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100

대원군 집정기 무장 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7.01 07:22수정 2005.07.0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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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직진으로 타는 좌현!"
"노는 직진으로 타는 좌현!"

다시 선장의 말을 기패관이 복창했다. 섬을 에돌아 배가 왼쪽으로 크게 선회했다. 금세 섬에 닿을 것 같은 거리였으나 쉬 간격이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섬의 절벽에 이마를 찧을 듯 다가갔다.


선회를 마치고 타를 바로잡았을 때 절벽 사이로 비껴 나있는 틈새가 보였다. 절벽을 정면으로 향해서는 볼 수가 없고 뱃전을 절벽에 닿을 듯 선회했을 때만 노출되는 입구였다.

"각별히 조심하라!"

선장이 키를 잡은 사공에게 직접 외쳤다. 50길이 넘을 듯한 높이의 절벽 두 개 사이로 난 틈새는 겨우 큰 전선 하나가 드나들 만큼 작았다. 파도라도 크게 인다면 배가 움직여 좌우 절벽에 뱃전을 찧을 것 같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좌우 벽이 막아 주고 있는 절벽 사이의 물길은 민물처럼 잔잔했다.

"차라리 선실에 갇혀 있는 저들의 처지라면 낫겠습니다, 선장님."

기패관의 농담에 선장은 입꼬리를 희미하게 올려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절벽에 배가 부딪힐까 조마조마했다. 짧은 거리였지만 그만큼 보고 있기가 불안한 길이었다.


촤르르르.....

좌우 절벽 사이에 늘어진 쇠사슬이 물 밑으로 내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평상시 수면 바로 밑에 드리워진 사슬은 배가 더 이상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책 구실을 한다. 사후선 조차도 넘지 못할 정도로 수면에 가까운 수중에 걸쳐 있었다.


선장이 고개를 깊게 치켜들어 절벽 위를 보았다. 파수 두엇이 손을 흔들었다. 선장이 알기로 벼랑 위 파수대에는 한 문 이상의 대포와 거의 한 개 대(隊: 10명 단위의 조선 군편제) 이상의 장졸이 상주하고 있었다. 설사 쇠사슬이 막고 있지 않다 해도 무수한 발화통이 떨어지는 이 좁은 통로를 무사히 지날 수 있는 배는 없을 것이다.

일각(一刻:15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수년이 흐른 듯 했다. 좌우 노만의 조정으로 방향을 유지해 가며 어렵게 어렵게 앞으로 나아갔다.

"다 왔습니다. 선장님."

기패관이 탄성처럼 내뱉었다. 길어야 70 여보도 되지 않을 그 통로가 며칠을 항해한 수백 리 뱃길보다도 길게 느껴졌기에 기쁨이 컸다. 눈앞에 전선 몇 척이 정박해 있는 선착장이 보였다. 제자리 선회가 가능한 평저선이 아니고는 물웅덩이처럼 작은 공간에 여러 척의 전선이 들어선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접안하라!"
"접안하랍신다!"

기패관이 들뜬 목소리로 복창했다. 선착장에 닿는 접촉음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9

"무얼 꾸물대는 게야! 냉큼 열을 맞추지 못할까!"

그을린 피부에 밭고랑만큼이나 주름이 깊게 파인 중년의 사내가 연신 호령했다. 눈을 지그시 뜬 모양이 꼭 독사같았다. 말보다도 더 빠르게 젊은 조련관들이 짐짓 육모방망이를 휘두르며 일행을 닦아 세웠다. 해도의 선착장에 닿기가 무섭게 배에 오른 조련관들이 입영한 장정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몰아세우는 중이었다.

"아니, 이거 왜 이래 우리가 무슨 짐승인 줄 알아? 말로 하라고 말로!"

모두가 선착장 위의 언덕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누군가 호기 있게 항변했다. 한 눈에도 제법 힘깨나 쓰게 생긴 왈짜였다. 언덕 위에서 호령하던 그 중년의 조련관이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자네 이름이 뭔가?"
"그건 알아 뭐에 쓰시게?"

왈짜가 되려 더 눈을 부라리며 기세등등하게 나왔다.

"오늘 저녁 대상자 명단에서 자넬 빼야 하니까."
"에이, 퉤! 그깟 저녁 더러워서 안 먹는다. 안 먹어!"
"상관 불손죄! 장(杖) 10 도에 처할 죄목이나 아직 정식 조련이 시작되지 아니한 관계로 명일 아침까지 두 끼를 굶긴다."
"아, 글쎄 마음대로 하래두! 두 끼를 굶기든 열 끼를 굶기든!"
"상관 불손죄! 명일 점심까지 세 끼를 굶긴다."

꼿꼿이 선 중년의 조련관은 얼굴에 노기도 띠지 않은 채 무덤덤하게 벌칙을 가하는 끼니의 수만을 읊었다.

"점심?"
"아......아니, 그럼 여긴 하루에 세 끼를 먹는단 말이야? 이런 세상에....."

조련관의 말을 들은 몇몇이 놀란 토끼눈을 하고 귀를 기울였다. 무엇으로 죽을 쑤어 줄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세 끼라면 배를 곯을 지경은 아닐 터였다.

"한 마디만 더 하면 명일 저녁까지 네 끼를 굶긴다. 굶는 벌은 여기까지다. 조련을 받아야 하니까. 그 이후론 네 식솔들에게 매달 지급되는 녹봉을 줄인다."

중년의 조련관은 모두가 들으라는 듯 짐짓 큰 소리로 말했다.

"......."

왈짜는 잔뜩 부어오른 표정이었으나 무어라 대꾸하지는 못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중년의 조련관은 정색을 하고 왈짜에게 다시 물었다.

"이.....칠복....이"
"말이 짧구나."
"......입니다."
"그래 자리로 돌아가거라"

왈짜가 서둘러 무리 속으로 들어왔다. 중년의 조련관이 70여 명의 무리를 훑으며 크게 외쳤다.

"앞으로의 모든 행동은 군율(軍律)에 의한다. 무단위치이탈, 하극상, 절도, 복무태만, 장비손실 등에 대해 파총(把摠:종4품 무관벼슬)급 이상 지휘관은 판단에 따라 장(杖) 30도까지 처벌할 수 있다. 적과의 싸움 중에 일어난 항명과 전장도피의 죄는 지휘관 재량에 따라 즉결 처분할 수 있다. 그러나 군율 회의에 부쳐질 경우 이들 사안은 금고와 장형, 그리고 사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으니 군율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예..."

기죽은 목청에서 가느다란 대답이 기어나왔다.

"불알 단 사내 목청이 고작 이뿐이더냐! 알겠느냐?"
"예!"
"이제부터 두 달 간 너희의 조련을 맡게 된 뱀눈이다. 모두가 이 섬에서 살아 나가기를 기원한다."

뱀눈이라 불리운 중년 조련관이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 무엇인지 알지 못할 불안과 위압감이 싸늘하게 여운으로 남았다.

"저.....정말일까?"

땅딸보가 은근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물었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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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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