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19회

등록 2005.07.12 07:53수정 2005.07.12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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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팔을 사용하지 못해 부득이하게 한 손으로 검을 빼들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검집을 던진 것은 연속으로 그의 전신을 향해 파고드는 위맹한 공격을 잠시 주춤거리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고, 재차 파고드는 흑의인들의 검을 쳐낼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그것은 그에게 닥쳐 온 가장 큰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는 헐떡이면서 기둥에 몸을 기대어 신형을 세웠다.

왼쪽 팔은 완전히 감각을 잃어버렸다. 좌측 상반신이 고통으로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는 와중에서 그는 자신의 왼팔을 못 쓰게 만든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노부까지 나오게 하기에 대단한 놈인줄 알았더니... 겨우 무당의 면장을 익힌 놈인가?"

그의 앞에는 선풍도골의 노인이 서 있었다. 용무늬의 자수가 금으로 수놓아진 화려한 화복(華服)을 걸치고 적색의 도포를 걸쳤다. 머리와 수염은 하얗게 세어 있어 나이를 추측하기 힘들었다. 담천의는 얼굴을 침중하게 굳혔다. 노인은 고수였다. 전신에 일렁이는 기운은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가지고 있었다. 일가를 이룬 자가 아니라면 가질 수 없는 위엄이었다.

아마 담천의가 여자를 공격했던 자세와 수법을 보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태극산수가 본래 무당에 뿌리를 두었으니 면장이라고 판단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새벽에 잠든 사람을 암습한 자답지 않게 멀쩡한 모습을 갖추었구려."

숨을 돌려야 했다. 왼쪽 어깨도 어깨려니와 내부가 진탕되어 몹시 괴로웠다. 진기의 흐름도 곳곳에서 막히고 있었다. 시간을 벌면서 호흡을 가다듬는 것이 필요했다. 그의 말이 효과를 보았는지 일순 노인의 얼굴이 불그레해졌다. 노인도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금방 안색을 회복하고는 살기를 띠웠다. 남들이 안다면 자신이 그 간 쌓아 온 위명에 먹칠을 하는 짓이었다. 부득이 나서기는 했지만 자신이 이런 기습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망신당할 일이었다. 더 이상 망신당하기 전에 이 자를 조용히 해치우는 게 나았다. 더구나 자신의 공격을 받았음에도 아직 저 정도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매끄러운 혀를 가진 것만큼이나 뼈다귀가 단단한 놈인 모양이군."


"노인장의 푸석한 뼈보다는 훨씬 단단할 것이오."

송하령은 어느새 옷을 모두 입은 상태였다. 여자는 확실히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이 위급한 순간에도 옷부터 갖추어 입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두 흑의인은 검을 세우며 그녀에게 다가들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으로 보아 죽일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하기야 담천의만 처리하게 되면 송하령 정도는 능히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검을 들고 있는 두 흑의인도 노인이 나선 이상 자신들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그것은 두 흑의인이 노인을 얼마나 존경하고 신뢰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행동이었다. 그들 역할은 이제 송하령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묶어 두는 것이었다.

"혀 놀림만큼이나 실력이 있는지 보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인의 신형은 미끄러지듯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들었다. 동시에 가볍게 일권을 뻗었는데, 담천의는 감히 마주칠 생각을 버리고 황급히 몸을 날려 옆으로 비켜섰다. 그것도 모자라 그는 허공에 삼검(三劍)을 그으며 상대의 무서운 암경(暗勁)을 비껴나가게 하기 바빴다. 무서운 권이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노인은 권법의 달인인 것 같았다. 권이 수준에 오르면 마치 장력처럼 무형의 경력을 내뿜게 되고, 그 경지가 넘어서면 권의 주위에 용권풍(龍卷風)이 일며 소리 없는 암경이 발출된다. 이러한 암경은 마치 권에 직접 맞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이 오게 되고, 내부가 진탕되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헌데 노인의 권은 그 경지를 넘어선 것 같았다. 너무나 가볍게 뻗는 주먹에서 무형의 권풍이 소리없이 뿜어지며 질식할 것 같은 압력을 느끼게 했다. 그제서야 담천의는 이 노인이 누군지 기억해냈다.

(이혼권(離魂拳) 언무탁(彦珷琢)이다.)

이 중원에서 권을 이렇듯 가공할 수준까지 연성한 사람은 오직 그 뿐이었다. 하북(河北) 진주언가(珍州彦家)의 전대가주(前代家主)로 한때 천하제일권이라고 일컬어졌던 인물이다. 언젠가 섭장천에게 패한 후 무림횡행을 멈추고 진주로 돌아가 은거했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믿지 못할 일이었다.

