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대변항에서 오뉴월에 건져올린 왕멸치가 특히 맛이 좋다.이종찬
특히 오뉴월 장독에 담근 생멸치는 보름에서 한 달쯤 지나면 생멸치의 살이 물컹물컹해지면서 구수한 향과 함께 독특한 단맛이 나기 시작했다. 또한 그때쯤이면 밥상 위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이 생멸치 육젓이었다. 살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고 있는 생멸치 육젓 살점 한 점을 밥 위에 올려 먹으면 그 독특한 감칠맛 때문에 밥 한 그릇은 금세 뚝딱 비운다.
어디 그뿐이랴. 오뉴월에 담근 멸치젓갈은 김장철이 올 때까지 가난한 시골의 허술한 밥상을 지켜주는 든든한 밑반찬이었다. 마을 아낙네들은 여러가지 나물을 무칠 때에도 반드시 멸치젓갈을 기본 양념으로 썼고, 밭에서 금방 뜯어낸 싱싱한 채소로 쌈을 싸먹을 때에도 쌈장으로 멸치젓갈과 된장 두 가지를 내놓았다.
이처럼 우리가 즐겨먹는 멸치젓갈은 영양가뿐만 아니라 약효도 뛰어나다고 한다. 지난 해 5월 부산 동의대 생명응용과학과 정영기(57) 교수는 "한국의 전통발효식품인 멸치젓에서 성인병의 원인 중 하나인 피떡을 분해시키는 물질을 발견해 이를 '멸치키나아제(Myulchikinase)'로 이름 붙였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정 교수는 "피떡(혈전)은 혈액 내의 응고된 물질로 혈액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미세혈관을 막아 심근경색, 뇌중풍(뇌졸중), 폐경색, 고혈압 등 성인병을 유발하는 원인"이라며, 이러한 환자에게 '멸치키나아제'를 투여한 결과 피떡이 녹으면서 혈액의 흐름이 아주 좋아졌다고 밝혔다. 게다가 여러 암세포를 대상으로 멸치키나아제를 항암제와 함께 투여했을 때 항암제만 사용했을 때보다 약효가 훨씬 높게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