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81

남한산성 - 개의 혀

등록 2005.05.27 17:01수정 2005.05.2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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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산성을 빠져나가는 두 갈래의 병력을 뒤로 한 채 서흔남은 잠시 몸을 숨긴 채 성이 비기만을 기다렸다. 성안의 병력이 한 명도 남김없이 다 빠져 나간 후, 서흔남은 성위에 올라가 검은 색 깃발 하나를 꽂아 둔 후 홀연히 어디론가 가 버렸다.

멀리서 그 깃발을 바라보던 검은 그림자가 불을 피워 신호를 보내었고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내가 말을 달려 평안도 병사들의 대오를 뒤쫓았다. 이런 상황을 모른 채 남한산성에서는 모두가 싸울 뜻은 접어둔 채 항복할 논의로 술렁이고 있었다.


“척화신들을 내어 놓으시오!”
“통촉하시옵소서 주상전하!”

날마다 행궁에 모여 항복할 것을 주청하는 구굉과 신경진 휘하의 장졸들은 자신들의 목소리에 묻혀 뒤늦게야 하늘위에서 날카로운 바람소리를 내며 무엇인가가 떨어지는 것을 깨달았다.

-퍼엉!

“대포다! 모두 피하라!”

성안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감지한 청의 홍타이지가 행궁을 노려 포를 쏘도록 명령을 내렸고, 청의 병사들은 포를 남한산성의 남문과 행궁을 바라보는 망월봉 아래로 옮긴 후 쏘아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성첩을 무너뜨리는 홍이포의 위력을 아는지라 병사들은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흩어졌다.


“나와서 항복하는 논의가 길어진다면 우리 군사가 들어가 끌어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 번도 공격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남한산성의 분위기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용골대인지라 이번 공격에는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청군의 공격이 집중되는 곳 또한 첩보를 수집한 후 내린 결정이었다.


서성의 이시백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고 북성의 원두표는 태도가 미적지근하긴 하나 나름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동성의 신경진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으나 휘하 장졸들이 조선의 정예병인 훈련도감 소속인지라 만만치 않은 저력을 일전의 싸움에서 보여주었으니 남은 것은 구굉이 지키는 남문이었다.

더군다나 남문은 인조가 기거하는 행궁과도 가까웠다. 용골대의 예상대로 남문을 지키는 병사들은 자리조차 잡지 못한 채 행궁을 둘러싸고 우왕좌왕 할 뿐이었다.

“적이 남문으로 밀려온다!”

겨우 자리를 지키며 밖의 상황을 보던 병사들의 고함소리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병사들은 쏟아지는 포 공격이 두려워 성위로 올라서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보던 계화는 아랫입술을 질끈 물고서는 간이 떨어질 것만 같은 포 소리에도 아랑곳 않은 채 바닥에 떨어트린 누군가의 창을 잡고 분연히 남쪽문의 망루에 올라섰다.

“계집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냐! 썩 물러서 몸을 피하라!”

군관하나의 핀잔에 계화는 다른 이들도 들으라는 듯이 소리쳤다.

“보시오! 그 잘난 남정내들이 저리도 궁상을 떨며 몸을 사리는 데, 계집이 제 한 몸 지키겠다고 나선 게 뭐가 나쁜 것이오!”

그 말에 평소 같으면 비웃었을 병사들이 정신을 차리고 활을 쏘며 성벽을 노리는 청군을 맞아 힘내어 싸우기 시작했다. 우왕좌왕 하던 병사들도 하나 둘씩 자리를 잡으며 성벽을 기어오르는 청군을 저지하며 서로 사기를 북돋우기 시작했다.

“결국 조선의 왕이 제 발로 나와 항복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냐!”

멀리서 불리해지기 시작한 전투 상황을 지켜보던 홍타이지는 한탄을 금치 못했다. 비록 지금은 청의 군대에 물자가 넉넉하고, 남한산성의 조선군은 그렇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넉넉한 물자를 바탕으로 조선군의 저항을 받았다면 병사들의 수가 많은 청의 진영도 흔들릴지 몰랐을 일이었다.

홍타이지에게는 다행이도 이제는 그럴 상황이 벌어질 때는 아니었으나, 인조를 강제로 끌어내어 발아래 엎드리게 하고 싶은 욕심은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황제폐하께 아뢰옵니다. 성산산성에 있던 조선의 병력이 이리로 오고 있다 하옵니다.”

전령의 보고에 홍타이지는 손을 가볍게 저어 보였다.

“그까짓 얼마 되지 않은 조선의 병력이 무에 그리 걱정이냐. 호서아와 소대여 두 장수에게 군사 1만을 주어 쫓아 보내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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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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