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산이가 다시 옆 칸으로 옮겨 선실의 문을 열려 할 때였다.
[땅]
조금산이 등 뒤 선실에서 총성이 들렸다. 문을 뚫고 튀어나온 총환이 조금산이 오른쪽 벽에 박혔다. 조금산이가 순간적으로 몸을 숙이며 돌아 오혈포를 겨누었다. 다행히도 선실 문을 열려던 전은 무릎을 꿇은 채여서 문에 난 총알자국은 그의 어깨 보다 한 뼘이나 높은 곳에 뚫려 있었다.
[탕,탕,탕,탕]
조금산이가 남아 있는 오혈포의 약실을 모두 비웠다. 금세 주위가 화연으로 뿌연해지고 문에 구멍이 났다. 다른 흑호대원들이 좌우로 붙어 문을 밀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안에서 잠긴 듯 했다. 산총을 가진 후(後)가 앞으로 나섰다. 손잡이 부분에 총구를 대고 연이어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
손잡이 옆부분이 다 뜯겨 나가며 문이 힘없이 열렸다. 열리고 있는 문을 내처 차내며 전과 엄호하던 흑호대원들이 쏟아져 들어갔다. 조금산이도 따라 들어갔을 때 선실 안에서 피 냄새가 확 끼쳤다. 조금산이의 총에 당했는지 양총을 떨군 채 쓰러져 있는 시신에선 피가 솟구치고 있었고, 오른편 구석에선 발화통 파편에 당한 것이 분명한 사내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날 끝이 넓은 박도를 두 손으로 움켜쥔 채 이 쪽을 무섭게 쏘아보고 있는 젊은이가 서 있었다.
칼을 쥔 젊은이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것인지 공포로 긴장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강렬함이었다. 전이 천천히 오혈포를 겨누었다.
"아니, 잠깐. 저 자는 살려주자."
오혈포의 약실을 열고 총환을 장전하던 조금산이가 말했다. 그 말에 전이 오혈포를 거두었다.
"야아아!"
그러나 순간 박도를 든 적병이 칼을 위로 치켜들며 몸을 날렸다. 조금산이가 전의 오혈포를 밀치며 튕기듯 앞으로 나아갔다.
[퍽]
적병의 겨드랑이 밑으로 상체를 빼면서 조금산이가 왼무릎을 상대의 명치에 박아 넣었다.
"컥!"
젊은 상대가 외마디 신음을 뱉으며 벽에 몸을 찧었다. 그러나 튕겨져 나오는 힘으로 다시 칼을 모로 휘둘렀다.
"처-!"
조금산이가 기합을 넣으며 땅에 무릎을 대고 뒤돌아 후리면서 사내의 정강이를 걷었다.
[쿵]
사내가 바닥에 쓰러지자 후가 산총을 사내의 목에 겨누었고 전이 칼을 발로 밟았다. 조금산이가 재빨리 시신의 바지춤에서 허리끈을 뽑아 사내를 뒷결박 지웠다. 조금산이가 사내의 뒷덜미를 쥔 채 앞세웠고 전이 널판 방패를 든 채 마지막 선창으로 향하는 입구를 막았다. 아직 고물 쪽에서는 간헐적인 총성이 들리고 선창 내에서도 소란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머지는 본판을 확인하라."
조금산이 명에 나머지 흑호대원들이 아래쪽 입구로 내려갔다.
"본판에도 은궤는 보이지 않습니다."
담배 한 대 빨 참이 지나 돌아온 흑호대원 중 하나가 보고했다. 본판은 이미 침수가 시작되고 있는지 대원의 무릎까지 젖어 있었다.
"그렇다면 선창 안에 있다는 것인가?"
조금산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맘 같아선 칼을 휘두르다 사로잡힌 자에게 묻고 싶었으나 말이 통하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
"결국 저 선창 내에 은궤가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일전을 각오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남은 병력 모두가 선창 내에 있을 것인데 저 문을 열고 은궤를 빼오려면 안에 있는 자들 모두를 없애야 한다는 뜻. 난감했다.
"은궤가 보이지 않느냐?"
망설이고 있는 조금산이 뒤로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권기범이었다. 포로들을 데리고 나갔던 우가 앞장섰고 호위 둘이 앞 뒤로 선 가운데 권기범이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이 위험한 구덩이엘… 어서 밖으로 나가십쇼."
조금산이가 목례를 올리고 나서 다급히 속삭였다.
"내가 물어 보지."
권기범이 말하고는 조금산이가 잡고 있는 사내에게 물었다.
"은궤는 어디에 있나?"
"…."
사내는 여전히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모를 눈으로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선창 쪽을 쳐다봤다. 자기 친구가 뉘여져 있는 방이었다.
"이름이 뭔가?"
"씨아티엔."
"난 권이다. 불행히도 자네들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우린 조선의 수군이 아니야. 청의 눈치를 보며 구애 받는 무리가 아니란 말이지. 그러니 자네들을 전부 수장시켜 버림에 결코 주저함이 있을 수 없다는 뜻도 되고. 그러나 지금이라도 항복을 한다면 모두의 목숨을 살려줄 용의가 있다. 그리고 부상자들은 성심껏 진료해 줄 것이며 적당한 기일이 지나면 고향으로도 보내주겠다. 순순히 은궤를 들고 밖으로 나오라 일러라."
"…."
사내는 별 말이 없이 자신이 잡힌 선실 쪽만 응시했다. 그러다 무슨 결심이 섰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을 풀어주자 선창으로 들어서는 문을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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