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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감영 내아.
박규수는 발화통을 쥔 손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미동도 없었다. 중군에게도 보이지 않은 채 손수 거두어 온 권기범의 보자기는 방바닥에 풀어져 있었다.
지름 두 치에 뚜껑까지 길이 다섯 치. 겉보기엔 그저 평범한 대나무통. 그러나 뚜껑을 열려던 박규수는 잠시 머뭇거렸다.
'늙은 몸이 아직 이승에 미련이 있기는 있는 게구나.'
박규수가 속으로 주저하는 자신을 생각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퐁]
힘을 주어 뚜껑을 돌려 잡아 빼니 경쾌한 소리가 났다.
'이건…?'
대나무 통 위가 기름종이로 막혀 있고 중앙에 놋쇠로 만든 은행알만한 판이 박혀있음을 보고 흠칫 놀랐다. 마두산 총격 현장에서 윤석우가 가지고 왔던 탄피의 뇌관과 크기만 다를 뿐 똑같은 구조였다. 그 옆으로 초석과 화약을 묻힌 듯한 실도화선이 삐어져 나와, 대나무 통의 내벽과 만나는 곳에서 기름종이 아래로 내려져 있었다.
"흠……."
권기범의 협박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단번에 비격진천뢰의 원리임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무쇠원구가 아닌 대나무통이며 불을 붙일 필요 없이 언제든 대나무 뚜껑 뒷면의 쇠돌기로 이 뇌관을 때려 심지에 불을 붙인 후 던지는 무기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이것이 살상력을 가진 무기가 분명하다면 이걸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싸울 의사가 없다는 뜻?
하긴 싸울 의사가 없었음은 그들이 가진 '오혈포'라는 신식 수발총을 사용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게 아무도 없느냐?"
발화통을 만지작거리던 박규수가 밖을 불렀다.
"예, 나으리"
굵직한 사령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가서 윤 비장과 중군을 들라 이르라."
"예."
사령의 목소리가 들리고 탁탁거리는 달음박질 소리가 다시 멀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중군 이현익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으리 불러계시옵니까?"
"들라."
중군 이현익과 군관 윤석우가 들어섰다.
"석우야 몸은 좀 어떠하냐?"
윤석우가 앉기도 전에 박규수가 다감하게 물었다.
"잠시 기진하긴 하였사오나 별일은 아니옵니다."
대답을 하는 윤석우의 얼굴이 붉어졌다. 평생 무예로 겨루어 땅에 누워 본 적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많은 나졸과 박규수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런 일을 당했으니 얼굴을 들 바가 아니었다.
"너무 심려치 말거라. 나 또한 몰랐다만 그자의 기량이 범인의 것은 아니더구나. 네가 너무 어려운 상대를 만났음이야."
"예"
대답을 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윤석우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석우야 나는 네게 무엇이냐?"
갑자기 이어지는 박규수의 뜬금없는 질문에 윤석우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중군 이현익도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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