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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 조준! 반드시 타(舵: 키)를 조준하라!"
권기범의 병조선이 황당선 후미로 빠져 적의 화포 사각(射角)으로부터 벗어나자 선장이 다시 갑판으로 나와 배를 지휘했다. 바다 싸움만큼은 누가 뭐래도 선장의 몫이었다.
소포 사수가 마치 조총의 조성(가늠자, 가늠쇠)같은 조준장치로 황당선 고물에 붙은 키를 겨냥했다. 거리 삼십 보. 장전탄은 고폭탄. 직사각으로 거의 오백 보 사거리를 자랑하는 소포로 이 거리에서 키를 부수지 못한다면 세간의 웃음거리가 될 거라 생각했다.
"방포!"
[펑]
[펑]
소포 두 문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고폭탄의 발사 반동이 병조선을 흔들었다. 유산포와 달리 묵직한 느낌의 폭압이 주위를 덮었다.
[콰쾅]
황당선의 고물비우(고물 뒷부분 비어 있는 공간에 가로로 대어 박은 널판)에 폭발이 일었다. 불꽃과 널판이 뒤엉켜 튀어 올랐다.
"와아-"
병조선에서 함성이 일었다. 그러나 고물비우의 널판이 처참히 뜯기운 가운데에도 키는 여전히 자리에 붙어 있었다.
"거, 참...역시 소포는 소포구먼. 인마살상이라면 천하에 무서운 게 없는 것이 이놈인데, 배를 상대하기엔 좀 벅찬 감이 있어. 전선만 있었어도......대포였다면 저런 나무판때기조각은 흔적도 없었을 것이야."
선장이 입맛을 다셨다.
"다시 방포할깝쇼?"
재장전을 마친 소포 사수들이 물었다.
"그걸 말이라구 하느냐 이놈아, 저놈이 바람을 타지 못할 때까지 키든 노든 닥치는대로 좀 조져버려!"
선장이 다급하게 역정을 내었다.
"예이!"
[따다땅]
[팅-]
조준을 마친 순간 이물 쪽 소포 방패판에 불똥이 튀었다. 부사수가 어깨를 쥐며 나뒹굴었다. 병조선이 화포의 사각을 벗어난 후미에 붙었기에 황당선에선 다급하게 총을 쏘아 병조선의 화포 사격을 막으려 한 것이었다. 화포의 사각과 별개로 포구문을 통해 총을 발사하리라고는 예측을 못했다가 부사수 하나가 부상을 당했다.
[타타타탕, 탕탕]
병조선의 흑호대원들이 일제 사격을 가했다. 아직 총의 화약연기가 가시지 않은 황당선의 포구문에 총탄이 작렬했다.
[펑]
화약 연기가 채 걷히지도 않았는데 조준을 마쳤는지 이물 쪽 소포가 불을 뿜었다.
[쾅]
보기 좋게 황당선의 고물에서 불꽃과 파편이 일었다. 키를 고정하는 타주(舵柱)와 키 본체인 타판(舵板)이 모두 튀어 올랐다.
"잡았다!"
갑판 위의 흑호대원들이 주먹을 불끈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그래 잘 한다. 이젠 흘수선 아래를 노려! 이놈들 이제 타가 없으니 그냥 띄워놓고 두드리면 되는 게야!"
선장도 신이 나서 소리쳤다.
[펑]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물 쪽 소포가 방포됐다.
[텅-꽝]
고물 아래에서 물보라와 함께 널판이 튀었다. 흘수선 아래에 직격한 고폭탄이 물 속에서 선체를 터뜨리며 한 치 두께의 널판을 겹겹이 붙여 만든 삼판(杉板)을 짓뜯었다.
[펑]
이물 쪽 소포도 금세 다시 포격을 시작했다. 쓰러진 부사수를 대신해 흑호대원 하나가 계속 포탄을 장전해 주었다.
어깨를 다친 부사수는 난간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절구대 굵기의 고폭탄을 가슴에 안고는 접촉뇌관을 덮고 있는 안전뚜껑을 돌려 벗겼다. 부사수 역할을 대신하는 흑호대원에게 넘겨 주면서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노를 저으면서도 제대로 방향을 가누지 못하고 있는 황당선은, 마치 포경선 앞에 무기력한 고래 같았다. 병조선은 여유있는 무자비함으로 연신 작살을 날리고 있었다. 거대한 목조 고래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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