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해!”
선창 내에서 발화통이 떨어진 줄 알고 혼비백산하는 적병들을 향해 조금산이가 소리쳤다. 황당선에 올라타기 전 권기범에게 배운 유일한 중국어였다. 적병 중 서넛은 그 짧은 틈에 선실로 숨어 버렸다. 그리고 몇은 다급히 손을 들었으나 서너 명은 서둘러 총부리를 앞으로 겨누었다.
[탕,타탕탕]
한 바탕 총탄 세례가 일자 무기를 겨누던 적병들의 몸이 꺾였다. 겨우 대여섯 보 거리를 두고 실수란 있을 수 없었다.
“으야아압!”
한 차례 일제 사격으로 장전된 총환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지 선실 내로 숨었던 적병 하나가 창을 앞으로 뻗은 채 뛰어 나오고, 누군가 얼굴과 총만 빼꼼히 내놓은 채 사격준비를 했다.
[탕]
창을 앞세우고 뛰쳐 오던 이가 산총(散銃)에 맞아 뒤로 튕겨 떨어졌다. 근접거리에서 산탄에 뚫린 배가 참혹했다.
[탕]
산총과 거의 동시에 발사된 조금산이의 오혈포에, 선실 안에서 총을 겨누던 적병도 머리가 터졌다. 붉은 피와 골수가 선실 벽에 벌겋게 튀었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에 넋을 잃은 듯 포로로 잡힌 적병들은 손을 높이 든 채 자리에서 움직이질 못 하고 있었다.
“우(右)! 이 자들을 병조선으로 옮겨라. 나머지는 앞으로!”
우가 적병 넷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고 나머진 선실을 훑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고물 쪽에서도 요란한 총소리가 들렸다. 이물과 고물 사이 격벽 때문에 크게 들리진 않았지만 그 쪽도 한 바탕 교전이 붙은 게 틀림없었다.
좌우 두 칸씩 방이 마련되어 있는 이 통로만 지나면 적병이 몰려 있는 선창에 닿을 것이다. 문제는 속도였다. 저들이 여유 있는 상황판단을 하기 전에, 한 번 방포가 이루어지기 전에 빠르게 제압하는 게 양측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전투실인 선창에 은궤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격벽까지 훑고 없으면 본판으로 내려 간다.”
조금산이가 지시했다. 갑판 위의 짐들은 병조선의 선원들이 옮겨 싣기 시작했을 것이다.
[끼그덕, 끼그덕]
흑호대원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디딜 때마다 바닥 소리가 났지만 다행히도 고물 쪽 소음에 묻혔다.
‘아까 숨어들었던 자가 셋 아니면 넷, 그 중 하나나 둘이 선실에 있을 터. 혹 우리가 들이닥치기 전부터 선실에 매복한 자가 있을지 모른다.’
조금산이는 선실에 있을 법한 인원을 추측하면서 전방으로 신경을 곤두세웠다. 두 손으로 오혈포를 받쳐 들고 앞 쪽을 겨누었다. 누구라도 고개를 내밀면 방포할 준비를 마쳤지만 자꾸만 손에서 땀이 났다.
문틈이 열려 있는 왼쪽 선실 앞에 이르기까지 몇 발짝을 띄는 게 마치 몇 리를 걷는 것처럼 힘겹게 느껴졌다. 오혈포를 든 조금산이가 왼쪽을 맡자 전이 오른쪽으로 돌아섰다. 산총과 마병총이 지닌 흑호대원들이 각각 좌우로 나뉘어 이들을 엄호했다.
[꽈당]
이윽고 조금산 문을 박차고 총을 들이밀었다.
“항복해!”
중국어로 소리치며 총을 좌에서 우로 훑었으나 몇 평 되지 않는 쪽방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확인!”
조금산이가 외쳤다.
“확인!”
뒤 쪽에서도 선실에 사람이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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