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71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5.17 22:32수정 2005.05.18 08:53
0
원고료로 응원
권기범이 연기 속에서 외쳤다.
짐꾼과 병조선 선원들부터 난간을 타 넘었다.

[탕, 탕]


산총을 가진 흑호대원 둘이 후위를 지키며 방포했다. 연기 속에서의 막연한 지향 사격이었다. 그래도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났다. 흩뿌리며 나가는 산탄이 어딘가를 훑은 모양이었다.

“판옥 뒤에 있습니다요. 두 시 방향!”

시계 확보가 용이한 돛대 위에서 여전히 수돌이가 방향을 잡아 주었다. 병조선 쪽에 있는 흑호대원은 연기 때문에 피아를 구별하지 못해 사격을 가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난간 쪽으로 빠지는 흑호대원들은 자신들의 뒤에 남겨진 아군이 없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누대(판옥) 뒤를 지향하고 마음껏 방포했다.

[타타탕, 탕]

산총과 오혈포가 동시에 불을 뿜었다. 누대 뒤에서 총을 겨누려던 청국 선원 몇이 황급히 몸을 숨겼다.


[파파팍]

총환이 박혀 나무 튀는 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그 사이 최초 피격 당한 상단의 짐꾼과 흑호대원을 끌고 들어선 마지막 후위가 난간을 넘어섰다.


“됐다, 수돌아 빨리 내려와! 너무 노출됐어!”

선장이 수돌이를 향해 다급히 외쳤다. 모두가 난간 뒤에 엄폐한 상태니 가장 위험한 이는 돛대 위의 수돌이였다. 말하는 사이 소포가 황당선 누대 쪽을 겨냥했다. 누대 뒤에서 청국 선원 몇 명이 총을 겨누며 몸을 내밀었다.

[땅, 땅]
[펑]

청국 선원들의 총과 병조선의 소포가 불을 뿜은 것은 동시였다.

[깡-]
[후두두둑---]

매캐한 화약 연기가 허옇게 소포 앞전을 휘감았다. 소포 앞판의 철제 방탄판에 납환 부딪히는 음과, 소포에서 발사된 상수리만한 수백의 철환들이 누대 나무판을 훑는 소리가 들린 것 또한 동시였다.

[철커덕]

소포 사수가 폐쇄기를 열자 흰 연기와 함께 유산탄 탄피가 튀어져 나왔다.

[털컥]

허연 김을 뿜어 내고 있는 탄피가 채 바닥을 구르기도 전에 부사수가 유산탄 하나를 폐쇄기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해풍에 화약 연기가 걷혀가고 있었으나 정확한 상황은 파악되지 않고 있었다.

“이런 넨장헐! 수돌이가 맞았어!”

한 선원이 소스라치게 외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돛대 위로 향했다. 허리에 감은 줄이 돛대에 걸린 채 수돌이가 축 처져 있었다. 옆구리가 피로 흥건한 채 고개를 모로 떨구고 있었다.

“이런 육시럴 놈의 뙤놈들! 다 죽어랏!”

[펑]

고물 쪽 소포 사수가 아직 연기가 다 걷히지 않은 황당선의 누대를 향해 포를 쏘았다.

“이 놈들 다 죽여 버리겠어!”

조금산이가 허리춤에서 발화통을 꺼냈다. 대나무통 안을 화약과 철편들로 채우고 탄피 뇌관을 넣어 기폭장치로 쓰는 폭발통이었다. 대나무로 된 발화통 뚜껑을 열었다. 뇌관과 연결되어 고정된 송곳 뒤끝뭉치를 뚜껑으로 때렸다.

[피시시-]

화약심지가 타는 소리가 나며 연기가 피어 올랐다.

“발화통!”

조금산이가 소리를 지르며 발화통을 힘껏 황당선 갑판으로 집어 던졌다.

[꽝]

무서운 굉음과 불꽃, 그리고 연기. 그 사이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삼각형의 날카로운 철편들이 비산했다. ‘발화통’이라는 경고의 의미를 모르고 난간 위로 고개를 내민 채 보고 있던 개성 행수 서문길이 나동그라졌다. 서문길 옆에 있던 점백이도 허리춤에서 발화통을 뽑아 들었다.

“아니 되오! 그만 하시오. 갑판 위에 삼이 그대로 있단 말이오. 아니 되오!”

서문길이 화들짝 놀라 점백이를 만류했다. 지금까지의 총격으로도 얼마만큼의 삼이 상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저런 위력의 폭약이라면 일거에 삼 짐바리들을 날려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 갑판 위로는 발화통을 자제하는 게 좋겠다.”

권기범도 만류했다.

“저것들을 확! 에이.”

점백이가 분을 삭이며 발화통을 다시 허리춤에 끼웠다. 이러는 사이 선원 하나가 돛대로 올라가 수돌이를 부축해 내렸다. 소포의 사격 때문인지, 발화통의 위력 때문인지 수돌이를 갑판으로 내리는 동안에도 황당선 갑판 위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화연도 많이 걷혀 시야가 제법 트였다.

“화포다!”

갑자기 난간 아래 쪽에서 찢어지는 외침이 들렸다.

“뙤놈들이 포구문을 열었다. 화포가 있다!”

연이어 들려오는 외마디 비명 같은 외침이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이 기자의 최신기사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횡단

AD

AD

AD

인기기사

  1. 1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2. 2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3. 3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4. 4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5. 5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