 엎은 뒤 그 위에 먹다 남은 회와 초고추장을 얹고 상추와 깻잎을 손으로 대충 뜯어 넣어 비벼먹는 그 맛, 그 알싸하면서도 달착지근한 생선회 비빔밥의 맛도 기막히다. 말 그대로 싱싱한 생선회도 먹고, 시원한 매운탕도 즐기고, 맛깔스런 회비빔밥까지 맛 볼 수 있으니 이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니겠는가.

"생선회는 저칼로리 고단백 식품이어서 미용과 건강에 특히 좋다 카데예. 그라이 아저씨도 이쁜 마누라캉 오래 살라카모 부부끼리 생선회로 자주 드시러 오이소. 왜넘들이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사는 이유가 갓 잡은 생선회로 많이 묵어서 그렇다 캅디더. 이곳에서 갓 잡히는 생선들도 크고 좋은 넘들은 모두 왜넘들이 몽땅 뜨리미(싹쓸이) 해가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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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위에 깻잎을 얹어 싸먹어도 보고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길/ 서울-대진고속도로-마산-경남대-수정-구복-구복예술촌-구복저도 연륙교-수국정

덧붙이는 글 가는길/ 서울-대진고속도로-마산-경남대-수정-구복-구복예술촌-구복저도 연륙교-수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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