전신에 가해지는 무형의 압력은 살갗을 찢을 듯 했다. 이렇게 몰리다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내심 마음을 굳혔다. 이미 두 번의 치명적인 공격을 당한 상태인 자신의 몸으로 이혼권 언무탁과 정상적인 대결을 펼친다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일검으로 승부를 본다!)

이미 상대는 자신을 얕보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이곳을 무사히 걸어 나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담천의는 몸을 빠르게 회전했다. 동시에 검극을 지면에 대고 자신의 몸을 싣자 검날이 반달처럼 휘었다. 그 휘어있던 검날의 반탄력으로 몸을 허공에 띄우며 그의 몸은 검과 하나로 되어 일직선으로 주먹을 날리는 언무탁을 향해 쏘아갔다.

슈리리---릭--!

그것은 과거 강명을 긴장시켰던 그 검이었다. 그냥 찔러가는 듯이 보이는 그의 검은 일직선으로 쏘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원을 그리며 쏘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검의 위력은 그의 손에 들린 만검(卍劍)으로 인해 과거보다 더욱 위력이 뛰어나 보였다. 그의 검 주위에서 언무탁의 권경과도 같은 회오리가 일며 그 방원을 넓혀가고 있었다. 만약 그의 검경 내로 들어오는 것이 있다면 튕겨져 나가거나 부셔져 나갈 터였다.

이것은 도박이었다. 마지막 진기까지 끌어올려 생각한 바대로 일검에 끝내려 하는 것이다. 왼쪽 어깨의 마비는 심각하게 움직임을 제한하고, 내부를 뒤흔든 내상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곳을 무사히 벗어날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마저 사라질 터였다.

"으음....!"

처음으로 언무탁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며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무쇠라도 가루로 만들 수 있는 그의 권이었지만 이것은 달랐다. 상대를 쓰러뜨릴 수는 있지만 자신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는 양 주먹을 힘차게 교차시켜 암경을 뻗어내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예봉을 피하고 상대의 공격을 흩뜨린 후에 치명적인 반격을 가하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금방 드러났다. 일 장여 정도 물러나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그의 예측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쏘아오는 기세가 잠시 주춤하는 듯 했지만 상대의 검은 자신의 권경을 뚫고 자신의 가슴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이..이놈!"

첫 번 공격에서 치명상을 주었다는 느긋함과 풋내기에 불과하다고 상대를 경시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내력을 십성까지 끌어올려 마주쳐갔다.

쿠--쿠-- 쿵---!

검과 주먹이 마주치는데 마치 바위와 바위가 부닥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담천의는 검을 잡은 손아귀가 찢어져 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와 함께 그의 가슴에는 묵직한 통증과 함께 그의 몸은 이장 뒤로 튕겨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의 입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와 허공에 피비를 내리게 하고 있었다.

"우욱--!"

그의 얼굴은 하얗게 탈색되었다. 벌거벗은 가슴에 두개의 주먹자국이 마치 불에 지진 듯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는데 그의 입 뿐 아니라 코에서까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힘겹게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키고는 있었지만 움직일 힘마저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언무탁 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그의 가슴에는 흉측한 검상이 두 줄기 나있었는데 가슴뼈까지 보일 정도였고, 금세 붉은 피가 가슴 전체를 적시고 바닥에 피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음... 그래도 한 수가 있는 놈이었군."

그의 얼굴에 여유가 사라지고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제 갓 약관을 벗어난 어린놈에게 자신이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는 이빨 사이로 나직이 말을 뱉으며 담천의에게 한발 한발 다가들었다. 피가 앞가슴을 적시고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으로 걸어오는 그의 모습은 섬뜩했다. 또한 그의 전신에서 뿜어 나오는 살기가 장내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그 때였다.

"소녀에게도 한 수는 남아있어요."

두 흑의인에게 몰려 한 쪽 구석에 있던 송하령이 뾰쪽하게 소리쳤다. 그녀는 오른손을 들어 보였다. 희고 매끄러운 손가락 사이에 두개의 구슬이 끼어 있는 것이 보였는데 하나는 검은색이었고, 또 하나는 붉은빛을 띤 구슬이었다. 그녀는 언무탁이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담천의에게 다가가자 빠르게 외쳤다.

"언노선배께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물론 언노선배께서도 이곳에서 죽을 수밖에 없어요."

그녀는 구슬을 던지려는 듯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그제서야 언무탁이 잠시 주춤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년의 협박이 통하리라 생각하느냐? 그따위 구슬이 굉천뢰(宏天雷)라도 된다는 말이냐?"

송하령은 그녀의 말에 언무탁이 걸음을 멈추자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일단 시간을 벌어야 했다. 지금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완전히 탈진해 있었다. 시간을 번다고 그가 회복될 리는 없지만 일단 시간을 끌어가며 빠져나갈 기회를 엿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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