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99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6.29 14:41수정 2005.06.2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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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설마하니.....그냥 감시하러 나왔겠지요.”

옆의 젊은 사내가 거들었다.


“두고 보면 알 일이 아니던가. 글쎄 지켜보라니까.”

“그렇게만 되면야 저희한텐 좋은 일이잖겠습니까. 무슨 도적당마냥 우리끼리만 이러는 게 아니고 조직적으로다가 모의가 이루어진다면......”

젊은 사내는 내심 판개의 추측이 사실이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대체 이들은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 도당이란 말이냐. 이토록 거대한 도당이 어찌 아직도 포착되지 않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는가 말이다.’

영중은 말을 주워섬기며 골몰히 생각했다. 영중은 관이 연계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평양 유기전의 기찰망이 뚫려 그 가족이 도주할 수 있었던 것도 감영 내부에 간자(間者)가 없었더라면 성사시키기 어려운 일일 것이었다.


사주전 사안이라 심혈을 기울여 매복을 섰으나 파리 한 마리 얼씬하지 않다가 매복을 푼 다음날 가족들을 빼내간 일은 그렇게 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이들은 감영까지 손을 뻗었을지도 모른다.

판개와 영중의 대화를 계기로 자리에 참여했던 이들은 멀미기를 잊은 듯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 나절을 흔들리고 나서야 갑판에 오르는 것이 허락되었다. 선미옥란(배의 고물 꼬리에 판을 걸쳐 설치한 곳)에 걸터앉아 힘을 주던 땅땅보는 헛방귀만 폭폭 내보내고 있었다. 평소 고물 쪽을 경계하는 장소이면서 선원들이 뒷간으로 쓰는 한 조각 판대기 위에서 일을 보려니 와락 무서움증이 일었다.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터라 난간을 힘껏 움켜쥔 채 쭈구리고 있다보니 똥을 누는 일은 뒷전이요 난간을 잡은 팔에만 힘이 들어갔다.

“염병.....나오라는 똥은 안 나오고 방구만.....하긴 입으로 다 쏟아냈으니 밑으로 보낼게 남아 있을라고....”

땅딸보는 지푸라기를 접어 밑을 훑어 내고는 괴춤을 올렸다.

“다시 들어가게. 갑판 위에 있는 장정들은 모두 선실로!”

막 갑판으로 넘어서려는데 선원이 돌아다니며 외쳤다.

“아니 또 왜요?”

땅딸한 사내가 물었다.

“이제 다 왔느니라.”

“섬이 아니 보이는뎁쇼?”

“보여선 아니 되지. 너희는 아직 보아서는 안 되느니라. 자, 어서 안으로.”

“이런 젠장할,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투덜투덜 하면서도 사람들은 선실 안으로 꾸역꾸역 내려갔다. 어쩌면 이 고생이 다 끝났다는 안도가 사람을 더 순하게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배가 파도를 타넘은 지 한 식경이 되자 섬이 눈에 들어왔다. 기패관(旗牌官: 신호용 깃발로 군령을 담당하는 무관)의 명에 따라 돛 위로 황기가 올랐다. 수기신호를 행할 때 먼저 보기 쉬운 곳에 기를 게양하여 수기신호를 보내겠다는 신호를 먼저 보내는 방식이었다.

섬 벼랑 위에서도 황기가 올랐다. 일단 이쪽을 확인했다는 신호였다.

“접안하겠다 일러라.”

선장이 기패관에게 말했다.

“접안 허가 바람. 개화수군 3호 수송선, 병아리 선적.”

기패관이 읊는 음에 따라 신호수의 팔이 절도 있게 움직였다.

수기신호(手旗信號)는 선박과 선박, 선박과 육지 간, 혹은 포병과의 신호를 위해 개화군이 만들어낸 근거리 시각통신이었다. 오른손에 붉은 수기, 왼손에 백색 수기를 잡고 정해진 바에 따라 양팔을 동작해 통신문을 보낸다.

양손에 나눠 든 두 기의 조합으로 닿소리와 홀소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천리경으로 관측이 가능한 오 리(2Km)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며 송신 속도는 1분에 55자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야간엔 불빛을 이용해 모르스 부호를 국문법으로 만들어 낸 방법으로 신호를 교환하게 되어 있었다.

섬의 벼랑 위에서 신호기가 펄럭였다.

“기패관 나으리 저쪽에서 암호를 묻습니다."

신호수가 신호를 읽어내고는 기패관에게 전했다.

“참수리”

기패관의 입이 떨어지기 바쁘게 신호수의 팔이 다시 움직였다.

벼랑 위에서 기항을 허락하는 신호가 떨어졌다. 배에서 황기가 내려지자 섬의 황기도 내려졌다. 신호 교환이 끝났다는 의미였다.

“돛을 내리고 노를 저어라.”
“돛을 내리고 노를 저으랍신다!”

선장의 명령에 기패관이 복창했다. 선원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노가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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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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