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78회

등록 2005.05.09 08:27수정 2005.05.0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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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 장 유탐화(兪探花)

전연부는 개봉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잡을 수 없었다. 납치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리고 납치한 후에는 대개 그 목적을 밝히고 뭔가를 요구해 오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에서도 그들은 전혀 연락을 해오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단순한 납치는 아니었다.


납치한 자들은 납치한 사실만큼은 명백히 밝히고 있었지만 그 이유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것은 분명 자신들이 알 수 없는 곡절이 숨어 있음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그녀들이 소림사행을 해야 했던 해금령과 관계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 생각에 미치자 전연부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유곡!)

많은 사람들이 유탐화라고 부르는 사람. 손불이와 친구가 되는 순간에 손불이가 가르쳐 준 사람. 그가 꼭 개봉에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모르는 일은 이 세상에 별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서가화와 송하령에 관련된 일이라면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납치해간 상대의 목적까지도.

그는 어느새 개봉 최고의 기루(妓樓)라는 청화원(菁花院)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름처럼 청화원은 사시사철 꽃이 피어 그 향기가 끊이지 않는다는 곳이다. 하지만 사내들은 정원에 피어있는 꽃을 보러 이곳에 오지 않는다. 정원의 꽃보다 기방(妓房)에 있는 야화(夜花)가 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꽃향기보다 더 진한 육향(肉香)은 언제나 사내들의 발길을 끊이지 않게 한다.

전연부는 눈을 가린 채 어렵게 한 곳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은 조그만 방이었는데 아무런 장식이나 가구가 없는 곳이었다. 있다면 오직 조그만 탁자와 의자 하나 뿐. 그의 전면에는 황색 휘장이 늘어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세 송이의 목단화(牧丹花)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히 적었지만 전연부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천지회(天地會)를 뜻함이었다.

"오실 줄 알았소."


유탐화의 목소리는 탁음이었다. 자신을 감추기 위해 변성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래 목소리가 그런지 몰라도 듣기에 거북했다. 목소리는 휘장을 통하여 들리고 있었다. 그는 소리가 나는 곳을 유심히 보았지만 어떤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 휘장 뒤에는 사람이 있을 공간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교묘한 기관이 설치되어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일 터이고, 자신은 그를 볼 수 없지만 그는 자신을 보고 있을게 분명했다.

"유탐화이시오?"


유탐화(兪探花).
절강 출생으로 자는 선랑(先郞), 호는 탐화(探花). 이름은 곡(谷)이다.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으로 불렸고, 학문의 박학과 깊이 또한 대학유들이 두 손을 들 정도였다. 다만 어려서부터 몸이 여리고, 사내답지를 못하였는데 전시에 합격하여 관인이 된 이후에도 극복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소문과 같이 방효유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는지 스스로 관직을 그만두고 나온 인물이다.

"천관의 전연부가 탐화께 인사드리오."

전연부는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포권을 취해 보였다. 이미 관직을 그만두었다하나 정오품(正五品)의 관직에 있었던 유곡이다. 그에 맞는 대접은 해야 했다.

"그녀들은 며칠 내로 무사히 돌아올 것이오."

이미 자신이 올지도, 그리고 자신이 왜 왔는지까지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전혀 감도 잡지 못하는 일을 아주 간단하게 해결한 듯 보였다. 그는 감탄했다. 말로만 듣던 유곡의 능력이란 것이 몸으로 느껴졌다.

"소관(小官)이 안심해도 되겠소이까?"

"우리는 우리의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소."

우리와 친구라는 말은 그에게 생소하게 들렸다. 흔히 사용하는 말이지만 목단화 세송이를 앞에 두고 하는 이 말들의 의미는 여러 가지였다. 그가 여기에 온 것은 정주 손가장의 장주, 손불이의 친구 자격이었다. 그것은 이미 유곡의 친구였고, 천지회의 친구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전연부는 아차 싶었다. 그는 여기에 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친구라면 이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천관을 배신할 수도 있다. 천관에서 생각하는 천지회는 반황실단체로 그 뿌리를 뽑아야 할 단체다. 하지만 그는 그 속에 이미 발을 담갔다.

