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빌어먹을 자식들아, 제대로 노를 저으란 말이다! 우리 포가 도대체 겨냥을 할 수가 없잖아!"
부두목 후안이 능노꾼들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능노꾼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노를 젓고는 있었지만 제대로 호흡이 맞질 않았다. 갑판 위에서 사람들이 몰살되고 있을 때까지도 무슨 상황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선실 내에서 포를 조준하던 이들이 총을 맞고 피를 뿌리며 넘어진 뒤론 능노꾼들이 자꾸 허둥거리기만 했다.
"좌현 노는 앞으로! 우현 노는 뒤로!"
후안이 열심히 구령을 붙였다.
"놈들이 뒤에 붙었어. 잽싸게 방향을 틀어야 한단 말이다."
후안이 혼잣말처럼 이를 악물었다.
키를 잃었음에도 배는 노의 힘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머지 않아 포 앞으로 조선 상단의 배가 보일 터였다. 포구문 사이로 내다보던 씨아티엔(夏天)은 불안감에 휩싸여 입을 딱딱거렸다. 적선이 우리 포 앞에 놓일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배의 측면을 적선을 포 앞에 노출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무서웠다.
"후당랑판(고물비우)이 다 날아갔겠지?"
포 우측에서 떨고 있던 거우샹이 말을 걸었다. 두렵기는 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고물 선창 안에서까지 터지는 소리가 났으니 그렇겠지?"
씨아티엔도 애써 떨리는 맘을 감추고 입을 열었다. 선미의 후당랑판 안쪽은 고물칸이다. 선원의 휴식 및 취침 공간으로 이층으로 꾸며서 아래는 창고로 위는 취침실로 활용하는 공간이었다. 그 선창 안에서까지 푸다닥 파편 튀는 소리가 요란했으니 분명 배의 후미가 다 날아갔다는 뜻이다.
다행히 격벽 구조로 되어 있어 일부 침수구역이 생겨도 당장 가라 않을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불랑기포의 사격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아서는 침몰은 시간 문제였다.
"그…, 그럴 리 없겠지만, 설사 우리가 저 배를 가라 앉혀도 고향으로 돌아가지는 못 하겠지?"
다시 거우샹이 힘 없이 말했다.
"그까짓 것! 며칠 순풍이면 그냥 고향인데 뭐."
거우샹이 자기보다 더 무서워하는 것 같아 씨아티엔이 짐짓 자신있게 말했다. 그러나 거우샹보다는 배에 대해 조금 더 아는 씨아티엔이 생각하기에 이 상태에선 가망이 없었다. 요행히 이 배가 살아남는다 해도 중국으로 다시 돌아갈 상태는 못 되리라.
키가 없는 배라는 게 방향을 잡을 수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돛을 편 상태에서 배의 흔들림을 막고 직진성을 좋게 하는 물건이었다. 키 없이 망망대해를 다시 건넌다는 것도 아찔한 일이지만, 이 정도 침수라면 인력으로 다시 퍼낼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조선의 화력이 이 정도였나? 난 들어 본 적이 없어."
두려움을 잊고 싶은지 거우샹은 자꾸만 말을 걸어왔다.
"그러게. 철환이 아니라 터지는 포환을 쓰다니…. 서양의 포를 들여온 적이 있었나? 있다 해도 어떻게 홍삼 밀매상이 저런 것을 달고 다니느냔 말야."
"왕대인의 배를 뺏는 건 식은 죽 먹기였는데 말이야. 무기도 끽해야 대부분 화승총이나 양총 몇 자루였고…."
"게다가 우리 쪽엔 내응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거저 먹기였지."
"그건 저들한테도 마찬가지였잖아. 우리가 왕대인네 신호법까지 다 알고 있었고, 우리 배까지 올라타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이 지경까지 왔냐고…."
"우리 두목을 벤 자, 그 자는 이미 다 알고 있었어."
씨아티엔이 뭘 알겠다는 표정으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 자? 갓 쓰고 칼질하던 그 자 말인가?"
"그래. 그 자나, 그 자가 데리고 온 자나, 모두가 이리 될 것을 알고 준비해 온 자 같았어."
씨아티엔은 갑판에서 칼을 뽑고 서 있다가 봉변을 당한 처지라 그 느낌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먼저 총을 꺼낸 두목과 왕대인네 차인이 단 두 번의 칼질에 절단이 났다. 먼저 칼을 뽑은 것도 우리 편이었는데 갑판 위의 결전은 허망하게 끝이 났다. 지금도 갑판 위로는 나가지도 못한지 못하고 이렇게 선창에 다 몰려 있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콰광-쾅-우지직."
그 때 다시 고물 쪽 뱃전에서 폭음이 들리고 배가 요동을 쳤다. 이번에도 된통 맞은 것 같았으나 아직 능노꾼과 포군들이 몰려 있는 선창엔 피해가 없었다.
"또야?"
"제기럴, 이 자식들 흘수선 밑으로만 쏘는 거야"
거우샹과 씨아티엔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쏴라!"
그 와중에도 부두목 후안은 냉정을 잃지 않고 배를 지휘했다.
"꽝, 꽝."
방향을 잡았는지 불랑기 두 문이 모두 발사했다.
아는 거라곤 칼 뿐인 씨아티엔은 몸이 달았다. 불안하긴 한데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어차피 놈들이 다시 배로 오른다면 단병접전이다. 우릴 다 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도 흘수선 아래를 노린다는 건 폭약이 유폭될 걸 염려하는 거야."
안절부절해 하던 씨아티엔이 말을 내뱉었다.
"뭐하러 그런 수고를 해?"
"우리 배에 왕대인네 배에서 뺏은 은궤와 자기네 인삼이 모두 실려 있으니 선창에 있는 화약이 유폭되지 않게 하려는 거지. 이놈들 이제 우리 배에 붙이고 다시 올라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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