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정을 지키는 비결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114) ‘가정의 달’을 보내며

등록 2005.05.30 07:04수정 2005.05.3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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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부러운 사람


요즘 내가 가장 부러운 사람은 돈이 많거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다. 예사사람으로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뒤, 부부가 해로하면서 남은 인생을 깨끔히 마무리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언저리에 매우 흔할 것 같은데 그리 흔치 않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복해 보이는 가정일지라도 조금만 눈여겨보면 그렇지 않는 집안이 더 많은 것 같다.

부부 가운데 어느 쪽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든지, 부부가 헤어졌다든지… 아무튼 부부가 금실 좋고 건강하게 노년을 함께 보내는 이가 점차로 줄어드는 세태다.

더욱이 최근 20~30년 새 우리 사회 가족제도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대가족제에서 소가족제로, 소가족제에서 핵가족제로, 이제는 핵가족제에서 가족 해체에 이르는, 일대 혁명기를 맞고 있다.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홀로 사는 가구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a 20년 전 어느 날 가족나들이, '품 안의 자식'이란 말처럼 자식은 크면 부모 곁을 떠나게 마련이다.

20년 전 어느 날 가족나들이, '품 안의 자식'이란 말처럼 자식은 크면 부모 곁을 떠나게 마련이다. ⓒ 박도

우리 가족 네 식구만 하더라도 지금은 세 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 우리 가족은 한 지붕아래 20년을 넘게 살아왔다.


내가 시골 행을 가장 망설인 점은 가족 해체였다.

하지만 아내는 서양에서는 18세만 되면 자식을 독립시키는데 언제까지 자식들을 주리 끼고 살 수 없다고, 아이들도 독립하겠다고 해서 가족 의사를 따랐다. 그러다가 올해 초, 아들이 직장 이전으로 다시 독립해 나갔다.


지난 주초는 마침 아들 생일이라 우리 부부가 서울로 가서 오랜만에 네 가족이 모여 오붓하게 지내다 왔다. 나는 계속 함께 살고 싶지만 언저리 여건들이 그렇지 못하다. 내 욕심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이다.

10여 년 전, 프랑스에 갔을 때, 파리 시내에 사는 젊은이들이 절반 이상은 홀로 독립해서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놀랐는데, 어느 새 우리사회가 그들 사회처럼 돼 버렸다. 민주화로, 인권과 여권신장으로, 산업의 발달로, 앞으로 당분간은 지난날 농경사회와 같은 대가족제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늘날 취업으로, 학업으로 가족이 헤어지게 되는 것은 산업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가족 해체는 이따금 가족들이 만나면서 끈끈한 가족애를 이어갈 수 있지만, 가장 가슴 아픈 일은 이혼이나 부부 별거로 가족 해체가 부쩍 늘어나는 점이다.

내가 교단에 처음 섰던 1970년대 초에는 한 부모 자녀가 한 학급에서 한둘 정도였는데, 지난해 퇴직할 무렵에는 예닐곱 정도로 부쩍 늘어났다(상대적으로 학급 정원은 거의 반으로 줄었음).

조금 더 참으면서 살자

지난날에는 여성들이 혼자 살기가 힘들어 부당한 결혼생활(인권유린이나 가정폭력 등)에도 어쩔 수 없이 참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여성들도 남성 못지않게 사회 활동을 하여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되자 굳이 모든 걸 참고 사는 경우가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남성들 가운데는 여태 고루한 의식구조로 살아가는 이가 많다. 그래서 이혼가정이 더 늘어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혼하는 당사자들은 그럴 수밖에 없는 절박함이 있었기에 중대 결심을 하였을 테다. 그래서 제삼자가 단정해서 뭐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지난날의 도덕률로 이혼을 굳이 나쁘다고 비난할 수도 없다.

이혼 당사자는 본인이 결정한 선택으로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딸린 가족, 특히 자녀들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들이 겪는 심적 타격은 부모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이혼으로 가족 해체가 늘어간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행복지수를 떨어드리는 일로, 이런 가족 해체를 우리 사회 전체가 미리 막는 분위기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이따금 제자들의 혼인 주례를 설 때, 단골로 하는 말은 '결혼하기 전에는 두 눈을 떠라. 결혼 뒤에는 한 눈만 떠라"라는 말과 '인내'이다. 대체로 이혼한 가정은 이 말을 거꾸로 행하기에 빚어진 경우가 많다.

a '사람의 약속'은 지키는게 아름답지 않을까? 제자의 혼인예식에 혼인서약을 다짐하는 필자

'사람의 약속'은 지키는게 아름답지 않을까? 제자의 혼인예식에 혼인서약을 다짐하는 필자 ⓒ 박도

사람은 미묘한 감정의 동물이기에 그 감정의 변덕이 매우 심하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보면, "사람은 자기 자신도 하루에 세 번 이상 미워한다"고 하는데, 아무리 사랑했던 남녀가 만날지라도 한 평생 사노라면 미워질 때가 어찌 없겠는가. 부부는 이때를 슬기롭게 잘 넘겨야 가정을 지킬 수 있다.

가정을 지키는 비결이요, 부부 해로의 명약은 '인내'이다. 나는 최근 몇 해 동안 한 잡지사의 객원기자로 매달 한두 사람씩 열정적으로 산 사람을 만나서 대담을 나눈 적이 있다. 가정을 잘 꾸려가는 부부에게 그 비결을 물으면, 그분들은 하나 같이 '인내'라고 대답하였다.

어느 한 집에는 천장에 아예 '백인(百忍)'이라는 선조의 유묵을 붙여 놓고 매일 쳐다본다고 했다.

또 어떤 가정은 "남이 참는 것은 참는 게 아니다. 남이 못 참는 것을 참는 게 참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그대로 참으면 병이 되니까 지게를 지고 산에 가서 지게작대기로 나무를 후려치거나 주막에 가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킨 뒤 콧노래를 부르면서 위기를 어물쩍 넘겼다고도 했다. 해로한 부부치고 자녀를 위해 위기를 참고 넘기면서 가정을 지키지 않는 이가 없을 게다.

남남끼리 만난 부부가 한 평생 해로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혼인서약 때 서로간의 약속을 바보처럼 지키면서 한 평생 살아가는 게 아름답지 않을까?

한 순간의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평생을 후회하거나 고통 속에 사는 사람이 많다. '가정의 달'을 보내면서 내 가정과 이웃 가정 모두에게 '인내'라는 말을 복음처럼 들려드린다.

가정이 건강해야 사회가 나라가 건강해 진다. 우리 모두 가족(자녀)을 위해 조금 더 참으면서 살자. 먼저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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