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놈들!"
마부대는 쌓여있는 시체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급한 데로 청군의 시신만을 수습하고 사살한 조선군의 수를 대략 세어본 결과 조선군은 천 여 명이 넘는 수가 죽었고, 청군은 그 세배 이상의 피해를 입고 있었다.
"어서 남한산성으로 돌아가자! 조선의 왕이 곧 성을 나와 항복하는데 그 구경을 어찌 놓칠 소냐!"
마부대는 끝나가는 전쟁에 두 명의 대장과 수많은 병사들을 잃은 데에 마음이 쓰라렸지만 결국 승리를 거둔 것은 자신의 공이었기에 마음에 두지 않으려 했다. 청군은 악몽과도 같은 전투를 잊기라도 하겠다는 듯 동료들의 시신과 부상병들을 데리고 순식간에 그곳을 빠져나갔다. 언제 치열한 전투가 있었냐는 듯 얕게 울려 퍼지는 누군가의 신음소리마저 서서히 잦아들며 골짜기는 결국 정적만이 감돌았다. 부러진 채 나뒹구는 군기는 바닥에 흥건히 흐르는 피에 젖어 더 이상 나부끼지 못했고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뒤섞여 사방에 흩날리고 있었다. 눈을 뜬 채 죽어있는 병사들의 눈은 결코 어둠을 바라지 않는 듯했지만 마침내 해가 지고 말자 숲 속에서 산짐승들의 안광이 버려진 조선군의 시체를 쏘아보고 있었다.
"어서! 서두르게나!"
횃불과 함께 사람들의 인기척과 말소리가 들리자 산짐승들의 안광은 슬며시 사라지고 말았다. 횃불을 든 사람들은 바로 전선에서 이탈했던 의병장 차예랑과 50여명의 병사들이었다.
"비록 우리는 목숨 바쳐 싸우지 못했지만 대신 죽은 병사들의 시신이나마 거두어야 하지 않겠나."
차예랑은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읊조렸고 시체를 치우는 병사들 중 일부는 울먹이기까지 했다. 천여구의 시체를 묻기 위한 구덩이를 파기 전에 시체를 옮겨놓으려 하던 병사들은 일부 병사들의 목숨이 붙어있는 것을 알고서 여기저기서 도움을 요청했다.
"여기 아직 숨이 붙어 있소이다!"
"들것이 필요하오!"
뜻밖에 생존자들이 많아, 시신을 수습하러 갔던 이들은 모두 부상자들을 돌보기에 바쁜 지경이 되었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유언을 남긴 자들을 제외하고도 얼마 후에는 시신을 수습하러온 병사들과 비슷한 수의 부상자들이 한곳에 모여 신음하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더 없는 건가?"
차예랑이 비통한 심정을 담아 중얼거렸다. 부상자중 몇몇은 상처가 깊어 살 것 같지가 않았다. 최후까지 자리를 지킨 천 여 명의 조선병사들은 어느 누구도 몸을 사리지 않고 적과 맞싸웠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었으며, 그로인해 아무리 홍명구의 명을 받았다고는 하나 일찌감치 전장을 떠난 차예랑은 더욱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제 다 모인 것인가?"
차예랑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제일 먼 곳까지 간 병사가 등에 사람을 이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차예랑은 어른거리는 횃불에서도 등에 업힌 이가 누군지 단숨에 알아보았다.
"장초관!"
장판수는 입술이 바짝 타들어간 모양새에 퀑한 눈매무시가 넋이 나간 표정이었고, 창에 찔린 장딴지와 머리에는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나 보기에 끔직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차예랑이 물을 가져와 장판수의 입에 흘려 넣어 주자 장판수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나으리는?… 계남이는?"
차예랑은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장판수를 편안한 곳에 눕혀 놓으려 했다. 순간 차예랑의 손을 뿌리치고 장판수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횃불까지 획하니 빼앗아든 채 시체들 사이를 마구잡이로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장판수를 말리기 위해 달려가려 하자 차예랑은 손을 들어 이를 막았다.
"그냥 놔두게."
한참 뒤, 홍명구의 시신을 찾은 장판수는 그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고, 윤계남의 시신을 찾은 후에는 통곡소리마저 멈춘 채 허공을 바라보았다. 장판수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라 지레짐작한 차예랑이 다가섰을 때 장판수는 하늘이 무너져라 소리를 질렀다.
"왜 나만 살려 두신 겁네까! 왜! 왜!"
장판수의 처절한 울부짖음에 살아남은 병사들은 눈시울을 적실 따름이었다. 같은 때, 남한산성에서도 비통한 울부짖음은 메아리치듯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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