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57

남한산성 - 말을 달려라!

등록 2005.04.15 17:03수정 2005.04.1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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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말을 달려라!

두청은 도원수 김자점과의 만남 후 내심 그 결과에 흡족해 했다. 구원병을 보내지 않는다는 질책에 대한 핑계거리를 만들기 위해 김자점은 청의 부대가 눈치를 챌 수 있도록 큰길로 황해도까지 진격해 갔고 청군과 토산에서 맞닥트려 수백의 사상자를 낸 후 평안도로 후퇴해 버렸다. 이 모든 것이 두청과의 만남 후 이루어진 일이었다.


“허나 문제는 평안감사 홍명구와 병사 유림이네. 실질적으로 평안도의 정예 병력은 이들이 이끌고 있는데 자모산성에 웅거해 있다가 철원으로 옮겨 청나라 군대의 뒤를 노리고 있네. 홍명구는 그 뜻이 완고하나 유림은 설득해 볼 만하네만.”

김자점은 그럴 듯하게 꾸며진 조정에 보고할 장계를 두청에게 준 후에 싸울 뜻이 없어진 병력을 이끌고 평안도로 후퇴하며 슬쩍 말을 흘렸다. 두청은 철원의 성산산성으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두청은 내친김에 유림뿐 아니라 홍명구의 뜻도 한번 떠볼 생각이었다.

‘아직 산성에 들이박혀 있는 것은 적을 두려워한다는 뜻이 아니겠나!’

두청은 빠른 걸음으로 성산산성에 도착하였는데 김자점의 병력과는 달리 병사들의 기강이 엄격하게 서 있는 것에 크게 놀랐다. 어명을 받들고 왔다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성에 들어선 두청의 몸을 속옷까지 샅샅이 조사했고 그렇다고 해서 병사들이 중이라며 함부로 대하는 법도 없었다. 두청은 잠시 후에 키가 훤칠한 종사관에게로 안내되었다.

“전 윤계남이라 하옵니다. 어명을 받들어 오신 스님을 불편하게 해서 죄송하옵니다.”
“아니외다. 감사 나으리께서는…?”
“이쪽으로 오시옵소서.”


두청이 찾아갔을 때 홍명구는 칼을 걸어두고 갑옷을 입은 채로 책을 읽고 있었다. 두청은 그 모습을 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어명을 받들고 오셨으면 펼쳐 보이시오.”


두청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잠깐이나마 스쳐 지나갔다.

“행여 오랑캐의 손에 들어갈 것을 우려해 여기서 보일 수 있는 어명을 받들고 온 것은 아닙니다. 감사께서 어찌하여 속히 남한산성을 구원하지 않으시고 이곳에 머물러 있는지요?”
“그렇다면 어명이 단지 속히 구원하러 오라는 것이었소?”
“그렇사옵니다.”

두청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무한 기색이 묻어나오는 홍명구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허허허! 허허허!”

홍명구의 태도에 두청은 물론 옆에 있는 윤계남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찌 조정에서는 밖의 구원만 생각했단 말인가? 오랑캐의 병력은 남한산성으로 집중되어 있으니 각지의 병력이 일거에 공격해야만 이길 수 있다! 긴히 구원을 요해서 이길 방도를 찾는다면 일월일시를 정해 한 번에 적을 쳐야 함을 아는 이가 전하의 곁에 없었단 말인가! 허허허…!”

두청은 잔기침을 몇 번 한 후 몸을 꼿꼿이 세웠다. ‘그렇다면 병사를 뒤로 물리는 것이 어떻겠소?’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홍명구라면 자신의 거짓된 행동을 눈치 챌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차마 입 밖에 꺼낼 수는 없었다.

“허나 어명이 그러하오만… 무리한 진군은 삼가라는 언질도 받았소이다.”

홍명구는 책상을 탕! 치며 소리쳤다.

“닥치시오! 지금 그대는 입으로만 어명을 말하고 있는데, 아무리 전란중이라고는 하나 이런 법은 없소이다. 거짓을 말하고 있거나 도원수에게 다른 말을 듣고 온 것이 아니오이까?”

두청의 옷 속에서는 등골을 타고 한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어, 어찌 소인이 그런 발칙한 일을 하겠사옵니까…”
“그렇다면 당장 물러가시오! 정녕 어명이 그러하다면 출진할 때는 여기서 정하겠소이다!”

두청은 속으로 홍명구에게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자점의 말을 떠올리며 힘없이 뒷걸음쳐 물러갔지만, 아직 병사절도사 유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잊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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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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