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68

남한산성 - 잔나비의 사냥법

등록 2005.05.04 16:59수정 2005.05.0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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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켜라!"

장판수는 편곤을 든 채 땅에 쓰러져 있는 투루아얼을 가로막고 있는 여인에게 눈을 부라렸다.


"이 사람은 나를 살리려 놓아준 사람이오! 게다가 이미 패해 쓰러진 사람을 죽이려 듬은 무슨 도리오?"
"이런 발칙한 년을 봤나! 전쟁 통에 도리는 무슨 얼어 죽을 도리네! 오랑캐에게 몸을 팔았으면 부끄러운 줄 알 것이지 어딜 감히 나서는 기야! 한 번에 때려죽이기 전에 어서 비키라우!"

"난 몸을 판 적 없소! 그 더러운 주둥이를 닥치시오!"
"이년이!"

장판수는 정말로 휘두를 양으로 편곤을 높이 들어 올렸다. 멀리서 김준룡이 그 광경을 보고선 황급히 큰소리를 질러 이를 제지했다.

"무슨 일이오? 이곳에 아낙네가 왜 있는거요?"

장판수는 편곤을 훡훡 돌려대며 쓰러진 투루아얼을 보았다. 이미 이마를 편곤에 맞아 머리가 움푹 들어간 투루아얼은 가늘게 숨이 붙어 있을 뿐이었다.


"아뢰옵니다. 전 궁중의 교서관에 있는 계화라는 천한 계집이오나 급한 기별을 가지고 성안으로 들어가려 하니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이 사람은 절 도운 자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가로막은 것이옵니다."

김준룡이 투루아얼을 살펴보니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김준룡은 병사들을 시켜 계화를 끌어내었고 장판수는 편곤질 한 번에 투루아얼의 얕은 숨을 끊어버렸다. 계화는 그 잔인한 모습에 눈을 찔끔 감아버렸고 그런 눈썹 사이로 눈물이 배어 나왔다.


"그 말을 들으니 생각났는데 내래 다시 성안으로 돌아가겠습네다. 어차피 절도사께서는 이시방이 때문에 수원으로 가시지 않습네까?"

김준룡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음 같아서야 군사들을 이끌고 남한산성까지 진군하고 싶었지만 턱없이 모자란 병력에 부상자들이 많았고 병사들의 피로는 극에 달해 있었다.

"정말 다시 성안으로 가려는 것인가? 오랑캐들의 포위를 뚫고서? 그러지 말고 나와 같이 가서 감사를 설득해 보세나."
"아닙네다. 제가 할 일은 원군을 이끌고 오는 것인데 소임을 다하지 못했으니 이대로 가면 도주하는 것 밖에는 아니됩네다. 어찌 되었건 성으로 들어가겠습네다."
"굳이 그렇다면 할 수 없네."

장판수는 쉴 사이도 없이 식량으로 쓸 찐 콩만 챙기고서는 말도 타지 않은 채 서둘러 병영을 빠져나갔다. 그 사이 계화도 장판수의 뒤를 부지런히 따르며 소리쳤다.

"나도 가야하오!"
"무슨 일인지 몰라도 따라오던지 말든지 알 바 없다! 니래 죽고 싶고 싶지 않거든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하라우!"

장판수의 말은 괜한 엄포가 아니었다. 도중에 청의 병사들을 만날 수도 있었고 이를 피할 수 없게 되면 장판수는 목숨을 내어놓고 싸울 결심이었다. 그럼에도 계화는 계속 장판수를 쫓아왔다.

"니래 와 이러네?"
"성안에 알릴 일도 있거니와 난 본시 궁중에 있던 사람이오, 가라면 어디로 간단 말이오?"
"허! 그 애미나이래 참…."

장판수는 혀를 끌끌 차며 계화를 외면하고서는 앞서 나갔다. 그런 장판수를 군관하나가 말을 타고선 뒤쫓아 왔다.

"이보시오 장초관! 병마사께서 말을 보내었으니 타고 가시오!"

장판수는 말고삐를 잡아 쥔 다음 계화를 힐끗 돌아보았다. 말에 오른 장판수는 옆에서 고개를 숙인 계화에게 손을 내밀었다.

"둘이 타면 말이 빨리 지칠터인데. 그러면 밀어버리고 가갔어."
"알아서 하시구려."
"꽉 잡으라우!"

장판수는 박차를 가해 말을 힘껏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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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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