(그럼 손가장의 손대인도…?)

실수였다. 하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사람은 때로 이렇듯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 처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조직을 배반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가 반드시 자신의 조직을 배반하고자 마음을 먹지 않아도 말이다. 그는 이왕 이렇게 된 바에는 확실한 도움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후의 일은 그때 생각하면 된다.

"그녀들이 왜, 그리고 누구에게 납치된 것이오?"

"모든 일은 전영반도 만나 본적이 있는 담천의란 자 때문이오."

담천의. 손가장에서 그를 만나 보았다. 만물표국의 일개 표사라 하던 그. 하지만 너무나 기이하게 생각되었던 자였다. 하지만 그런 정도의 인물 때문에 이런 위험한 장난을 할 자들이 있단 말인가?

"내력이 아무리 범상치는 않아 보이기는 했지만 그자 때문에 강남 서가와 송가를 건드는 어리석음을 범한단 말이오? 뻔히 관에서 개입될 것을 알면서?"

"그 사람이 누군지 아시오?"

모른다. 하지만 그 질문을 하는 유탐화의 태도에는 모종의 의도가 있었다. 그 의도가 무엇이던 간에 그에 대해 말할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며칠을 같이 지냈고, 무공이 고절하며 판단력이 뛰어난 젊은이라는 것. 그것이 전연부가 말할 수 있는 전부였다. 대답이 없자 다시 말이 흘러 나왔다.

"그는 과거 균대위를 이끌던 담명장군의 아들이자, 비원(秘苑)이 키워낸 인물이오."

그 말에 전연부는 처음에는 의혹스런 표정을, 그리고 나중에는 경악스런 표정을 떠올렸다. 그제야 어렴풋이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아 … 담명장군. 바로 그였다. 담천의가 담명장군의 아들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더구나 비원이라니. 상대부가 무심코 흘렸다가 다시는 입 밖에 내지 않도록 주의 받았던 것이 비원이었다.

"비원에서도 그 지위가 모호한 특별한 존재. 공포의 초혼령을 가지고 있으며 전설적인 비전무공(秘傳武功)을 익힌 고수. 그리고 비원에서는 꼭 필요한 인물."

전연부는 계속되는 유탐화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담천의는 확실히 특별한 존재였다. 자신들이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비원이라면…?"

분명 그는 몰라야 할 존재였다. 알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전연부는 어차피 칼날 위에 서 있다고 생각했다. 가볼 때까지 가봐야 했다.

"비원은 주씨 황실을 보호하는 비밀단체요. 나라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 주씨가 대대손손 황제권력을 유지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이는 자들의 집단이오."

"균대위…?"

"어쩌면 비원과 균대위는 동전의 앞면과 이면의 관계일지 모르오. 하지만 현재 균대위는 사라졌고, 비원만 남았소."

상대부가 그토록 찾으려 했던 균대위는 사라졌다. 또한 상대부도 확실하게 비원이란 존재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헌데 유곡 이 자는 왜 자신에게 이런 비밀을 말해주는 것일까? 어떠한 의도가 있을까? 전연부는 빨리 이곳을 빠져 나가고 싶었다.

"두 소저를 납치한 자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담천의란 사람 때문이란 말이오?"
"그렇소. 그들은 비원과 싸워야할 백련교도이기 때문이오."

(비원은 천지회… 당신들도 싸워야 할 상대겠지.)

전연부는 목까지 치밀어 오른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오늘 들은 정보는 꽤 중요했다. 언젠가 천지회는 자신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정보를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그것을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을 거부한다면 그는 반드시 죽을 테니까.

천지회와 백련교도는 공동의 적이 있었다. 주씨 황실. 하지만 백련교도들이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주씨황실을 전복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목적을 가진 것에 비해 이들은 본래의 질서 속에서 자신들의 박탈당한 기득권을 되찾고, 지금까지 누리고 있었던 부와 지위를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그들의 부와 지위가 보장된다면 그 어떠한 황실이라도 상관이 없었다. 그 점에 있어 두 곳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그 점에 있어서 천지회는 어느 쪽도 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라가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언제든 백련교도들과 타협할 수 있고, 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황실과 손잡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이러한 위기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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